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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말려 심장에 꽂는 법 / KPC: Asher, PC: Vincent Valentin

*
 
⋘ ───── ∗ ⋅◈⋅ ∗ ───── ⋙
 
COC 7th fanmade scenario
 
눈을 뜨자 보이던 맑게 갠 하늘.그곳은 이신이 사라진 여름이었습니다.아니, 당신만이 이신을 기억하는 세계.
 
KPC 이신 PC 백진오
 
Written by Team.Ganada
 
2025.05.06.
 
───────  ───────
 
안아 줘.
 
.
 
.
 
.
 
새벽을 적시던 비는 어느새 폭우가 되어 내리는 중입니다.
 
개학을 하루 앞둔 지금, 진오는 집에 홀로 남아있습니다.
 
말발굽 소리처럼 휘몰아치는 비,
 
색을 잃은 잿빛 하늘,
 
습한 여름.
 
기승을 부리는 여름은 꺾일 기미 하나 보이지 않으매 비는 더위를 감추지 못합니다.
 
특별한 것 없는 일상입니다.
 
진오가 괜히 강수량에 대해 떠드는 뉴스에 집중하다 보면,
 
✦ 듣기 판정 ✦ 
 
백진오: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쏴아아-
 
끊이지 않는 빗소리, 그 사이 이질적인 소리도 함께 들립니다.
 
“8월 하순을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의 강수량이….”
 
빗소리보다 조금 더 거칠고 무게 있는 소리가 들립니다.
 
“새벽부터 시작된 비는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
 
“시간당 100mm로 인천 전역을 시작해 전국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졌으며,”
 
-똑
 
“기습폭우로 인한 피해 역시 속출하는 중입니다.”
 
똑똑.
 
확실하게,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택배를 시켰던가요?
 
누가 집에 방문하기로 했던가요?
 
기억을 더듬어도 그런 일은 딱히 없습니다.
 
그러나 진오가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팟-
 
몇 가지 소리와 함께 가전제품들의 불이 꺼집니다.
 
정전입니다.
 
우중충한 하늘 덕에 잿빛이 슬금 들어온 집안은 낮임에도 어둑하네요.
 
인터폰마저, 지직, 뚝.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습니다.
 
......어째 예감이 좋지 않습니다. 문을 열어 줄 건가요?
 
백진오:(문 앞으로 가 문에 귀 댄다.) 누구세요?
 
......
 
......진오야?
 
다행히도 이름 모를 방문객은 아닌 모양입니다.
 
꽤 익숙한 목소리…….
 
그래요, 이신인 것 같은데.
 
비가 힘껏 쏟아지는 창밖을 보면, 어떤 이유에서 연락도 없이 찾아왔을지 쉬이 예상되지 않습니다.
 
백진오:(엥. 문 벌컥 연다.) 뭐야? 왜 왔어?
 
여전히 어둑한 실내로 희미한 빛이 슬금 들어섭니다.
 
문이 열리고, 문 앞에 선 상대를 확인하면……
 
뚝, 뚝.
 
흥건히 젖은 바닥이 보입니다.
 
그리고, 물벼락을 맞은 듯 푹 젖은 옷을 입은 이신도 함께.
 
빗물이 방울방울 매달린 머리카락, 하염없이 물이 떨어지는 옷, 또…….
 
이신:진오야.
 
당신을 부르는, 파리한 인상의 이신.
 
✦ 심리학 판정 ✦ 
 
백진오:
심리학
기준치: 45/22/9
굴림: 3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신의 불안한 눈길이 당신을 향합니다.
 
한참을 살피더니, 이유 모를 한숨도 함께 뱉네요.
 
이신:괜찮아?
 
……무엇이?
 
백진오:아니, 그건 내가 할 말이고....... 꼴이 왜 이래?
일단 들어와 봐. 수건 줄게.
 
이신:아, 음. 으응. 괜찮으면 됐어. 춥다.
 
이신은 언제 목소리를 떨었냐는 듯 표정을 고칩니다.
 
그저 태연한 낯으로 현관에 들어서서는, 멀거니 물을 뚝뚝 흘리면서......
 
다시 전원이 들어온 네모난 상자 속 뉴스는 여전히 이번 기습폭우를 다루고 있습니다.
 
화장실에서는 뽀송한 수건을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
 
아, 부엌 찬장에 고이 모셔둔 티백으로 차가운 이신의 몸을 녹일 수도 있겠네요.
 
이신은...... 저러다 감기라도 걸리는 건 아닌지.
 
백진오:(의아한 눈빛으로 위아래 주욱 훑다가 화장실로 간다. 수건부터 줘야지.......)
 
습기 가득한 눅눅한 하루라 해도 수건은 뽀송한 게 제구실을 할 수 있겠습니다.
 
수건을 꺼내던 중,
 
✦ 관찰력 판정 ✦ 
 
백진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가지런히 놓인 칫솔이 눈에 밟힙니다.
 
당신이 좋아하던 색이었죠.
 
그런데, 오늘따라 화장실 바닥이 이상하게 미끄럽...... 앗!
 
✦ 행운 판정 ✦ 
 
백진오:
기준치: 84/42/16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겨우 중심을 잡았습니다.
 
휴!
 
백진오:(수건 두 장 꺼내 다시 현관으로 향한다. 한 장은 이신에게, 한 장은 현관 앞 바닥에 깔았다.) 닦고 들어와.
 
이신:응. (머리 탈탈탈...... 옷 위로 수건 톡톡 두드려 물기 닦는다. 그제야 집안에 들어섰다.) 뭐 하고 있었어?
 
백진오:그냥 티비 보고 있었어. (고개 까딱....... 뉴스 화면 가리킨다.) 안 추워? 씻을래?
 
이신:아냐. 춥긴 하지만...... 금방 떠날 건데, 뭐.
 
“기습폭우에 의한 피해가……”
 
주간 날씨를 알려주는 화면은 온통 먹구름으로 가득합니다.
 
비, 비, 그리고 비.
 
여름철 장마는 흔한 일이라고 하지만, 전국을- 그리고 한 주가 비로 가득한 건 이번 여름 중 처음입니다.
 
“유명 스포츠 선수 A씨의 은퇴 사실에 관한 루머들이……”
 
✦ 지능 판정 ✦ 
 
백진오: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그랬던가요? 다음으로 다루는 뉴스 내용은 어디선가 얼핏 들어본 것 같기도 합니다.
 
이신:뉴스 재미없지. (소파에 풀썩 눕는다.)
 
백진오:아무것도 안 보는 것보단 뭐....... (부엌으로 향한다. 찬장 뒤적뒤적.......)
 
찬장에는 티백이 여러 개 놓여 있었습니다.
 
어디서 받았던 건지, 직접 산 건지 기억은 흐릿하지만요.
 
덜컹, 내부는 텅 비어있습니다.
 
분명 많이 남아있었는데, 어느새 모두 먹었을까요?
 
지금 이신에게 줄 수 있는 건 따듯한 물이 전부.....지만.
 
모르는 일이죠. 조금 더 뒤져 봅시다.
 
✦ 행운 판정 ✦ 
 
백진오:
기준치: 84/42/16
굴림: 6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손에 매트한 포장지가 만져집니다.
 
잡아 꺼내 보면......!
 
코코아 가루입니다. 딱 하나 남아 있었나 본데요.
 
타 줄까요?
 
백진오:(달그락달그락. 조용히 코코아 탄다....... 마시멜로 없다고 뭐라 하면 쫓아낼 것이다.)
 
이신:뭐 해?
 
백진오:너 감기약 주려고.
 
이신:딸기맛......
 
백진오:응, 싫어. 호박맛 줄 거야.
 
이신:으으으응......
 
백진오:으으응.
(소파로 가 코코아 내민다.) 마셔.
 
이신:초코맛이네.
마시멜로는?
 
백진오:(빤히.......... 무언의 압박.)
 
이신:이야, 그런 거 없어도 진짜 맛있어 보인다. 잘 마실게. (몸 일으켜 코코아 받아 든다.)
......
너무 뜨거워.
 
백진오:(그 옆에 풀썩 앉아서는 다시 빤히....... 코코아 뺏어서 스푼으로 저어 가며 호, 불어 준다. 적당히 식히곤 다시 내밀었다.)
상전이 따로 없네.......
 
이신:(휘저어지는 코코아 보다가 히죽 웃으며 받는다. 몇 모금 마시고 내려 놓는다.) 좋다.
언제쯤 돌아갈래?
 
백진오:(딱밤 한 대만 때릴까? 마시는 동안 눈 감고 고민하다 고개 돌려 얼굴 바라본다.) 돌아간다고?
 
이신:으응. 우리 이제 가야지.
 
세찬 비를 맞은 탓인지 이신의 낯은 평소보다 더 창백합니다.
 
그 외 평소와 다른 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평소와 다른 점이…….
 
✦ 관찰력 판정 ✦ 
 
백진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찰나, 이신의 손등 위로 여린 푸른빛이 반짝거립니다.
 
분명 어떤 형태를 이루면서요.
 
쏴아아.
 
비는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말발굽 소리처럼 휘몰아치는 비,
 
색을 잃은 잿빛 하늘,
 
습한 여름.
 
어느 정도 물기가 마른 이신은 간간이 멍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질적인 하루입니다.
 
폭우와 정전,
 
빗방울과 이신,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운 여름.
 
내일은 개학식이니 그도 일찍 집에 돌아가야겠죠.
 
폭우가 쏟아진대도 걱정해 줄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얼른 가서 쉬는 편이 좋을 겁니다.
 
이신:너 코코아 잘 탄다.
 
백진오:알아. 그것만 마시고 갈 거야?
 
이신:그럴까. 얼른 마실게.
 
백진오:아니, 너 말이야. 여긴 내 집이잖아.
 
이신:같이 가야지.
 
백진오:내가? 너희 집에?
 
이신:으응. 진오야.
 
당신의 이름이 허공을 둥둥 부유합니다.
 
나지막한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사뭇 진지한 얼굴을 한 그가 보입니다.
 
이신의 손등에 새겨졌던 빛이, 헛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당신만을 오롯이 담은 그 눈에 푸른 빛이 스칩니다.
 
동시에 이신의 피부 위로 기하학적인 형태의 무늬가 그려집니다.
 
마치, 별자리처럼……
 
……지금 당신은 무얼 보고 있는 거죠?
 
이신:이번엔 잘 됐으면 좋겠다.
기억할 수 있지?
 
✦ 듣기 판정 ✦ 
 
백진오: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2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지금 이 상황, 이 공간이 너무나도 고요합니다.
 
비가 그쳤던가요?
 
창밖을 바라보면 비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니, 비는 허공에 방울방울 ‘멈추어’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둥근 물방울의 형태를 가지고서.
 
이해할 수 없는 비현실에......
 
✦ 이성 판정 ✦ 
 
백진오: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
 
이신:학교에서 만나. 기다릴게.
 
무어라 말하든 이신은,
 
한 손으로는 당신의 손을, 다른 손으로는 당신의 목 한쪽을 가벼이 감싸고......
 
눈을 감습니다.
 
피부 위로 새겨진 무늬는 이신을 집어삼킬 듯 반짝이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숨을 쉬기도 어렵습니다.
 
별자리가 촘촘히 수놓인 그에게서,
 
우리에게서 빛이 쏟아집니다.
 
중력이 배로 느껴지는 기분에 속이 울렁거려요.
 
허공에 방울방울 매달린 비는 여전히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입 모양으로 어떤 말을 전합니다.
 
하나,
 
둘,
 
셋.
 
깜빡.
 
.
 
.
 
.
 
─────── 여름을 ───────
 
“이번주 내내 맑은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열대야 역시 지속적으로……”
 
창밖은 맑으매 푸른 하늘은 눈이 부십니다.
 
무더운 여름은 건조한 탓에 비는 내리지 않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립니다.
 
당신의 손을 잡고 있던 상대는 어디로 갔나요?
 
집 안에 남은 건 맑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살, 그리고 당신뿐입니다.
 
✦ 이성 판정 ✦ 
 
백진오:
SAN Roll
기준치: 49/24/9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
 
마치 영화 속 장면이 빠르게 전환되듯 페이드아웃 없이 한순간에 뒤바뀐 세상.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뉴스에서는 계속 기상캐스터가 주간 날씨를 읊어 주고 있습니다.
 
맑음, 맑음, 그리고…… 맑음.
 
장마철인데도 이렇게 맑은 날이 지속되는 건 드문 일이라고 합니다.
 
분명 전부 비였는데.
 
백진오:(끔뻑....... 이신에게 연락해 볼 수 있나?)
 
전화를 걸어 보면, 신호음이 한참 이어지더니,
 
전화를 받을 수 없어……
 
기계음만이 돌아옵니다.
 
백진오:(머리 긁적인다. 꿈인가? 꿈치고 생생했지만 그것들이 현실인 게 더 말이 안 된다. 씻으러 화장실로 터벅터벅.......)
 
방금 자고 일어난 것 치고 꽤 멀끔합니다.
 
그냥, 평소와 같은 화장실입니다.
 
백진오:(세수 박박....... 칫솔 물고 나와 창밖 본다.)
 
푸른 하늘입니다.
 
작은 구름 몇 점이 동동 떠 있고, 햇살은 눈이 부시게 쏟아져 내립니다.
 
먹구름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백진오:(날씨 좋고 지랄....... 개학부터 째고 싶게. 시선 돌려 소파도 한 번 슬쩍 본다.)
 
뽀송뽀송합니다. 앉으면 기분이 좋을 겁니다.
 
백진오:(기분 좋게 앉는다. 역시 꿈이었나 보다.)
 
그늘마저 푸르러 바다를 베어 옮겨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매미 소리,
 
물감을 풀어둔 푸른 하늘,
 
건조한 여름.
 
역시 꿈이라도 꾼 걸까요?
 
쏟아지는 햇살에 이토록 눈이 따가운데도?
 
폭우도 이신도, 그리고 반짝이던 무늬마저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게 틀림없잖아요?
 
이신은 연락을 받지도 않으니 내일 학교에서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내일......
 
오늘은 개학 전날입니다.
 
그러니까, 이 화창한 날씨를 맘껏 즐길 수 있을 거예요.
 
백진오:(헐, 씨발.......)
(화장실로 달려가 입 헹구고 나온다. 그럼 잘래.)
 
누워 있자면, 자꾸만 그 꿈이 떠오릅니다.
 
분명 학교에서 만나자고 말했었죠.
 
대체 뭐였는지.
 
멍한 정신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일단 자고 일어나서 마저 생각합시다!
 
.
 
.
 
.
 
─────── 말리어 ───────
 
개학. 멀게만 느껴지던 단어가 오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펄럭이는 교복들이 흰나비처럼 이곳저곳을 쏘아 다니네요.
 
어제 일어났던 일들이 생생한 꿈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일을 빼면 이 여름은 평범한 하루와 다를 것 하나 없어, 배로 혼란스러운 기분입니다.
 
정말 꿈이었을까요?
 
걸음은 느릿해집니다.
 
보통은 횡단보도를 건너, 가로등 두어 개를 지나면 이신이 보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야, 그거 들었어? 오늘 정상수업이래.
 
진오의 어깨에 자연스레 팔을 걸치는 건 다름 아닌 같은 반 친구, 정종구입니다.
 
이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날씨 진짜 좋네. 보통 이쯤이면 비도 오고 그랬던 것 같은데.
……아, 미안. 사람을 착각했네.
 
종구는 곧바로 어깨를 풀고 제 갈 길을 가려 합니다.
 
하지만, 이왕 만난 김에 붙잡고서 묻고 싶은 걸 물어도 되지 않을까요?
 
백진오:(냅다 어깨 턱, 붙잡는다.) 야, 잠깐만.
너 이신 어딨는지 알아?
 
➤:이신? 그게 누군데?
 
백진오:신이. 맨날 나랑 같이 다니던 애 있잖아. 안경 쓰고.
 
➤:모르겠는데. 너 같이 다니는 애가 있었어?
 
백진오:아, 이 새끼 장난하는 거야, 뭐야.......
 
➤:야, 내가 너한테 장난을 왜 쳐. 우리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아, 맞다. 보고서!
 
종구는 뒤를 돌더니 왔던 길 위를 냅다 달리기 시작합니다.
 
무언갈 두고 온 모양이네요.
 
덩그러니 남겨진 진오의 뺨 위로 푸른 나뭇잎 하나가 떨어집니다.
 
중력을 따라 떨어진 잎은 한가득 여름을 담아 푸르기만 합니다. 그리고…….
 
✦ 지능 판정 ✦ 
 
백진오: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3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분명 종구와 이신은 친분이 있지 않던가요.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 사람이 여기저기 관심은 많아서, 발이 꽤 넓었는데.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말 모르는 눈치였죠.
 
......
 
의문도 잠시, 교문 앞 횡단보도입니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으면 갑자기 휴대폰이 진동합니다.
 
저장되지 않은, 처음 보는 번호입니다.
 
백진오:(전화 받는다.) 여보세요?
 
휴대폰 너머로 옅은 숨소리가 들립니다.
 
한참을 얘기하지 않은 채, 그저 숨소리만이.
 
잘못 건 전화일까요?
 
백진오:여보세요.
 
이신:......아, 진오야.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전화를 건 이는 이신입니다.
 
웬일로 목소리에 여유가 없습니다. 불안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여러모로 낯섭니다.
 
이신:진오야, 백진오. 들려?
 
백진오:들려. 목소리가 왜 그래?
 
이신:내 이름 기억나?
 
백진오:이신. 왜 그래, 자꾸. 무슨 일 있어?
어디야?
 
이신:학교. 좀 알아볼 게 있어서......
 
백진오:이 번호는 뭐야, 또....... 지금 갈게. 반에 있어?
 
이신:아니, 도서실. 그, ......
 
이신이 뜸을 들이는 사이, 보행자용 신호등 불이 초록색으로 바뀝니다.
 
횡단보도, 그 하얀 선을 따라 걸을 때 즈음 그가 중얼거립니다.
 
매미가 우는 소리에 묻혀버릴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신:나, 사라지고 있어.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싶어도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없습니다.
 
그리곤 전화를 뚝 끊어버리네요.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 정신이 멍해집니다.
 
그러나 의문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끼익-!
 
큰 소리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습니다.
 
당신의 눈앞, 가까운 거리를 두고 아슬하게 멈춘 차 옆으로 한 학생이 넘어져 있습니다.
 
부딪히진 않았지만 모두가 웅성거리며 횡단보도 쪽을 쳐다봅니다.
 
✦ 관찰력 판정 ✦ 
 
백진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운전자와 학생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차로 시선을 옮기면……
 
바퀴가 없습니다.
 
엥?
 
눈을 몇 번 깜빡이면 그제야 바퀴가 보입니다.
 
소란도 잠시, 지각을 피하고자 모두 다시 학교로 걸음을 옮깁니다.
 
물론 당신도 그래야겠죠.
 
오늘 하루의 시작이 묘하고, 또 불안하게만 느껴집니다.
 
계단을 천천히 오르다 보면 진오의 반이 보입니다.
 
오늘따라 파아란 창밖이 무섭게도 아름답습니다.
 
당신의 목적지는 이곳이 아니죠.
 
교실을 지나쳐 이신의 반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익숙한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교실에는 이신만이 없는 게 아닙니다.
 
그의 책상과 의자까지도 그림을 잘라 떼어놓은 듯 보이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친구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눈치이며, 교탁에 붙은 자리표에는 학생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백진오:(고개를 갸웃....... 기울이고 자리표 확인한다.)
 
교탁 위에 붙여진 자리표에는 학생들의 자리 위로 이름과 학번이 적혀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활자를 짚어 살피면…….
 
없습니다.
 
애초에 없던 학생처럼 이신의 자리도, 이름도, 학번도.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백진오:(엥? 지나가던 반 학생 붙잡는다.) 야, 야.
이신 너희 반 아니야?
 
➤:뭐? 처음 듣는 이름인데. 다른 학년 아니야?
 
백진오:아니, 너희 반인데. 나 그래서 맨날 너희 반 들락거렸잖아.
 
➤:다른 애 찾으러 온 거 아니었어? 몰라...... 그런 애가 있는 줄도 몰랐어, 나는.
 
당신을 놀리는 기색이 아닙니다.
 
이신의 반 친구들은 정말로 당황한 표정입니다.
 
마치 벽을 두고 얘기하는 기분이라 진오는 답답하기만 합니다.
 
다들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요?
 
✦ 이성 판정 ✦ 
 
백진오:
SAN Roll
기준치: 48/24/9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
 
매미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울어댑니다.
 
하나, 둘, 셋.
 
당신에게 그리 속삭이던 이신은 어디로 간 건가요?
 
모두가 한 사람을 잊고 여름을 보내는 중입니다.
 
창밖의 푸른 하늘은 작위적으로 맑고, 나무 아래 그림자는 잠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매미의 울음소리는, 어딘가 이상합니다.
 
백진오:(아니, 이렇게 규모 크게 날 놀릴 리가 없는데....... 창밖으로 고개 빼꼼 내밀어 하늘 살핀다.)
 
구름 몇 점이 떠다니는 하늘은 지독하게도 푸릅니다.
 
✦ 관찰력 판정 ✦ 
 
백진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무리 바람 하나 불지 않는 날씨라고 해도, 구름은 제자리에 못이 박힌 듯 움직이지 않습니다.
 
애초에 움직이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그 자리에 굳어 있습니다.
 
백진오:(이게 존나 무슨 일이지....... 공부하다 미칠 만큼 공부를 하지도 않았는데. 매미 소리도 잘 들어 본다.)
 
직감적으로 깨닫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매미의 돌림노래는 끝날 기미조차 느껴지지 않습니다.
 
✦ 듣기 판정 ✦ 
 
백진오: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뭔가...... 잘못된 것 같긴 한데...... 뭐지? 아......
 
모르겠당......
 
그 위로 수업 종소리가 겹칩니다.
 
재잘거리던 아이들도 자리를 찾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기억을 믿을 수 있나요?
 
모두가 그것이 거짓이라고 속삭여도?
 
얼른 반에 돌아가면, 선생님께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영어 수업을 시작합니다.
 
옆반에서 출석을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역시 이신의 이름은 건너뛰어집니다.
 
누군가의 부재는 애초에 없던 것처럼 하루가 흘러가고......
 
➤:예문에도 나와 있듯이 관계부사를 써야 하므로……
……에서, 그러므로 빈칸에 들어갈 말은.
 
Where.
 
몇 아이들이 답합니다.
 
동시에 선생님께선 당신을 탐탁지 않게 쳐다보네요.
 
➤:진오야. 아까 말한 빈칸의 답, 한번 불러보렴.
 
모두의 시선이 당신에게 쏠립니다.
 
흔들림 없는 올곧은 시선을 보자 절로 속이 메스꺼워집니다.
 
✦ 관찰력 판정 ✦ 
 
백진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34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때, 복도 쪽 창가를 익숙한 인영이 스쳐 지나갑니다.
 
휘날리는 검은 머리, 딱 그 정도의 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눈에 들지 않는 바람.
 
곧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
 
➤:진오야?
 
선생님께선 벙긋하는 입으로 무어라 얘기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당신에게 중요한 것이었을까요?
 
이신을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또 가득 채웁니다.
 
백진오:어.......
저 보건실 좀 다녀올게요.
 
➤:왜, 어디 아파?
 
백진오:예, 에. 더위 먹었나 봐요.
다녀오겠습니다. (벌떡 일어난다. 잔소리 따라붙기 전에 문밖으로 쏙.......)
 
당황한 표정의 친구들을 지나쳐 복도로 향하면 흔들리는 머리칼은 이미 계단을 오르고 있습니다.
 
위로, 그리고 다시 위로.
 
어느 교실에선 시를 읊는 소리가, 어느 교실에선 공식을 정의하는 소리가.
 
계단을 오르는 건 당신과 이신뿐입니다.
 
이신은 뒤 한 번 돌지 않고 계속해서 계단을 오르네요.
 
숨이 부족해집니다.
 
한참을 걷던 다리가 저릿해지고서야 당신은 활짝 열린 옥상 문을 마주합니다.
 
……이신이 이곳에 있을까요?
 
.
 
.
 
.
 
─────── 심장에 ───────
 
끼익-
 
문을 열고 옥상에 발을 딛자 철조망 밖 너른 하늘을 보는 이가 그곳에 서 있습니다.
 
흩날리는 머리칼은 왼쪽에서, 다시 오른쪽에서.
 
바람의 방향은 초 단위로 달라지고, 하늘 위 구름은 못이 박힌 듯 움직이지 않습니다.
 
펄럭이는 교복, 흔들리는 흑색 머리카락.
 
백진오:신아.
 
당신이 이름을 부르자 이신은 천천히 뒤를 돕니다.
 
아, 그 얼굴은 분명…….
 
이신:……진오야?
 
검은 머리, 당신과 비슷한 키, 단정한 듯 그렇지 않은 차림새와, 흐릿한 경계.
 
하지만, 얼굴은 지우개로 문댄 듯 보이지 않습니다.
 
흐릿하고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그 얼굴만은 알아볼 수 없습니다.
 
✦ 이성 판정 ✦ 
 
백진오:
SAN Roll
기준치: 47/23/9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음
 
당신에게, 그리고 이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블러 처리가 된 듯한 그 얼굴에 몸이 반사적으로 얼어붙습니다.
 
이신:진오야, 백진오.
아무도 날 기억하지 못해. 너는, ......너도 그렇니.
지금 내 얼굴, 보여?
 
알 수 없는 표정.
 
아니, 저걸 표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흐릿한 얼굴은 여전히 뿌옇기만 합니다.
 
눈은 어떤 색이었고, 어떤 모양이었고, 또 어디에 자리 잡고 있던지.
 
당신마저 그 얼굴을 떠올리기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곧 자연스럽게 깨닫습니다.
 
당신이 가진 이신에 관한 기억들 역시 하나둘 지워지는 중입니다.
 
백진오:아니, 이게, 왜.......
(성큼성큼, 코앞까지 다가간다. 애를 쓰는 듯 살피는 눈이 가늘어졌다.) 병원, 병원은? 가 봤어? 아니, 병원으로 되는 게 아닌가?
 
이신:보이지 않는구나. ......괜찮아.
 
혼란스러운 마음에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요동칩니다.
 
가는 침묵이 흐른 후 이신은 진오를 천천히 끌어안습니다.
 
쿵, 쿵.
 
엇나가던 심장 소리가 잠시 겹치고, 또 비틀리고......
 
이신:이건 괜찮은데 말이야.
차원의 관문을 쓸 수가 없어. 이 세계에 갇힌 것만 같아.
 
백진오:아니, 어제부터 자꾸 무슨 소리야.......
 
이신:아직도 기억이 안 돌아왔어? 우리 도망치고 있었잖아. 이상한 사람들한테서. 야, 정말. 사람이 괴물보다 더 무섭다니까......
그러다가 차원의 관문...... 이라는 걸 발견해서 썼는데, 그대로 우주 미아가 됐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속 차원을 넘었는데.
그래, 뭐. 기억을 잃는 것도 처음은 아니니까......
 
……우리가?
 
이신의 말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영화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제물과 차원의 관문, 우주 미아와 다른 세계.
 
......
 
동시에 기이하게도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우주를 건너, 먼 은하를 건너, 다른 세계로 함께.
 
마치 당신이 겪은 일처럼.
 
핸드아웃, 기억의 파편.
 
➤:기억의 파편
기록적인 폭우였습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우수수 땅을 적셨던 여름. 참으로 많은 이들이 그날 실종되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술을 마시고 있던 우리를 포함해서요.
폭우는 〓■▧□신도들의 주문으로 인해 생겨난 기상현상이었으며, 실종된 사람 중 대부분은 제물이 되어 죽은 상태였습니다. 다행, 혹은 불행히도. 애셔와 빈센트는 도망치던 중 〓■▧□신도들이 이동을 위해 만든 차원의 관문을 발견합니다.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우린 도망치기 위해, 관문 너머 평행 세계에 떨어지고 맙니다.
세계를 건너, 우주를 건너, 어느 먼 은하를 건너.
우린 우주 미아가 되었으나, 원래 세계를 찾아 몇 번이고 차원의 관문을 다시 넘었습니다. 그 과정 중 부작용에 의해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기도 했죠. 네, 지금 당신처럼. 비가 흠뻑 쏟아지던 어느 여름 역시 우리가 살던 곳이 아닌 30번째의 또 다른 세계였으며, 그때 애셔가 했던 행동은 차원의 관문을 넘기 위한 주문이었습니다.
 
모든 기억이 떠오릅니다.
 
✦ 이성 판정 ✦ 
 
백진오:
SAN Roll
기준치: 47/23/9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이성 2 감소
 
비가 멈추는 것은 주문진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비가 쏟아지던 그 여름도, 맑고 화창한 이 여름도.
 
모두 우리의 진짜 여름이 아닙니다.
 
우린 원래 세계를 찾아 한없이 우주를 넘나들었죠.
 
그 과정 중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여름인데도 선선했던 어느 세계,
 
잘못된 위치에 떨어져 바다에 빠졌던 우리,
 
겨울 별자리가 보이던 또 다른 세계.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집을 찾아서, 다음 세계로.
 
......
 
그렇다면 왜, 이번 평행세계에서 이신은 사라지는 중인 걸까요?
 
이신의 존재 자체가 없었던 세계 또한 이번이 처음입니다.
 
무언가 잘못된 것처럼.
 
Asher:여긴 확실히 다른 곳과 달라. 모두가 날 기억하지 못해.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사라지는 중이고.
너까지 날 잊을지도 몰라.
 
Vincent Valentin:....... 그래, 어, 그래. 다 기억났어. 응.
그럼 이제 어떡해? 관문도 안 열린다며.
 
Asher:우선 계속 방법을 찾아 보긴 할 텐데......
......기억할 수 있어?
 
Vincent Valentin:모르겠어. 벌써 네 얼굴이 기억이 안 나는데.......
 
Asher:적어 두는 게 나으려나.
 
Vincent Valentin:아, 어. 수첩 있어?
 
Asher:아까 도서실에서 종이를 좀 찢어 왔지. 일단 앉고.
 
흐르지 않는 몽글한 구름이 그림자를 만들어내면, 우리가 선 곳의 짙은 파랑이 가려집니다.
 
애셔는 천천히 철조망에 기대앉아 당신에게 찢어진 종이와 펜을 건넵니다.
 
당신을 위해 옆자리를 가볍게 쓸어내리는 그 손은, 미약하게 떨리는 그 손은.
 
그의 얼굴처럼 흐려지고 형태를 잃고 있습니다.
 
이건 잊지 않기 위한 기록입니다.
 
Vincent Valentin:(옆에 앉아 멍하니 손 내려다본다. 가라앉은 기분과는 상반되게 심장이 빠르게 뛴다. 혼란, 막막함, 뭐 그런 것들.......)
 
Asher:안 적을 거야? 종이를 좀 깔끔하게 찢어올 걸 그랬나.
 
Vincent Valentin:....... 어? 아니. 생각 좀 하느라. 이름부터 적자, 이름부터.
애셔라고 적어, 애쉬 에테리아라고 적어?
 
Asher:그건 내 이름 아니라니까.
애셔.
 
Vincent Valentin:(새기듯 또박또박 꾹꾹 눌러 적었다.) 또, 음. 뭘 적지. 키는 나랑 같고, 걷기를 좋아하고.......
 
Asher:나에 대해 네가 아는 것들.
 
Vincent Valentin:하하. 요만한 종이 쪼가리도 다 못 채울걸.
(그리 말하며 몇몇 개를 덧붙여 적는다. 떠나길 좋아함, 숨기길 좋아함, 안아 달라고 하면 안아 줌....... 별표.)
(마지막으로 눌러 쓴 이름 옆에 흐릿하게, 애쉬 에테리아.)
 
Asher:(어깨에 기대서 가만히......) 어떤 사이인지는 안 적어도 돼?
뭐, 같이 술 마시면서 노는 사이라든가.
 
Vincent Valentin:음.......
(안아 달라고 하면 안아 줌, 을 펜으로 짚는다.) 이렇게만 적으면 연인 사이인 줄 알까?
 
Asher:글쎄. 어차피 이건 너만 볼 거니까.
네가 오해할 것 같으면 뭐라도 덧붙이고......
 
Vincent Valentin:이렇게만 쓸래. 내가 기억을 잘하면 될 일이지.......
 
Asher:그래, 그럼. 마음대로 해.
 
어느정도 종이를 채우고 나면, 그의 목소리마저 뭉툭해져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어깨에 닿은 무게마저 낯섭니다.
 
흐릿해지는 기억을 애써 붙잡아도, 모든 게 어색하기만 합니다.
 
Asher:빈센트.
 
Vincent Valentin:응.
 
Asher:방법이 있겠지?
 
Vincent Valentin:(손등 위에 제 손 포개 본다.) 있겠지.
 
Asher:......
이름 불러 줘, 이름......
 
Vincent Valentin:애셔.
괜찮아, 기억하고 있어. 괜찮아.......
 
Asher:응. 괜찮아...... 괜찮아.
...... ......한 번만 더.
 
Vincent Valentin:그래, 애셔.......
안아 줄까.
 
Asher:응.
 
Vincent Valentin:(몸 옆으로 돌려 끌어안는다. 천천히 토닥이고, 쓸어내리고....... 떨리는 손끝은 애써 무시한 채로.)
 
Asher:(마주 안지 않는다. 기운 없이 기대어 숨 천천히 내쉰다.) ......
기억해. 돌아올 때까지.
 
Vincent Valentin:.......
안아 줘.......
 
질량 없는 두 팔이 당신을 감싸고, 그 이름 역시 떠올리기 힘들어질 때면, □□는 천천히 눈을 감습니다.
 
흰 물감을 군데군데 풀어둔 하늘 아래, 한 사람의 그림자가 서서히 지워집니다.
 
마침내 기대어 느껴지던 무게마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 □□, □□ □□□□…….
 
우리는 차원을 넘기 전, 집으로 돌아가길 빌며 속삭이곤 했죠.
 
이렇게, 지금처럼.
 
하나,
 
둘,
 
셋.
 
깜빡.
 
.
 
.
 
.
 
─────── 꽂는 ───────
 
여름은 맑으매 푸른 하늘은 눈이 부십니다.
 
무더운 여름은 습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립니다.
 
데자뷔처럼 옥상에는 당신만이 홀로 남아있습니다.
 
✦ 이성 판정 ✦ 
 
Vincent Valentin:
SAN Roll
기준치: 45/22/9
굴림: 2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감소 없음
 
손에는 조금 구겨진 찢긴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습니다.
 
가장 크게 □□라고 적혀있으며, 그 아래로는 누군가의 사소한 정보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 □□, □□ □□□□…….
 
키는 당신과 같고, 걷기를 좋아하고......
 
떠나기를, 숨기를. 아, 좋아하는 것도 많네요.
 
안아 달라고 하면 안아 줌. 별표!
 
무슨 의미일까요.
 
절대 잊어선 안 될 이름인데도 왜 이렇게 기억이 흐릿한지.
 
이젠 여름이 원망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를 되찾고, 이 세계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오로지 당신의 힘으로만, 홀로.
 
......
 
그래요. 여기에 앉아만 있는다고 하여 방법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철조망에 오래 기댄 탓에 몸이 찌뿌둥하기도 합니다.
 
기지개를 켜면, 툭.
 
가벼운 종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Vincent Valentin:(종이 줍는다.)
 
작은 쪽지를 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보입니다.
 
840.01이12꽃 / 도서실
 
혹시 몰라서.
 
✦ 지능 판정 ✦ 
 
Vincent Valentin: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암호 같기도 하지만, 당신은 바로 알아챌 수 있습니다.
 
도서실 창구 번호네요.
 
수업 종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는 사이 수업 하나를 완전히 빼먹은 모양입니다.
 
여긴 진짜 세계가 아니니 아무렴 상관없는 일이죠.
 
어쨌든, 쉬는 시간입니다.
 
이름도, 마음도, 함께한 추억도,
 
모든 게 조각난 사람이 마지막으로 한 부탁만이 남은.
 
✦ 정신력 판정 ✦ 
 
Vincent Valentin: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72
판정결과: 실패
 
□□.
 
이젠 그 사람과 당신이 어떤 사이였는지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안아 달라면 안아 줌, ......뭐하는? 거지?
 
굳이 도서실로 향해야 할까요?
 
Vincent Valentin:(의욕이 사라지고, 몸이 늘어질 때 즈음....... 셀프 뺨 때리기를 시전한다. 정신 안 차리네, 이거. 벌떡 일어난다.)
 
답답한 마음에 괜히 발걸음이 빨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은 어지럽고, 울렁거리는 속은 이 계절을 완전히 받아내지 못합니다.
 
그는 어떤 미소를 지었던가요?
 
이 평화로운 세계를 떠날 정도로, 그는 당신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인가요?
 
구겨진 종이 구석이 자꾸만 찢어지기 시작합니다.
 
도서실에 도착하면 종교, 예술, 언어가 적힌 책장들이 빼곡합니다.
 
Vincent Valentin:(음....... 종교부터. 신도 어쩌구라 했으니까.)
 
마침 사서 선생님께서는 자리를 비우신 모양입니다.
 
2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종교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 자료조사 판정 ✦ 
 
Vincent Valentin: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66
판정결과: 실패
 
그에 관한 기억이 조금 더 흐려집니다.
 
종이를 한 번 더 봐야겠어요.
 
Vincent Valentin:(구겨진 종이 주섬주섬 펼친다.......)
 
안아 달라면 안아 줌.
 
이거 진짜 뭐지?
 
✦ 자료조사 판정 ✦ 
 
Vincent Valentin: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어찌저찌 찾아내긴 합니다만......
 
좀 지치는 것도 같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신도들은 샤그나 판을 광적으로 모시고, 그 신의 애정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애완동물 이상의 취급을 받길 원하여 샤그나 판을 직접 그들의 세계로 모시고자 하였다. 최근 샤그나 판 신도들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성공하였고……
(중략)……그러나 그 세계는 불완전한 실패작, 저주의 한 종류였다. 그들이 모시는 신을 감히 옮길 수는 없더라도, 누군가를 가두기에 썩 유용한 공간이지 않은가?
이를 위해 대상자는 외부세계와의 연결이 약해져야 한다. 외부세계와 이어진 매개체가 곁에 있을 경우, 저주는 풀리고 세계는 그렇게 무너진다.
/ 종교, 혹은 미신 이야기
 
Vincent Valentin:(학교에 뭐 이런 책이 있어?)
(예술로.......)
 
6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예술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 자료조사 판정 ✦ 
 
Vincent Valentin: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그에 관한 기억이 조금 더 흐려집니다.
 
종이를 한 번 더 봐야겠어요.
 
Vincent Valentin:(부스럭부스럭....... 펼친다.)
 
떠나길 좋아함.
 
이미 떠난 걸 굳이 찾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슬금 기어듭니다.
 
누군지도 모르는데......
 
Vincent Valentin:(책장에 머리를 박는다.)
 
좋습니다. 정신이 좀 드는 것도 같아요.
 
✦ 자료조사 판정 ✦ 
 
Vincent Valentin: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안 들었나 봅니다.
 
✦ 행운 판정 ✦ 
 
Vincent Valentin:
기준치: 84/42/16
굴림: 8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찾았습니다!
 
➤:아름다운 별자리를 닮은 이 무늬는 시체에서 발견되었다. 주술적인 용도로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크며, 이 그림을 본떠 만든 작품이 바로……
(중략) ……놀랍게도, 두 그림을 합치자 별자리는 하나로 이어졌다. 한 그림을 두 사람이 나누어 가진 모양새였다.
/ 고대 예술과 발전
 
Vincent Valentin:(이마 문지르며 언어로 향한다.......)
 
7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언어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 자료조사 판정 ✦ 
 
Vincent Valentin: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그에 관한 기억이 조금 더 흐려집니다.
 
종이를 보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Vincent Valentin:(조용히 해라. 종이 펼친다.)
 
숨기길 좋아함.
 
뭘 그렇게 숨겼던 걸까요. 당신의 와인?
 
✦ 자료조사 판정 ✦ 
 
Vincent Valentin: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이놈의 난독은 도움이 될 때가 잘 없습니다.
 
아무튼 뭔가 찾은 것 같습니다.
 
➤:언어에도 중력이 있다고 주장한 자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뱉을 수 있는 단어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것은 사람의 이름이라고 하였다. 남을 기억하고, 형상화할 수 있는 최고의 단어이므로. 그것은 무언가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가령 인연, 기억, 세계, 혹은…….
/ 언어의 기원
 
문득 빈센트의 시야에 문학 책장이 들어옵니다.
 
쪽지에 적힌 창구 번호, 840.01이12꽃.
 
그것은 꽃갈피란 제목의 얇은 영문 시집이었습니다.
 
꽃으로 책갈피를 만드는 방법과 짧은 시들이 실려있습니다.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는 꽃을 여러 번 말려야 한다고 하네요.
 
우리의 여름을 닮았습니다.
 
수없이 반복한 탓에, 심장에 꽂을 수 있을 정도로 얇게 마른 우리의 서른 번째 여름.
 
책에는 쪽지 한 장이 끼워져 있습니다.
 
Vincent Valentin:(쪽지 꺼내 열어 본다.)
 
➤:Vincent Valentin.
그런 생각을 했어. 여긴 정말 너를 위해 존재하는 세상 같다고.
우리가 원래 살던 세계와 아주 비슷하지만, 우릴 죽이려 드는 괴물도, 너를 떠날 사람도, 비난하는 사람도 없어.
그러니까 마치, 네가 네 자리에 들어가기만 하면 완벽해질 것 같았거든.
너도 알잖아. 우린 너무 많은 여름을 건너왔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긴 한 걸까, 원래 세계를 찾는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네가 나를 잊고 여기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게 최선은 아닐까.
그럼 너는 더 이상 불행하지 않을 텐데.
Asher.
 
□□, □□, □□ □□□□…….
 
애쉬 에테리아. 애셔.
 
외부세계와 가장 강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 거짓된 세계를 부술 수 있는 한 단어.
 
그러나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거짓된 세계라고 하여도, 애셔의 말대로 한 사람만이 사라진 이곳은 평화롭고 고요합니다.
 
굳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 하나요?
 
우린 다시 우주 미아가 되고 말 텐데, 기약 없이 차원의 관문을 다시 넘나들어야 할까요?
 
빈센트, 당신에게 애셔는 그럴 가치가, 의미가 있는 사람인가요?
 
Vincent Valentin:(짧은 글이었음에도 여러 번 읽어내렸다. 사람 하나가 사라졌다고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모든 게 완벽해서 되려 이질적인 세계. 누군갈 껴안지 않아도 심장이 고요한 세계.)
(그럼 이제 누가 내 이름을 불러 주지. 네 이름은 누가 불러 주고.......)
(쪽지 잘 접어 주머니에 넣는다. 이름을 불러 주는 순간에 책갈피를 꽂아 두고 싶단 생각을 했었던 것도 같다. 이름 불러 줘. 그래, 빈센트. 빈센트....... 그걸 영영 못 듣게 되는 건 싫으니까.)
 
그렇다면 그 이름을 불러요.
 
거짓된 여름을 부숴요.
 
그를 기억하고, 그를 찾아낼 수 있는 단어를.
 
오롯이 기억하는 당신의 입으로.
 
Vincent Valentin:애셔.
 
Vincent Valentin:안아 줘.
 
.
 
.
 
.
 
─────── 방법 ───────
 
깜빡.
 
당신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모든 기억이 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세계의 소리가 멈춥니다.
 
맴맴 울던 매미의 소리, 복도에서 재잘재잘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바람에 커튼이 흔들리는 소리까지.
 
시간이 멈춘 듯 이곳은 고요해집니다.
 
기이한 침묵.
 
충분히 겁먹을 만한 상황인데도 되레 익숙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 관찰력 판정 ✦ 
 
Vincent Valentin: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깜빡이던 형광등이 꺼지고 맙니다. 정전일까요?
 
아니.
 
창밖을 봐요, 빈센트.
 
하늘, 땅이랄 것도 없이 검은 우주가 펼쳐져 있습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새까만 밤과 반짝이는 은하수, 촘촘히 박힌 별들.
 
건물도 도로도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짙고, 또 짙은 밤하늘이 전부입니다.
 
✦ 이성 판정 ✦ 
 
Vincent Valentin:
SAN Roll
기준치: 45/22/9
굴림: 3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음
 
당신은 깨닫습니다.
 
이 거짓된 세계가 부서지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사라지고 오로지 빈센트만이 이곳에 남아있습니다.
 
아니, 혼자가 아니라……
 
Asher:빈센트!
 
운동장이었던 그 너른 공간 한가운데, 우주 위로 애셔가 동동 떠 있습니다.
 
반짝이는 별들 사이 중력을 무시한 채 흩날리는 애셔의 머리카락.
 
마치 그림의 한 폭 같습니다.
 
물론 감상이 이어지기도 전, 그는 당신을 향해 소리치네요.
 
✦ 듣기 판정 ✦ 
 
Vincent Valentin: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자꾸만 웅웅대는 탓에 정확히 들리지 않습니다.
 
귀를 기울이는 사이,
 
쿠궁.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별가루들이 흩날립니다.
 
그러나 당황하던 것도 찰나.
 
정신을 차리면,
 
100번, 600번, 800번.
 
책장들이 모두 별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있어요.
 
심지어…… 도서실 전체- 학교 전체가!
 
당연하죠, 이 세계를 부수는 단어는 당신이 읊었잖아요?
 
주변을 둘러보면 마땅한 탈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대로 잔해 속에 깔리는 건 아닌지…….
 
아, 다행히도 창문이 보이네요.
 
지금이 당신이 있는 층은 1, 2, 3……
 
......다행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요.
 
Asher:내가 받아 줄 테니 뛰어내려!
 
부서지는 학교, 창문 아래의 애셔가 소리칩니다.
 
별로 미덥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요.
 
시간이 없습니다.
 
창틀을 딛고, 유일하게 부서지는 세계 속 당신을 바라보는 이에게 뛰어내립시다.
 
응원이라도 하듯 거센 바람이 당신의 등 뒤에서부터 불어옵니다.
 
Vincent Valentin:(창틀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래, 뭐....... 잘못돼 봐야 죽는 게 다일 테고....... 앞머리가 바람에 살랑인다. 가볍게 훌쩍 뛰어내린다.)
 
창턱을 밟고 아래로, 다시 아래로.
 
별가루가 흩어지매 까만 우주는 눈이 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이어질 추락에 눈을 질끈 감아도 당신은 아주 천천히, 중력을 무시하고 아주 천천히.
 
바람 따라 나는 민들레 홀씨처럼 느릿하게 떨어집니다.
 
와락, 그런 당신을 애셔는 쉽게 그러안아 잡습니다.
 
여전히 흐릿하지만, 그 얼굴의 이목구비는 점점 선명해지고 있어요.
 
나풀거리는 머리카락 탓에 꼭 물에 빠진 것만 같습니다.
 
이윽고 외부 세계로 나가기 위해, 외부 세계와 가장 강하게 연결된 애셔가 묻습니다.
 
Asher:내 이름, 기억하니.
 
Vincent Valentin:으음. 에테리아?
 
Asher:......
 
Vincent Valentin:애셔.
 
Asher:그렇지.
 
빈센트가 답을 하자, 흐렸던 것들이 완전히 되돌아옵니다.
 
Asher:그럼, 내가 좋아하는 건?
 
Vincent Valentin:나 아니야?
 
Asher:하하.
그런가 봐.
 
반짝.
 
둘의 몸에 새겨진 주문진에 빛이 들어옵니다.
 
Asher:또, 더 아는 거 뭐 없어? 나에 대해서.
 
Vincent Valentin:알지.
안아 달라고 하면 안아 주잖아.
 
Asher:중요하지, 그거.
 
건네는 말엔 웃음기가 가득합니다.
 
모든 별가루가 허공에 둥둥 뜬 채로 멈춥니다.
 
Asher:마지막으로......
......돌아갈 거야?
 
Vincent Valentin:응.
이제 가야지, 우리.
 
Asher:더는 행복할 수 없대도 괜찮아?
 
Vincent Valentin:난 원래 어디서든 불행해하는 편이야. 그러니까 안아 줄 사람 한 명은 있어야 해.
 
Asher:그래. 떠나자.
떠나왔던 곳으로.
 
애셔가 한 손으로는 당신의 손을, 다른 손으로는 당신의 목 한쪽을 가벼이 감쌉니다.
 
피부 위로 새겨진 별자리와 같은 무늬가 애초에 하나였던 것처럼, 팔을 타고 이어져 반짝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푸른 빛이 스칩니다.
 
어디선가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고, 중력이 배로 느껴지는 기분에 속이 울렁거립니다.
 
하지만, 이건 모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일이었잖아요?
 
부서져 가는 세계, 거짓된 세계, 꾸며진 여름.
 
우린 그것들을 두고 차원의 관문을 넘을 거예요.
 
어쩌면 다시 우주 미아가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눈앞의 상대가 환히 웃습니다.
 
마주 잡은 손이 웅웅, 진동하며 가볍게 떨립니다.
 
이번에는 어쩐지 감이 좋아요.
 
여름을 말려 심장에 꽂는 법.
 
수없이 반복한, 수없이 넘은 이 여름을.
 
Asher:다음 세계에서도. ......
안아 줘.
 
Vincent Valentin:그럼 그땐 너도 내 이름 불러 줘.
 
Asher:빈센트, 물론.
나는 너를 잊지 못하거든.
 
이젠 모두 훌훌 털어버릴 차례입니다.
 
강한 빛이 주문진에서 쏟아집니다.
 
우린 차원을 넘기 전, 집으로 돌아가길 빌며 속삭이곤 했죠.
 
이렇게, 우주 한가운데에서, 서로를 보며, 지금처럼.
 
하나,
 
둘,
 
셋.
 
깜빡.
 
-
 
END1. 집으로, 함께.
 
애셔, 빈센트 생환
 
진행 중 감소한 이성 전체 회복
 
우리는 우리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