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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 사랑 재활용 가이드 / KPC: Asher, PC: Vincent Valentin

 
 
준비됐으면~
 
애셔한테 한마디 ㅎㅎ
 
Vincent Valentin:안녕애셔널처음본순간부터
 
Asher:애셔 님이 나갔습니다.
 
*
 
⋘ ───── ∗ ⋅◈⋅ ∗ ───── ⋙
 
COC 7th fanmade scenario
 
비정상적 사랑 재활용 가이드
 
사랑하지 않는다로 범벅인 꽃잎점에아무도 모르게 꽃잎 한 장을 붙인 날.당신은 그날 밤 사랑을 속삭였다.
 
KPC Asher PC Vincent Valentin
 
Written by 영민
 
2025.03.14.
 
───────  ───────
 
같이 도망치자.
 
.
 
.
 
.
 
00. 세상의 빛나는 것들이 당신만을 겨누고 있다
 
채 닫히지 않은 커튼 사이로 햇빛이 기어듭니다.
 
빈센트의 눈을 자꾸만 괴롭히는 게, 꼭 빨리 일어나라며 재촉이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피하려 해도 오늘따라 집요하게 따라오는 게 기어이 깨우려고 작정을 한 듯합니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겠는데요. 더 버텨 봅니까?
 
Vincent Valentin:(둥근 해 미친 것 또 떴네. 이불 푹 뒤집어쓴다.)
 
이불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게, 옆에 있는 애셔가 둘둘 말고 있거든요.
 
빛이 안 닿는 것 같습니다. 어쩌다 보니 당신이 햇빛을 가려 준 모양이에요.
 
그럴 의도였든 아니든, 푹 자고 있는 걸 보니 기분이 썩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어쩐지 얄밉기도 하고…….
 
...
 
……그래요.
 
분명 애셔와 함께 밤새 퍼마실 생각으로 방 하나를 잡았었는데…… 대체 언제 잠든 거죠?
 
뭐, 술을 마시다 보면 으레 있는 일이니까. 이만 깨우는 게 좋겠습니다.
 
애셔가 분명 오늘은 꼭 바다를 보러 가겠다 했었잖아요.
 
Vincent Valentin:(어깨 흔들흔들.......) 애셔. 일어나.
 
아, 너무 곤히 자고 있습니다. 행복한 꿈이라도 꾸는지.
 
흔들면 입만 좀 달싹일 뿐 깰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좀 귀엽나? 잘생겼나?
 
좀 열받으니까 그냥 다시 깨웁시다. 깨워 버립시다.
 
Vincent Valentin:(빤히....... 내려다보다 냅다 그 위에 엎드린다. 숨 막혀서라도 깨겠지.)
 
애셔는 어쩐지 불편한 표정을 짓더니…… 몸을 뒤척……이려다 실패합니다.
 
곧 졸음을 떨치려는 듯 온순하게 눈만 두어 번 깜빡입니다.
 
힘도 제대로 안 들어간 팔이 빈센트를 감싸고, 천천히 연 입에선 다소 잠긴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Asher:사랑해, 빈센트.
 
✦ 이성 판정 ✦ 
 
Vincent Valentin: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음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건,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Vincent Valentin:술이 덜 깬 거야, 잠이 덜 깬 거야....... 일어나.
 
Asher:나 지금 굉장히 제정신인데.
 
Vincent Valentin:아닌 것 같은데.
 
Asher:으응, 나 잠도 다 깼고......
숨이 좀 막히긴 하는데, 아직 넋이 나갈 정도는 아니야.
 
Vincent Valentin:그럼 술이 덜 깬 거지. 너 취기 오래 간다.
 
Asher:아니라니까 그래......
 
등허리를 안고 있던 손이 당신의 뺨을 잠시 감쌉니다.
 
이렇게 순수한 애정만이 가득 담긴 눈으로 하는 사랑 고백이라니요.
 
평소의 그 알 수 없는 눈길은 어디로 가고……. 모르긴 몰라도 분명 사랑은 아니었는데.
 
눈을 살포시 감은 애셔가 다시 한번 나즈막히 속삭입니다.
 
Asher:나한테 세계를 다 준대도 나는 너만 사랑할 거야.
왜 이제야 알았을까. 빈센트, 내가 널 아직까지 떠나지 못했던 이유 말야.
난 오직 네게만, 영원히, 내 모든 걸 내어 줄 운명이라고.
 
그 입에 영원을, 운명을 담습니다.
 
순간을 가지는 것에라도 감사해야 했던 사람이.
 
철벽 같은 댐은 작은 구멍 하나로도 삽시간에 무너져 버린다 하던가요.
 
손가락으로, 손으로, 몸으로 댐을 막던 소년의 이야기는 허구라는 걸 반증하듯 애셔의 마음은 온통,
 
마치 감정이 터져 버린 것처럼…….
 
그 사이로 당신을 향한 사랑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리고, 그 틈을 막으려는 이조차 여기엔 없습니다.
 
Asher:이래도 그냥 취기에 하는 소리 같니.
 
Vincent Valentin:(당혹스러운 얼굴. 목 뒤가 더운 것 같기도 하고. 뺨을 감싼 손 반대편으로 슬그머니 고갤 돌리고 내내 짓누르고 있던 몸을 물린다. 상당히 부자연스럽게.......)
아니, 그.
음.
음, 그래. 그, 응. 어.......
....... 진짜?
 
Asher:그럼.
(몸 반쯤 일으켜 쫓아간다.) 증명이 더 필요할까......
 
Vincent Valentin:(얘 진짜 왜 이러지? 콘셉튼가? 고개 푹 수그리고 이불에 묻은 먼지를 빤히.......)
 
Asher:(시선 닿은 먼지 콕 집어 침대 아래에 버린다.) 빈센트으.
 
Vincent Valentin:(먼지가 손을 떠날 때까지 따라가는 시선....... 흘끔, 눈 마주하다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결국 종착지는 입술 언저리다.) 어어, 그래.......
 
Asher:(손 뻗어 한쪽 어깨에 얹었다. 몇 번 토닥이더니 천천히 쓸어내려 손 가볍게 잡는다. 눈썹 끝이 좀 더 내려가고, 반해 입꼬리는 좀 더 올라가고. 엄지로 손등을 살살 문지르다......) 이제 나 보기가 싫나.
 
Vincent Valentin:(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면 속이 답답해진다. 그럼 숨쉬기도 불편하고, 자동으로 기침이 좀 나오고....... 얘가 알진 모르겠지만. 작게 기침을 몇 번 했다. 다시 올라가는 시선.) 아니, 나도 당황해서 그래....... 너무 갑작스럽잖아.
 
Asher:(눈 마주치면 당연하게 끌어안는다. 콜록댔던 게 아무래도 걱정이 돼서. 등을 쓸어내리다가, 좀 토닥이다가. 이제 괜찮은 건가. 모르겠다. 그럼 일단 안고 있는 게 상책일 테니까. 좀 전엔 저 심장의 속도를 좀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림도 없지......) 괜찮아? 나보다 네가 더 먼저 죽겠다, 야.
 
Vincent Valentin:(효과는 미미하다 못해 역효과다. 늘 그랬듯이. 열이 잔뜩 오른 머리가 핑글댄다. 심장 소리 다 들릴 것 같은데. 나 숨소리 너무 큰가....... 아닌가. 손가락 꼼지락대다 등 위에 살포시 올렸다.) 심장이 너무 뛰면 아프기도 하는구나.......
 
Asher:(맞닿은 곳마다 울림이야 전해지니까, 정말로 들리진 않더라도 두근대는 진동은 자꾸만 귀에서 맴돌고......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팔에 힘을 좀 더 준다. 그대로 고개 내려 목덜미에 입술 묻고서는 웅얼웅얼.) 빈센트. TV 끌까. 나 네 목소리만 듣고 싶다.
 
......TV요?
 
이제야 좀 주변의 소리가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그마저도 심장 소리에 가렸다면 유감이지만,
 
한참 전부터 틀어져 있던 TV는 오늘도 흔한 가십거리들을 송출합니다.
 
오늘은 유독 유명인들의 결별 소식이 많이 보이네요.
 
금슬이 좋기로 유명했던 한 부부마저 이혼 선언을 하고……
 
중고 마켓에선 여러 수집품들이 올라오거나 삽시간에 버려지고 있습니다.
 
마니아 층이 단단한 걸로 알고 있는 분야의 것까지요.
 
아, 문앞에서 누군가 싸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제 옆 호실에 들어가던 커플의 목소린데. 만족스럽지 못했나......
 
✦ 지능 판정 ✦ 
 
Vincent Valentin: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오늘따라 애셔가 확실히 이상합니다. 부정할 여지 없는 사실이에요.
 
갑자기 사랑을 깨달았다면서 영원을 약속할 사람이 아니라는 건 당신이 제일 잘 알 겁니다.
 
하지만, 이런 게 마냥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나요?
 
...
 
잠깐! 이보다 더 밍기적거리다간 분명 늦고 말 겁니다.
 
중요한 일정이었잖아요.
 
애셔가 원래 사랑하던 것을 보러 가는 날.
 
너른 하늘 아래 펼쳐진 바다와 끝의 수평선까지.
 
저 멀리의 내음을 가득 담아 불어오는 바람이 좋다 했던가요.
 
그 감정이 빈센트를 향한 적은 없었는데.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콕콕 아립니다.
 
일방적인 사랑이란 게 다 그렇죠. 속이 꼬이는 감정.
 
그래도. 그래도…… 애셔에게 오늘 일정을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겠습니다.
 
오늘은 네가 사랑하는 걸 봐야 하는 날이라고.
 
Vincent Valentin:(간질대는 게 마음인지 닿은 목덜미인지....... 어깰 슬쩍 움츠리며 약하게 밀어냈다.) 일단, 일단 나갈 준비 좀 하자. 바다 보고 싶다며.
 
Asher:아, ……그랬지.
괜찮아. 필요 없어. 네 옆에 있을래……. 너만 있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너 가고 싶으면 가고.
 
Vincent Valentin:....... 너 오늘, 진짜 좀 이상하다. 왜 그래?
(열이 나나? 이마에 손등 대 본다. 손이 삼백 배 정도 더 뜨겁다.......)
 
그 아래 순종적인 눈과, 조곤한 말소리와, 여전히 당신만을 비추는 햇살과…… 아.
 
눈이 부십니다.
 
가슴이 아파오고,
 
머리가 아찔해지고,
 
모르던 애셔의 잔향이 지독히도 깊게, 깊게…….
 
도무지 그 수마를 버틸 수는 없었습니다.
 
빈센트, 빈센트. 아득한 목소리가 진실인지 거짓인지조차 모르겠습니다.
 
✦ 듣기 판정 ✦ 
 
Vincent Valentin: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허정한 울림만이.
 
.
 
.
 
.
 
01. 꽃잎점은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눈을 떴습니다. 분명 꿈입니다.
 
사방엔 본 적도 없는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근원을 모르겠는 성스러운 노래가 울려퍼집니다.
 
누군가 당신을 섬기면 꼭 이런 기분일 겁니다.
 
아쉽게도 이곳의 주인공은 당신이 아니지만.
 
그 섬김 받는 자가 된다면, 이토록 성스러운 곳에 홀로 남겨지게 되는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 관찰 판정 ✦ 
 
Vincent Valentin: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아지랑이 같은 인영이 당신 옆에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애셔를 닮은 것도 같습니다......만.
 
잡히지도 흩어지지도 않습니다. 빈센트가 무얼 하건 웃어 버릴 뿐이고,
 
그 웃음 소리는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 이성 판정 ✦ 
 
Vincent Valentin: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네가 좋아할 모습으로 왔어. 하지만 네가 나를 봐 버리면 돌아갈 수 없을 테니까 눈을 약간 가린 거고......
아무 꽃이나 뜯어서 꽃잎점을 봐.
애셔가 널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뭘로 시작할지는 네가 선택해.
 
생뚱맞은 제안입니다. 심지어 명령조라 그다지 유쾌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아무래도 이곳의 주인은 저것일 테고...... 거스르면 좋은 꼴을 보긴 어렵겠죠.
 
일단 호의적인 태도지만, 우리는 이유 없는 호의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세상에 어디 선한 사람만 있던가요......
 
Vincent Valentin:(뭔 사춘기 때도 안 한 걸 하래....... 마음속으로 엿을 날리며 꽃 하나를 꺾는다. 날 사랑? 좋아? 하지 않는다, 좋아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
 
마지막 꽃잎이었습니다.
 
그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진작 알고 있던 거였죠.
 
확인 사살을 당하는 건 좀 다르지만.
 
아무 이유 없던 꽃잎점이었을까요, 그럼......
 
순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꽃잎 하나가 피어오릅니다.
 
사랑한다.
 
옆에서 결과를 함께 중얼이던 그가 웃음짓습니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뭐라도 물으면 답을 하려나요.
 
Vincent Valentin:왜 웃어요?
 
???:웃겨서. 너.
이런 사랑이라도 괜찮아?
 
Vincent Valentin:스물둘한테 대뜸 꽃점 보라고 하는 놈보다 웃긴 게 존재하나.......
이런 사랑이 무슨 사랑인데요?
 
???:불합리적인 사랑.
직감하지 않았어? 뭔가 이상하다는 거.
 
Vincent Valentin: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이상했지. 왜 그런대요?
 
???:신이 장난을 좀 쳤어. 모든 사랑을 애셔에게 밀어넣고 그게 다시 널 향하게 했지. 빈센트 밸런타인. 이 일이 벌어진 덴 네 책임이 커.
네가 신의 질문에 대답한 순간 계약이 체결됐어...... 그 내용이 방금 말한 '사랑'에 관한 거고. 나한텐 이 오류를 수정할 의무가 있어. 그래, 그러니까......
난 오늘이 지나면 직접 널 찾아갈 거야. 오류를 수정하러.
 
Vincent Valentin:내가 질문을 듣고 대답을 했다고요? 신이랑? 무슨?
 
???:애셔를 네 것으로 만들고 싶니.
네가 끄덕였어. 그 뒤 과정이 좀, 길긴 했지만, 어쨌든 지금 이 상황이 됐고.
 
Vincent Valentin:그 오류 수정이라는 건 어떻게 하는 건데요. 비유 말고 직관적으로.
 
???:사랑을 원래대로 분배하면 되는 거지. 간단해.
 
Vincent Valentin:그럼 애셔는요?
그러니까, 나에 대한 애셔의 사랑은.
 
???:그것도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야. 그래서 하루의 시간을 주는 거고. 좀 즐기라고.
 
Vincent Valentin:좀 남겨 주면 안 돼요?
 
???:각자의 몫이 있는 거니까.
 
Vincent Valentin:다 남겨 주는 것도 아니고 요만큼만 남겨 달라는 건데?
 
???:다른 사람의 사랑을 빼앗아서?
 
Vincent Valentin:그렇게 되나? 예....... 뭐.
 
???:안 될 일이지.
 
Vincent Valentin:만나면 안 될 사람들도 있을 것 아니에요.
그런 사람들 걸 가져오면 효율적으로 괜찮지 않아요?
 
???:법칙은 효율을 따지지 않아. 당연히 예외도 없고.
 
Vincent Valentin:아니.......
줬다 뺏는 게 어딨는데?
뺏을 거면 적절한 보상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일 처리를 우리 아빠보다 못하네.......
 
???:하하. 그래도 소용 없으니 데이트나 마저 하러 가.
 
점차 사방이 어룽집니다. 눈을 뜬 채로 물에 잠기면 이런 시야일 겁니다.
 
모두 섞여 구분이 어려울 때쯤 암전이 찾아왔습니다.
 
.
 
.
 
.
 
02. 러브 리사이클링 오얼 업사이클링
 
찬 공기가 맨살을 스칩니다.
 
그제야 눈이 좀 트입니다. 여긴...... 기차네요.
 
아무래도 옆 사람에게 기대어 자고 있던 모양입니다.
 
뻔하죠.
 
홀랑 창가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내어 줄 사람......
 
애셔의 눈동자에 오렌지색 빛이 쏟아집니다.
 
노을진 눈을 가만 깜빡이던 애셔는 곧 당신을 향해 고개를 돌립니다.
 
또, 그 느적이는 목소리로......
 
✦ 듣기 판정 ✦ 
 
Vincent Valentin: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31
판정결과: 보통 성공
 
Asher:봐, 빈센트. 주황색 바다.
내가 사랑하는 거니까, 꼭 사랑하는 너랑 같이 보고 싶었어......
 
속닥이는 목소리가 진득하게 달라붙습니다. 연인이라도 된 기분이에요.
 
Vincent Valentin:(졸린 눈 깜빡이며 창밖 바라본다. 금방 말간 얼굴로 시선을 돌렸지만.) 넌 파란 바다를 더 좋아할 줄 알았는데.
 
Asher:다 다른 매력이 있는 거지. 이 시간엔 하늘이랑 바다가 하나인 것처럼 보이지 않니. 그치. (빈센트 한쪽 눈 쓸어 준다.) 졸리면 좀 더 자도 돼.
 
Vincent Valentin:(눈 감고 손에 얼굴 기댄다. 손바닥에도 짧은 입맞춤. 어쩌라고. 즐기래서 즐기는 중이다.) 같이 보자며.
 
Asher:(낮은 웃음소리. 사이로, 간지러워.) 으응, 그래도. 노을지는 바다 정도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는 거고...... 그리고 저것보다도, 난 네 자는 얼굴이 더 좋아서......
 
Vincent Valentin:(감은 눈 천천히 뜨고 바라본다. 웃음기 작게 걸려 있다.) 네가 노을 지는 바다 볼 날보다 내 자는 얼굴 볼 날이 더 많을걸.
 
Asher:(다른 쪽 뺨도 감싸면 두 손에 네가 폭 잡힌 게 기분 좋다. 상체는 어느새 완전히 사랑을 향했고, 입술이 맞닿았다 조용히 떨어진다. 여전히 가까이서 눈동자를 본다.) 응. 사랑해.
 
Vincent Valentin:(닿은 곳곳이 화끈댄다. 뺨도, 목도, 입술도. 마주하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감히 사랑을 발음하는 입술로 시선이 떨어진다. 저 말이 원래는 내 게 아니라는 거지. 행복한 동시에 비참할 수도 있나. 헛웃음이 터진다.) ....... 나도.
 
미묘하게 다정한 온도의 목소리, 딱 따스한 정도의 태양빛과, 조금 덥다 싶으면 내려앉는 시원한 바람.
 
둘만의 낙원을 찾아 여행을 이어가고, 약지에는 영원을 맹세하는 반지가, 수도 없이 맞춘 입술엔 밀애가…….
 
그런 영화 속 엔딩 크레딧 같다는 막연한 착각마저 듭니다.
 
역시 저 노을 탓일 거예요.
 
...
 
……벌써 노을이 진다고요?
 
방금까지 침대에서 아침을 맞고 있었는데.
 
✦ 이성 판정 ✦ 
 
Vincent Valentin:
SAN Roll
기준치: 49/24/9
굴림: 61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꿈도 그리 길지 않았고……
 
Asher:빈센트, 내가 얼마 전에 영화를 하나 봤거든. 이내길이라고. 들어 본 적 있어?
 
Vincent Valentin:으음. 전혀 모르겠는데.
 
애셔는 안주머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어 보여 줍니다.
 
✦ 자료조사 판정 ✦ 
 
Vincent Valentin: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1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 영원히 노을이 지는 이내길, 시간이 흐르면서 멈추고 있는 이곳에서 너와 마지막 하루를 보낼게. 】
 
노을을 배경으로 한 영화 티켓 같습니다.
 
어쩐지 물에 젖어 축축하지만, 글자는 전부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5년 전쯤 흥행에 실패한 이내길이라는 영화를 들어 본 것도 같습니다.
 
그 후, 이내길이라는 버추얼 리얼리티 관광지가 개발됐다는 소식도 들려왔고...... 별로 관심은 없었지만.
 
엄청 흥행했다나요.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아무튼, 두 사람은 이 버추얼 리얼리티 관광지(VRT)를 보러 온 모양입니다.
 
어지간한 부자도 한두 번밖에 못 왔다는 정도의 금액......일 텐데.
 
이 자식, 사랑에 눈이 멀어 은행이라도 털었나?
 
......
 
애셔가 은행털이범 답지 않게 담담하게 입을 엽니다.
 
Asher:거기엔 노을이랑 밤밖에 없어. 낮이 없대.
자세한 건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노을이 정말 예뻤거든. 잊을 수가 없더라. 그런데, 이걸로 VRT를 만든다니까.
너랑 오고 싶었어. 진짜 같지.
 
Vincent Valentin:응. 좋긴 한데....... 돈이 어디서 나서 이런 델 다 데려와?
 
Asher: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말구......
 
Vincent Valentin:그래, 뭐. 안 잡혔음 됐지.
 
Asher:도망 잘 쳐서 다행이지. 너랑 이런 데도 다 오고.
 
Vincent Valentin:도망이 좋은 재능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꽤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Asher:그치. (뭐가 좋다고 또 껴안고 흐흐 웃는다.) 꽤 오래 자던데. 어디 아프거나 하면 말해. 목은 안 뻐근한가......
 
Vincent Valentin:내가 그렇게 오래 잤나....... 뻐근한 것 같아. 네가 주물러 주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아니지, 씁. 나아질 텐데.......
 
Asher:으응...... 아프면 안 되지. (쪼물쪼물...... 이게 맞는진 잘 모르겠다.)
 
창밖에선 계속 같은 풍경이 반복됩니다.
 
이내길에는 정말로 기차를 타는 장면이 나오는 걸까요.
 
어쩌다 여기로 왔는지도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애셔는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당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어떤 것도 묻지 않습니다.
 
사소한 걱정 말고는,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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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쏟아지는 노을을 맞고만 있습니다. 슬슬 주황빛이 지겨울 따름입니다.
 
Vincent Valentin:신기하긴 하다. 진짜 노을밖에 없네.
 
Asher:그러니까 말야. 빈센트. (어느새 또 안고 있다.) 나 궁금한 거 있어.
 
Vincent Valentin:(고개 기울여 톡 기댄다.) 뭔데?
 
Asher:사랑은. 사랑은......
사람을 살게 할까, 죽게 할까.
 
Vincent Valentin: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에 따라 다르지 싶은데.
살고 싶게 만드는 사람도 있고, 죽고 싶게 하는 사람도 있겠고.......
 
노을과 평화로운 길 위로 일그러진 글자가 떠올라 있습니다.
 
『 SYSTEM. IRREGULAR LOVE RECYCLING 』
 
언제부터?......
 
조만간 글자가 하나둘 바뀌고,
 
『 이 세계를 지배하는 ■■ ■■의 법칙을, 반드시 기억해 줘.』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목적이랄 게 있는 걸까요?
 
✦ 이성 판정 ✦ 
 
Vincent Valentin:
SAN Roll
기준치: 48/24/9
굴림: 51
판정결과: 실패
 
이성 -2
 
그리고 거짓말처럼 기차가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누군가 우리를 내리게 하려는 것처럼, 그러니까, 꼭......
 
계속 타고 있으면 반드시 누군가가 둘을 해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하게도.
 
애셔가 빈센트의 손을 꼬옥 잡습니다.
 
Asher:도망치자. 음, 아마...... 장면이 바뀔 때가 돼서일 거야. 아님 내가 장면을 다 기억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버그일 수도......
아무튼 위험한 것 같다.
내려야 할 것 같아.
 
Vincent Valentin:(맞잡은 손 가만히 내려다보다 위아래로 살살 흔든다.) 끝이 뭐 이렇담....... 아쉽게.
 
Asher:나가서 진짜 바다 보러 가면 되니까. (뺨에 쪽......)
 
결국 못 이겨 내리면, 기차는 기다렸다는 듯 떠나 버립니다.
 
두 사람을 여기에 내려 두는 게 유일한 목표라도 되는 것처럼.
 
✦ 지능 판정 ✦ 
 
Vincent Valentin: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방금 그 말들은 뭐였을까요. 전부 모르겠지만, 하나만은 정확히 알겠습니다.
 
IRREGULAR LOVE. 분명 하루아침에 당신을 사랑하게 되어 버린 애셔의 감정을 가리키는 걸 거예요.
 
누가 봐도 비정상적입니다. 그 뒤의, 뭐, 재활용이니 뭐니 하는 건 잘 모르겠어도......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늦여름의 아득한 향이 코를 파고듭니다.
 
바싹 마른 양피지에 코를 묻은 것만 같습니다.
 
눈을 감으면 머리가 아찔하고, 그래서 억지로 고개를 들면 기억도 잘 안 나는 시절에나 느꼈을 것 같은 기분에 잠기는 공기......
 
이내길을 본 적은 없어도, 아무튼 현대 과학은 대단하네요.
 
기분까지 조작하는 건지, 단순히 분위기에 휩쓸린 건지.
 
애셔는 맞잡은 손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바라보는 표정이 꼭 오랜 시간 사랑한 사람을 보는 것처럼 애틋합니다.
 
원래 사랑하는 쪽은 당신이었는데.
 
Asher:아직은 못 나가나 봐. 끝까지 봐야 하나......
다음 장면이 아마 숲 옆에 있는 호텔이었을 텐데. 같이 갈 거지?
 
Vincent Valentin:좋은데. 진짜 그렇게 끝났으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거든.
세세하게도 기억한다. 네가 이렇게 좋아하는 영환 줄 알았음 나도 봤을 텐데. 가자.
 
애셔의 얼굴이 확연히 밝아집니다.
 
평소의 허허실실 웃는 표정이 아니라, 비유하자면 모시는 신을 보기라도 하는 눈빛으로......
 
비정상적인 사랑이라는 게 이런 거겠죠.
 
여름 바람에 순간적으로 숨이 막힙니다.
 
눈앞의 애셔가 과연 당신이 알고 있는 그가 맞을까요.
 
이렇게까지 열렬히, 환희에 젖어서, 곧 영혼이라도 내어 줄 것처럼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요.
 
이런 사랑이라도 괜찮은 걸까요?
 
Asher:(놓칠세라 깍지를 낀다. 웬일로 악력이 있다. 네가 날 행복하게 하고, 네가 주는 모든 것들이 내겐 그저 축복이고......)
(이런 사랑이라도 괜찮다. 먼저 걸음을 옮긴다.)
 
그 뒤로 좀전과 비슷한 글자가 떠오릅니다.
 
『 WARNING! 총량은 같으나 분포에서 에러 발견. 금일이 가기 전 버그 수정 예정. 』
 
『 WARNING! 소실될 수 있는 감정은 미리 저장해주세요. 』
 
『 WARNING! 과도한 저장은 파일의 손상을 불러옵니다. 』
 
『 WARNING! 과도한 저장은 감정의 손상을 불러옵니다. 』
 
그것들이 애셔의 목을 올가미처럼 휘감아 돌고 있습니다.
 
점점 단단히 조이나 싶더니 순식간에 떠나 버렸습니다.
 
Asher:(걸어가다 잠시 멈췄다. 제 목을 만지작...... 갸우뚱. 다시 저벅저벅......)
 
Vincent Valentin:(저 경고가 나한테 하는 경고인 건가? 뭐 어쩌란 건지 모르겠는데....... 깍지 낀 손 자랑이라도 하는 양 살랑살랑 흔들며 걷는다. 멀리 생각하기엔 주어진 시간이 짧다.)
 
✦ 관찰 판정 ✦ 
 
Vincent Valentin: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애셔의 목덜미에 이상한 게 있습니다. 희미하지만 발견해냈습니다.
 
감정 파일
 
도장으로 찍은 듯 흐릿하지만 확실히 모든 글자가 보입니다.
 
.
 
.
 
.
 
03. 그 방의 키스는 운명을 결정짓기엔 적격이었다
 
어느새 우리의 주위에 나무가 가득합니다. 숲길로 접어든 것 같아요.
 
코끝에 풀내음이 아스라이 맴돕니다.
 
그러다 흐르듯 사라집니다. 익숙하게.
 
발밑에선 밤이슬이 맺힌 나뭇잎들이 사부작 밟히는 소리가 들리고, ......
 
밤입니다.
 
별이 떴습니다. 별들이.
 
그리고 그 사이에 또 다시 글자가.
 
『 WARNING! 정보의 지대한 집약이 감지되었습니다. 』
 
『 SYSTEM. IRREGULAR LOVE RECYCLING ■□□□□ 』
 
누군가 이 발걸음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시간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오류를 찾아내어 수정하려 듭니다.
 
되게 성가시네요. 그냥 데이트 좀 즐기게 냅두지......
 
Asher:빈센트, 나 말야. 네가 죽으라면 내 의사 같은 건 상관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널 사랑해 마지 않았거든.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아, 그건 좀...... 아니지 않나?
그래, 널 사랑하지만. 사랑, 이라는 게 꼭 그렇게까지 극단적이어야 하나.
 
그리고 또 흐물하게 웃습니다.
 
여름밤처럼 희미한 사람의, 그의 입에 입을 맞추면 어쩌면 숲의 향기가 날 겁니다.
 
✦ 정신력 판정 ✦ 
 
Vincent Valentin: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한순간의 욕망이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Vincent Valentin:가벼워도 돼. 딱히 상관없는데. 내가 너한테 죽으라 할 일도 없을 거고, 네가 나 대신 죽는 그런 건 내가 싫고, 그냥....... 날 사랑한다며. 사랑하면 된 거야.
그리고 원래 한쪽이 극단적이면 한쪽이 좀 가벼워야 해. 내가 극단적이잖아.
충동적이고.
(깍지 낀 손을 제 쪽으로 당기고 내내 응시하던 입술 위로 짧게 입맞춘다. 계속 그렇게 지켜보다 눈살이라도 찌푸리시길.......)
 
Asher:(그런가. 그럼 됐다. 회로가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유구하게 그랬다. 생각 같은 걸 한다는 게 좀 귀찮았던 것 같기도 하고. 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눈을 감는다. 이러면 상대밖엔 느껴지는 게 없다. 따스히 맞닿은 피부와 옅은 숨소리 사이로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겠는 피가 도는 감각이...... 고개를 어느 쪽으로 기울이고 입은 천천히 열었다. 빈 손이 뒷머리를 가벼이 감싼다.)
 
Vincent Valentin:(귓가가 심장 뛰는 소리로 소란스럽다. 머리로 피가 과할 만치 공급되고, 열이 나고, 어지럽고. 살고 싶게 하는 사람과 죽고 싶게 하는 사람 중 넌 후자라고 이야기해 줬어야 했는데.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의 불안과 사랑 사이에서 아슬히 줄을 타는 와중에도 오가는 숨결은 더웠다. 알콜 한 방울 섞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먼저 물러난다. 엄지로 손등을 가만히 쓸었다.)
손 계속 머리에 둘 거야? 나 뒷머리도 꽤 열심히 정리하는데.......
 
Asher:(아쉬운 낌새도 없다. 반쯤 뜬 눈에 눈이 비친다. 머리카락 몇 번 쓰다듬다 손 거둔다. 제 딴에는 정리랍시고 한 건데 만족스러울지는 의문이다......) 더 할 기분이 아니야?
 
Vincent Valentin:(몇 번 쓰담는 손길에 또 기분이 한결 괜찮아진다. 이렇게 휘둘리고 사는 삶도 나쁘진 않을 텐데.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키스는, 다 좋은데 얼굴이 잘 안 보여서 아쉽더라.
 
Asher:지겹게 보고 있으면서 그래.
 
Vincent Valentin:너도 내 자는 얼굴 지겹게 봤는데도 계속 보고 싶다며.
 
Asher:아. (바짝 붙는다.) 많이 봐.
 
Vincent Valentin:(양뺨 찹....... 감싼다.) 하르퓌아도 관심을 가질 만하네.
 
웃음 소리를 뒤로 하고 어두컴컴한 숲 속을 걷다 보면, 만들어진 빛이 점차 시야를 밝힙니다. 그새 호텔에 도착한 모양이에요.
 
이내길의 주인공인 성현과 지연이 하룻밤을 머물고 간 곳입니다. 아무리 숲 속에 있다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호텔, 이네요.
 
애셔는 자연스럽게 빈센트를 방으로 안내합니다.
 
받은 열쇠는 404호실에 맞는 건가 보죠.
 
들어가면 다정한 향이 두 사람을 감싸안습니다.
 
앤틱한 인테리어가 우리를 아주 오래 기다린 것처럼 느껴집니다. 창으로는 열기가 가신 밤이 쏟아지고, 에어컨 바람이 또 시원하고 건조합니다.
 
✦ 관찰 판정 ✦ 
 
Vincent Valentin: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침대, 서랍, 벽장, 욕실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열고 싶어도 열리지 않습니다......만!
 
두 번째 서랍만은 열립니다. 영화에 나온 것만 구현돼 있나 봅니다.
 
✦ 행운 판정 ✦ 
 
Vincent Valentin:
기준치: 73/36/14
굴림: 3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쪽지가 있습니다.
 
『 사랑하기만 하면 그만인 거야? 더 욕심내는 게 좋지 않겠어? 』
 
Asher:(침대에 걸터앉아 옆자리 톡톡......)
 
Vincent Valentin:(쪽지 넣어 두고 옆에 풀썩 앉는다.)
 
Asher:(기다렸다는 듯 어깨에 머리 기댄다.) 주인공들이 여기서, 이러고 막 무슨 얘기를 해. 두 사람의 사랑은 뭔지. 밤은 무엇이고, 서로가 누구인지.
나는 그런 거 묻지 않을게. 그냥 이러고 있고 싶어. 아까부터, 기분이 좀 이상한데......
......나는 널 사랑해. 이건 변하지 않겠지.
 
눈을 감고 조곤히 읊조리는 목소리는 당신만을 위한 자장가이자 연서입니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끊임없는 고백까지 그럴까요.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동요하는 감정에 그저 반응하는 것뿐만은 아니고......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천천히 중얼이는 말들은 결국 사랑해 세 글자로 귀결됩니다.
 
그것이 당신의 이름이고 나의 이름이라는 것처럼.
 
이 밤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내 사랑은 끊이지 않을 거라고 속삭이는 말엔 익숙한 우울감이 묻어 있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애셔인가요.
 
Vincent Valentin:사랑해. 장담컨대 변하지 않을 거고.......
(어깨에 기대어 있는 머리 위로 또 머리를 기댄다.) 네 마음이 변해도 말이야. 하루아침에 그저 그런 사이가 되어 있어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
 
Asher:그러지 않을 거라고 말해 줄 수는 없는 거니. 내 마음이 변하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사랑해. 사랑해야 해. 난 그걸 느꼈거든. 세상의 모든 사랑을 내가 다 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널 사랑하고 너만 위해야 한다고. 그러니까.
아, 정말. 내가 이런 걸 구걸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확신을 좀 줄래, 내 사랑은 사랑이고 내가 널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내가, 이상하지, 내가 지금 좀 불안해서 그래. 하하. 이상하지......
 
Vincent Valentin:내가 네 마음을 어떻게 확신하겠어.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건.......
네 사랑이 정말로 네 사랑이고, 네가 날 영원히 사랑하길 바라는 게, 그게 다야.
사랑해. 사랑해 줄래, 제발. 난 아주 꼬였고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라 남의 사랑도 턱턱 가져다 쓸 만큼 너한테 사랑이 받고 싶거든.......
우린 운도 나쁘지. 어쩌다 너 같은, 또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하게 돼서.
 
Asher:사랑해. 세 글자로 간단히 증명되는 거였으면 정말 좋았겠다. 아무리 발음해도 도무지 내가 네 옆을 영영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를 않는데. 사랑해. 사랑해, 빈센트. 가만히 바라지만 말고.
(젖은 목소리에 반해 조용히 내리깐 눈이 건조하다. 심장은 드물게 빠른데 어째 피는 제자리에 고여 있는 것만 같다. 차게 식은 숨을 내쉰다.) 잡아 줘. 영원히 날 좀 네 옆에 둬 달라고...... 말뿐만이어도.
 
Vincent Valentin:(넌 진짜 네 마음이 아닐 때에만 내가 바라는 말을 해 주는구나. 원래였으면 꿈도 못 꿨을 말이다. 그러니까, 너는, 실제지만 실제가 아니다. 이 공간처럼. 긴 한숨. 박동 하나하나가 무겁게 떨어진다. 차가운 손을 쥐었다.) ....... 사랑해. 이 세 글자가 한없이 가벼운 말이었으면 정말 좋았겠다. 네가 언제든 말할 수 있게.
잡으면, 내가 계속 이렇게....... 영원히 잡고 있으면.
내가 또다시 네 후회가 되는 건 아닐까.
 
Asher:괜찮다고 하잖아. 나 이제야 머물 곳을 찾은 것 같았단 말이야. (그 위로 다른 손 겹친다. 두 손으로 꼬옥......) 그런데 아까부터, 실은 그런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그건 괜찮지가 않거든.
괜찮은 줄 알았는데, 이젠 그렇지가 않아......
안아 줘. 그리고 놓지 마.
 
Vincent Valentin:(터무니없는 생각들이 고개를 불쑥 내민다. 정말 날 이만큼도 사랑한 적이 없었을까? 이 사랑들이 진실로, 낱낱이 타인의 것일까? 한 줌 정도는 네 것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반대편 손으로 어깨를 감싸 안았다. 느릿하게 토닥인다.)
난 늘 최선을 다해서 널 붙잡고 있는데.......
사랑해. 사랑한다며....... 그럼 떠나지 마.
 
그렇게 불안한 사랑을 속삭였습니다.
 
끊임이 없을 것 같던 말엔 점차 간격이 벌어집니다. 그 사이에 온기가 있었는진 잘 모르겠어요.
 
밤이 끝나갑니다.
 
하늘은 보랏빛으로 밝아지는 게 보통이지만......
 
어쩐지 창밖은 오렌지 색입니다.
 
그게 당연하다는 것처럼. 그래요, 여긴 가상현실 속이었죠.
 
한참 손을 잡고 안겨 있던 애셔가 무언가 중얼댑니다.
 
✦ 듣기 판정 ✦ 
 
Vincent Valentin: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Asher:목이 아파......
 
애셔는 불편한 듯 목을 매만지고 있습니다. 손가락 사이로 좀전보다 더 선명해진 글자가 보입니다, 만......
 
어째선지 끝부분부터 사라지고 있습니다.
 
Asher:(갸우뚱...... 미간 좀 찌푸렸다 금세 풀린다.) 마지막 장면을 보러 갈 차례야, 빈센트.
 
애셔는 마지막을 얘기하는 사람 치곤 꽤 태평합니다.
 
정말로 괜찮은 게 맞을까요?
 
몸을 일으켜 나갈 채비를 하는 애셔가, 왜인지 다시 멀게 느껴집니다.
 
그런 건 순간마다 달라지고 있습니다.
 
...
 
그리고 다시, 글자가 떠오릅니다. 역시나 목을 감고 있는 것들이......
 
『 SYSTEM. 정보 분배 진행 중. 원본 파일 손상 위험이 있으니 조속히 백업해주세요. 』
 
『 SYSTEM. IRREGULAR LOVE RECYCLING ■■□□□ 』
 
애셔가 마구 깨져 보인 건 순간이었습니다.
 
사람이 일그러지고, 노이즈가 가득 껴서는, 조금씩 부서지며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아주 오래된 게임의 끝처럼.
 
✦ 듣기 판정 ✦ 
 
Vincent Valentin: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72
판정결과: 실패
 
"......정신 차리세요!"
 
모르는 목소리와 함께 빈센트의 손을 누군가가 강하게 잡아챕니다.
 
끌려가면, 동시에 애셔는 완전히 깨집니다.
 
.
 
.
 
.
 
04. 열기에서 영원히 도망갈 순 없어
 
눈을 뜹니다.
 
연구원 같은 차림의 사람들이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당신의 손목에 붙어 있는 기계 장치들을 제거하고는 리모컨을 몇 번 만집니다. 누워 있던 침대의 등받이가 천천히 올라가고......
 
➤:괜찮으세요? 저는 WUSL 직원입니다. 체험을 진행하던 도중 갑작스러운 오류를 발견해서 급히 체험을 중단했어요.
너무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했던 버그라 저희도 미처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금액은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두 분에게 이상은 딱히 보이지 않으니 걱정 마세요.
 
연구원이 돌아본 곳에서는 애셔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 관찰 판정 ✦ 
 
Vincent Valentin: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감정
 
애셔의 목에 여전히 선명히 적힌 글자입니다. 뒤에 있던 두 글자는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습니다.
 
애셔는 불편한 듯 그 위를 만지작댑니다. 또, 조금 숨이 차 보이는데......
 
어쨌든 우리는 간단한 절차를 밟은 뒤 호텔을 벗어났습니다.
 
하늘엔 노을이 잔뜩 깔렸습니다. 이렇게 보니까 가상현실과 현실이 그다지 다를 것도 없네요.
 
가만히 노을을 바라보는 애셔는 아쉬움을 표현하지도, 다음을 기약하지도 않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하늘에는 또......
 
『 SYSTEM. 분배 과반수 성공, 원본 파일이 일부 손상 되었습니다. 』
 
『 SYSTEM. IRREGULAR LOVE RECYCLING ■■■□□ 』
 
Asher: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Vincent Valentin:으음. 갑자기?
 
Asher:아니야, 그냥. 아무것도.
 
직감할 수 있습니다.
 
밸런타인을 보는 눈입니다.
 
✦ 이성 판정 ✦ 
 
Vincent Valentin:
SAN Roll
기준치: 46/23/9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감소 없음
 
Asher:만약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다면......
달라질 게 있을까?
 
Vincent Valentin:....... 왜, 왜?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해.
 
Asher:원래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 아무것도 없던 때로.
너는 날 스쳐갈 뿐이고, 내가 머물 곳은 되지 못했던 날로.
 
애셔는 한 번 웃고는 뒷모습을 보입니다.
 
천천히 걸어가는 게 또다시 무너져 버릴 것만 같습니다. 이번에는 깨어날 꿈도 없는데요.
 
노을은 어느새 저물어 동쪽 끝이 보랏빛으로 물들었습니다.
 
빠르게 색을 덧대는 하늘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자전거 하나가 애셔를 향해 빠르게 달려오고 있습니다.
 
✦ 민첩 혹은 근력 판정 ✦ 
 
Vincent Valentin:
근력
기준치: 65/32/13
굴림: 78
판정결과: 실패
 
자전거가 애셔의 곁을 훅 스쳐갑니다.
 
애셔는 그제야 놀란 듯 뒤로 주저앉습니다.
 
애셔 hp -1
 
자전거의 주인은 사과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다시 빠르게 달려갑니다. 누군가를 다급히 부르는 것 같아요.
 
사람을 다치게 하고서는 저렇게 아무 말도 없이 쌩 지나가다뇨.
 
정말 예의가 없는 사람입니다. 자연스레 눈을 흘겨 보면......
 
그는 급기야 자전거를 버리고 누군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 반대편에서 오던 사람도 보란듯이 상대에게 달려가곤 이윽고 로맨스 영화 마냥 부둥켜 안습니다.
 
아, 재결합이네요! 딱 알겠습니다.
 
아주 드문 일도 아니고, 뭐.
 
얼마나 급했으면 저렇게 달려갔나 싶긴 해도, 당신이 신경 쓸 건 아닐 겁니다.
 
Asher:밤이 되면 모르는 길이 나올 것 같지.
 
어느새 툭툭 털고 일어난 애셔는 아까부터 꽤 감상적인 느낌입니다.
 
Vincent Valentin:괜찮아?
 
Asher: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다시 가자, 가자......
 
애셔는 다시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걷기 시작합니다.
 
미묘하게 따라가기가 버겁습니다. 닿을 듯 하면서도.
 
팔랑...... 애셔의 주머니에서 뭔가 떨어졌습니다.
 
그 영화 티켓 같은데요. 줍습니까?
 
Vincent Valentin:(좋아하는 영화라면서 티켓을 이렇게....... 티켓 줍는다.)
 
뒷면에 메모가 붙어 있습니다. 슬쩍 살펴 봐도...... 모르겠지?
 
Vincent Valentin:(모르겠지. 슬쩍 본다.......)
 
분명 애셔의 필체는 아닙니다. 책의 일부를 찢어낸 것 같습니다.
 
➤:『 행복 총량의 법칙 : 한 공간에서 가질 수 있는 행복은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그곳에 존재하는 생명이 많을수록 하나의 존재가 가져갈 수 있는 행복은 줄어들게 된다. 누군가가 오롯이 행복하게 되면 누군가는 오롯이 행복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
『 이 세계는 여러 개의 법칙으로 지배되고 있다. 총량의 법칙 그리고 ■■의 법칙 등이 대표적이겠다. 둘은 공생 관계로 이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고 필요할 경우 불순물을 제거하기도 한다. 인류가 아닌 존재하는 이 우주를 위해 생성된 법칙은 기본적으로 이들에게 관대하고 여럿의 기회를 주나……. 』
 
그 옆에 휘갈긴 글씨가 있습니다.
 
아! 애셔의 것입니다.
 
➤:A는 홍수처럼 밀려오는 감정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감당할 수 없으면 흘려보내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으나, 그는 감정을 버리고 싶은 마음과 감당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고 했다. 나는 그걸 이해할 수가 없어서…….
 
앞면으로 돌려 보면, 구석에 작게 대사 몇 줄이 적혀 있습니다. 이내길에 나오는 대사인가 봅니다.
 
➤:ㅡ 사랑의 신은 역사적으로 늘 있어왔어. 억지로 사랑하게 하는 것도 가능했지. 그치만 결국 그런 사랑은……, 벌을 받지 않았던가? 그렇게라도 사랑하고 싶은 건가?
ㅡ 하지만 억지로 만든 사랑이라도 진심이라면 그걸 비난할 사람이 있나? 지금은 낭만의 시대 아니에요?
ㅡ 만들어진 낭만은 연극에 불과하니까.
ㅡ 꽤 단호하네요. 저는 그런 연극도 좋아해요. 방금 우리가 한 키스처럼요. 우리는 지금 키스하기로 합의한 뒤에 입을 맞춘 거잖아요? 이것도 연극 아니에요? 그치만 낭만적이었어.
 
✦ 지능 판정 ✦ 
 
Vincent Valentin: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이것은 아마 세상의 감정에는 총량이 있다는 논리 같습니다.
 
또한 인위적인 사랑은 아름답지 않으며……, 감정에 대한 고민도 보이네요. 이것도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곘지만요.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사랑에도 총량이 있다면?
 
그리고 그 전체를 한 사람한테 몰아넣으면, 지금의, ......아까의 애셔처럼 되지 않을까요?
 
『 SYSTEM. 파일의 핵심 요소를 저장하세요. 』
 
『 SYSTEM. IRREGULAR LOVE RECYCLING ■■■■□ 』
 
그걸 다 읽고 나서야 애셔가 멈춰섭니다.
 
이상합니다.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Asher:(주머니 뒤적뒤적...... 그제야 뒤를 돌아본다. 아, 화색 도는 얼굴로 다가온다.) 주워 줬구나.
 
Vincent Valentin:(선뜻 티켓을 건네지 않는다. 그저 빤히.......) 응. 흘렸길래.
 
Asher:고마워. 돌려 줄래? (손 내민다.)
 
Vincent Valentin:(티켓 대신 손을 텁, 올린다.) 목은 괜찮아? 아프다며.
 
Asher:(한 번 꼭 쥐었다가 놓았다. 웃는다.) 아직 아파.
 
Vincent Valentin:(놓네. 손 가만히 응시하다 살짝 그러쥐었다.) 왜 아프지....... 좀 봐 줄까?
 
Asher:(그대로 있다.) 그래, 봐 봐. 나아질지는 모르겠는데. 음, 막 조여. 누가 목을 조르는 것 같아. 그래서 바깥면보다도 숨이 막히는 게 문제야.
 
Vincent Valentin:(손가락으로 턱을 살짝 들었다. 관찰한다고 뭔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시간 끄는 거지. 손끝이 목 어딘가를 콕, 짚었다.) 으음. 뭔가 보이진 않는데.
 
Asher:(자연히 내려다본다.) 그렇지. 너도 모르겠지.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Vincent Valentin:(짚은 손끝이 동맥 위로 자리를 옮긴다. 평소와 다를 게 없는 느릿한 박동. 조용히 손을 뗀다.) 아프다는데 어떻게 그래.
 
Asher:어쩌겠어. (손 떨어지면 고개를 바로했다. 잡히지 않은 쪽 다시 내민다.) 티켓.
 
Vincent Valentin:(마지못해 티켓 손바닥 위에 올려 준다.) 기분이 안 좋아 보여.
 
Asher:(티켓 주섬주섬 넣는다.) 괜찮아. 난 원래 기분 좋은 날이 별로 없었거든. 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거지...... 그게 느껴져.
난 아직 널 사랑하지만.
......난 항상 끝을 생각하니까. 가자.
 
Vincent Valentin:손 잡고 가면 안 돼?
 
애셔는 당신의 손을 맞잡고서 걸음을 옮깁니다.
 
어느새 노을보다 밤하늘이 더 진합니다.
 
애셔의 눈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었나요.
 
무얼 가리고, 무얼 드러내고 있던가요.
 
아, 그리고......
 
『 SYSTEM. IRREGULAR LOVE RECYCLING. 』
 
『 SYSTEM. IRREGULAR? LOVE? RECYCLING. 』
 
『 SYSTEM. IRREGULAR RECYCLING. 』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아니, 인기척인가요? 지나가는 바람인가요, 공기, 그림자......
 
멈춘 것만 같은 시간 가운데서 목소리가 속삭입니다.
 
➤:돌아보지 마. 쟤를 미치게 만들어 버리는 수가 있어.
몇 가지 재밌는 사실을 알려 줄게.
짐작했겠지만, 애셔의 사랑은 오류로 간주되어 강제로 수정당하고 있어.
나는 이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을 완전히 뒤집을 수는 없지만...... 너에게 힘을 줄 수는 있지.
저 사랑을 저 안에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힘을.
도와 줄까?
 
Vincent Valentin:보존해도 안전한 거죠?
 
➤:그걸 알려 주면 재미가 없지.
어떻게 할래?
 
Vincent Valentin:왜 도와주는 건데요?
 
➤:이건 재밌거든.
 
Vincent Valentin:안 하면 재미가 없겠네.
 
➤:그렇지.
 
Vincent Valentin:애셔도 더는 날 사랑하지 않겠고.
 
➤:그럼.
 
Vincent Valentin:도와줘요.
 
➤:좋아. 영원히 같이 걸어 가. 알아 듣지?
 
대답도 듣지 않고 존재는 옅어지더니 곧 사라져 버립니다.
 
대가가 뭔지는 모르겠어도, 방법 하나는 알았으니까.
 
✦ 이성 판정 ✦ 
 
Vincent Valentin:
SAN Roll
기준치: 46/23/9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이성 -2
 
동시에 세상이 다시 흘러갑니다.
 
애셔가 서서히 멈춰섭니다.
 
Asher:도착했어.
 
이내길, 이별길에.
 
.
 
.
 
.
 
05. 비정상적 사랑을 알려주는 세계의 법칙
 
✦ 관찰 판정 ✦ 
 
Vincent Valentin: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직 가상현실 속인가요? 이내길이 정말로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요.
 
그렇게 흥행한 영화도 아니고, 영화를 찍은 장소 같은 게 남아 있을 이유도 없지만......
 
아주 낡은 표지판에 이내길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아니,
 
이별길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표지판 아래에는 갈림길이 나 있습니다.
 
사방으로는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있는데...... 당신이라면 알지도 모릅니다.
 
아스포델.
 
두 길 모두 어느 쪽으로 향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목적지 따위 알 게 뭔가요. 영화에는 나오지 않으니까. 알 수 없으니까. 사랑의 끝이 늘 그런 것처럼.
 
천천히 글자가 새겨집니다.
 
『 SYSTEM. IRREGULAR LOVE RECYCLING ■■■■■ 』
 
『 NOTICE. 마지막 수정 경로로 진행 중입니다. 좌우로 나누어 진입하세요. 』
 
『 WARNING! 같은 저장 경로로 절대로 진입하지 마세요. 』
 
애셔는 가만히 당신을 바라봅니다.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Asher:사랑은 사람을 살게 할까, 죽게 할까.
 
사랑에 빠지는 건 이런 기분인가요?
 
꼭 세상을 주고 싶고, 둘이라면 함께 영원토록 도망만 다니더라도 괜찮겠다는 안일함이 들고.
 
조금도 아름답지 않은 기분이 들더라도,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고.
 
때론 죽고만 싶더라도......
 
Vincent Valentin: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지.
 
Asher:왜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하고 마는 걸까.
 
Vincent Valentin:애셔.
괜찮은 것 맞지.
 
Asher:왜 모든 건 언젠가 끝나야만 하는 거야?
 
Vincent Valentin:나 좀 봐 봐. 어?
 
Asher:응, 밸런타인.
 
Vincent Valentin:밸런타인?
 
Asher:아니야?
 
Vincent Valentin:빈센트....... 응? 빈센트지.
 
Asher:응, 빈센트.
나 안 괜찮아.
 
Vincent Valentin:어디가. 목? 아니면 기분이 안 좋아?
 
Asher:눈감을 수가 없을 정도로 감정이 너무 컸어. 답지 않게.
그래서 그 빈 자리가 너무 커. 사라지는 게 느껴져. 이대로면 곧 끝이 오겠지.
솔직히, 솔직히 말해도 돼?
 
Vincent Valentin:말해. 괜찮아....... 괜찮아.
 
Asher:나 무서워.
 
Vincent Valentin:안아 줄까.
 
Asher:안아 줘.
 
Vincent Valentin:(가까이 다가가 조심스레 끌어안는다. 토닥이는 손끝이 미약하게 떨려 온다. 나도 무서워. 그런 말을 꾹꾹 눌러내며 등을 쓸었다.)
 
Asher:(마주 안지 못한다. 또 후회다. 끝을 생각하고 거리를 둘 거였으면 끝까지 그랬어야지. 사랑은 사람을 살게 할까, 죽게 할까. 지금 나는 도망치고만 싶은데...... 곁에 네가 있다는 것에 묘한 안도감이 들고.) 나는, 빈센트. 나는. 사랑이 다하면 난 또 어디로 도망쳐야 해?
 
Vincent Valentin:(마주 안지 않은 만큼 세게 끌어안는다. 여유를 모르고 뛰는 심장 소리가 여유만 알고 사는 심장에게 전해질 만큼 가까이. 손에 닿는 옷자락을 붙잡듯 쥐었다.) 왜, 도망을, 왜....... 잡아 달라고 했잖아. 놓지 말라 했잖아, 애셔.
내가 또 네 후회가 돼도 괜찮다고 했잖아.
 
Asher:그때까진 그랬지. 그땐 다 영원할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잖아. 그렇지.
이런 건 나한테 너무 버거워. 갑작스런 변화들, 감당 못 할 상황이랑...... (상대 등허리에 팔 가벼이 감아 안는다.) 내가 견디지 못하는 것들. 난 내성 같은 게 없거든......
너는 또 내 후회가 돼도 괜찮니.
 
Vincent Valentin:후회라도 돼서 네 옆에 남아 있으면 안 되는 거야?
 
Asher:너 때문에 내가 괴로워도 괜찮아?
 
Vincent Valentin:.......
나 때문에 괴로울 것 같아?
사랑해.
그런데 이게 너한텐 고통이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Asher:후회는 늘 아프지. 차라리 당장에라도 죽어 버리고 싶게 하고.
괜찮아. 사랑해. 나 아직은 널 사랑해. 네가 원하는 대로.
난 처음으로 후회를 했던 순간부터 줄곧 아팠으니까.
 
Vincent Valentin:....... 내가 널 죽어 버리고 싶게 만들면서까지 널 사랑하는 게 맞을까?
 
Asher:이미 그런 지 좀 됐어. 너는 내 이름을 알잖아. 그러니까 이제 와서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고.
 
Vincent Valentin:애셔. 애쉬.......
사랑한다고 해 줄래.
 
Asher:사랑해. 죽고 싶을 만큼.
 
Vincent Valentin:미안해.
....... 사랑해.
 
꽃 향기가 진동합니다.
 
사랑이 진동합니다.
 
두 사람의 감정이 산발적으로 뒤엉키다 산화하고, 또 쏟아내려 숨통을 틀어막습니다.
 
✦ 지능 판정 ✦ 
 
Vincent Valentin: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59
판정결과: 실패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 법칙을 지배하는 사랑.
 
결국 우린 사랑의 아래 있는 거예요.
 
영원이라는 건 존재할까요.
 
이별을 도처에 두고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과연 잔인합니까.
 
사랑하는 것과 살아가는 것 중엔 무얼 골라야 하죠......
 
밤과 별이 드리웁니다.
 
세상에는 다시금 사랑이 흘러넘치기 시작하고, 이제 당신은 선택해야만 합니다.
 
세계의 사랑을 훔쳐서 영원히 도망칠까요?
 
아니면 사랑이 없었던 때로 돌아갈까요.
 
Vincent Valentin:(사랑보단 후회가 오래 남지. 난 이미 네 후회고, 네 이름을 오래 잊지 못할 거고....... 가볍게 둘러진 팔을 끌어 빈틈없이 안도록 종용한다. 분명 오늘을 후회할 것이다. 그냥 그때 도망쳤어야 했는데. 네가 날 죽고 싶을 만큼 사랑하게 했어야 했는데.)
우린 사랑보단 후회가 잘 어울리지.
 
결국 둘은 갈라집니다.
 
웃긴 일입니다.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요.
 
사랑은 무엇일까요.
 
애셔가 떠나며 말했습니다.
 
널 사랑한다고.
 
언젠가 내가 다시 널 사랑하게 된다면, 그때야말로 영영 도망쳐 버리자고.
 
그리고 더는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불고, 별이 머리 위로 내려앉습니다.
 
유성우입니다.
 
누군가의 목숨이 저물고, 사랑이 저물고 있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살게 하나요, 죽게 하나요?
 
저 유성우는 죽음인가요.
 
이젠 애셔의 뒷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만남 없는 이별이 존재한다면 꼭 이런 모양일 겁니다.
 
두 사람의 인생에서 한 사람의 마음을 덜어낸 것 같죠.
 
애셔가 걸어간 길이 서서히 어두워지다 빛무리로 흩어집니다.
 
바람이 속삭입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살아간다.
 
살아가야 한다.
 
사랑후회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도 길을 떠났습니다.
 
영원한 꽃잎점은 사랑으로 숨을 쉬는 한 끝이 없을 테고, 그럴 때면 줄곧 바람이 당신을 감쌀 겁니다.
 
홀로 걷는 길은 언제나처럼 고요합니다.
 
그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고, 누구의 온기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늦여름의 공기가 폐를 파고듭니다.
 
무덥고, 정신이 아슬하며, 눈물을 쏟으면 거짓말처럼 산화할 것 같은.
 
무정하고 무고한 향이 당신의 손을 그러쥡니다.
 
무결한 사랑 같은 게 어딨겠어요.
 
한 걸음 뗄 때마다 발 뒤로 길이 무너집니다.
 
이별은 비가역적입니다.
 
하지만 이 끝에도 노을이 지고, 밤이 흐르고, 아침이 찾아오고......
 
마침내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무심한 글자가 당신을 반겼습니다.
 
『 SYSTEM. IRREGULAR LOVE RECYCLING 』
 
『 SYSTEM. PRAY FOR YOUR IRREGULAR LOVE 』
 
『 에러를 복구하였습니다. 』
 
당신의 비정상적인 사랑을 경애합니다.
 
누군가의 속삭이는 소리와 함께, 까마득하게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천천히 시간이 흐르고, 꽃밭을 본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분한 으르렁거림이 들리기도 하다가 곧 눈을 뜨면……
 
.
 
.
 
.
 
빈센트는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옆에는 거짓말처럼 애셔가 잠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알죠.
 
하루 동안 세상처럼 당신에게 열렬하던 이는 꿈처럼 흩어지고 말았다는 것을.
 
조금 더 눈을 붙입시다.
 
우린 언제나 후회뿐이니까.
 
애셔 생환, 빈센트 생환
 
빈센트 이성 1 회복
 
그리고, 시들지 않는 아스포델 한 송이.
 
END 2. 사랑의 끝에 이별이 아니라 아침이 찾아온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