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까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4학년 학생들은 졸업 파티 파트너를 구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야 이 학교에서 우등생만 모아놨다는 S 클래스만큼이나 유명한 것이 바로 프롬이니까요.
그토록 성대하고 화려하다는 프롬에 혼자 입장하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일도 없겠죠.
교정은 졸업과 파티를 기대하는 학생들로 잔뜩 들뜬 분위기지만,
언제나 그런 것에 관심 두지 않는 별종도 있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멀리서 당신을 발견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저 여자애요.
파라 무어. 이름보다는 ‘무어 의원 둘째’로 더 알려진, 자타공인 명실상부한 모범생입니다.
낮부터 밤까지 쉴 틈 없이 도서관에 처박혀 공부만 하고,
어울리는 사람이라고는 같은 S 클래스에 있는 은행장 차남, IT 기업 장녀, 모 부서 차관 조카, 유명 팝 가수의 동생······.
그렇게 ‘서민들’은 같은 사람 취급도 안 한다는 소문만 무성한 그가 당신을 싫어한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이유야 뻔하죠. S 클래스도 아닌 당신이 몇 번이고 그의 1등 자리를 빼앗았으니까요.
이상할 정도로 성적에 집착하는 만년 수석, 혹은 차석.
그 엄격한 교칙을 한 번도 어긴 적 없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 모범생 중에서도 모범생. S 클래스의 간판 얼굴.
그 파라 무어가 지금 당신 앞에 서 있습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수행할 의무는 다 마쳤는데도, 아직 학생 신분에서는 벗어나지 못한 애매한 기간입니다.
졸업학년 학생들은 어른도 아이도 아닌 이 짧은 유예를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페이드 역시 마찬가지로, 이 지루하고 지지부진한 하루를 당신 나름대로 보내 왔습니다.
이제 고지가 코앞이니, 며칠만 더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당신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거나, 불쾌한 표정을 짓거나, 찬바람 쌩쌩 날리게 무시하곤 했던 ‘그’ 파라 무어가,
마치 할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당신에게 다가왔잖아요.
이 말을 들은 당신은 귀를 의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걸 눈앞에 있는 저 사람이, 당신에게 한 말이 맞을까요?
단정한 얼굴, 꼿꼿한 태도, 그린 듯한 모범생인 파라 무어.
당신과는 꽤나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인물이죠.
그는 긴장한 듯 당신을 바라보다 조금 다급하게 말을 잇습니다.
저런 여유 없는 표정을 짓는 건, 성적 공개날 빼고는 처음 보잖아요.
늘 고상하기 짝이 없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뭐, 물론 그런 감정과 별개로 대답은 당신의 자유입니다.
파라 무어:(눈동자를 굴린다.) ······ ······파트너 있어?
파라 무어:그래서 구했냐고. (대답 재촉한다.)
아니.
그러니까, 왜?
파라 무어:······ ······내가, 너랑······ 파트너가 하고, 싶으니까? (말이 뚝뚝 끊어진다.)
프롬에 파트너 없이 입장하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라잖아. 그래서······.
페이드:은행장 자식새끼랑 놀면 되는 거 아닌가.
이제와서 이미지 관리 좀 해 보려고?
파라 무어:······콜린스 말하는 거면, 걔는 이미 파트너 있어. (똑바로 바라본다.)
너랑, 하고 싶다고. 내가. (다시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한다.)
진짜로?
파라 무어:(입술을 꽉 물었다가 놓는다.) 그래. ······진짜로.
의심스러울 거 알아. 그동안 내가 널 대한 태도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심호흡한다.) ······ ······데, 데이트해. (뻔뻔하게 말하려고 노력했으나 영 어색한 말투로.)
페이드:('그' 파라 무어가 페이드와. ......이후에 퍼질 말들 생각했다. 타격은 저쪽이 더 입겠지.) 해 줄게.
그런데..... 너, 데이트 할 줄은 알아?
······ ······ ······ ······알아. (시선은 옆으로.)
파라 무어:알아. 안다고. 데이트라고 해놓고 도서관 가서 공부하는 짓은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줄래?
할 말 끝났지?
파라 무어:······이번 주 토요일에 해. (통보식이다.)
다시 해.
파라 무어:너, 이, (까지 말했다가 도로 이 악문다.)
파라 무어:······ ······ ······ ······토요일에 시간 비워놔······ ······ 줘. (간신히 한 글자 덧붙인다.)
파라 무어:(열렬하게 데이트 신청을 한 사람에 걸맞게 열렬한 눈길로 노려본다.)
파라 무어:(어쩐지 이 빠득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용건 끝이야. 가볼게.
······아, 맞다. 이거. 기숙사 가서 봐. (손에 막무가내로 쪽지 한 장을 쥐여준다.)
페이드:지금 보면 안 돼? (쪽지 열려고 한다.)
파라 무어:기숙사 가서 보라고! (기겁하면서 손 막는다.)
페이드:......어. (떨떠름하게 주머니에 넣는다.)
파라 무어:(안도의 한숨.) 그래, 그럼······
······ ······잘 자?
기숙사 통금 시간도 한참 남았는데, 뭐라는 건지.
그 말을 끝으로 파라는 거의 도망치다시피 자리를 뜹니다.
저거······ 분명히 연애 안 해봤다. 그런 소소한 촉이 옵니다.
졸업식까지 정확히 일주일. 난데없이 S 클래스의 모범생에게 프롬포즈와 데이트 신청을 동시에 받은 당신은 교정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집니다.
갑자기 쟤가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료하던 차에 꽤 재밌는 일이 벌어진 건 확실합니다.
페이드는 기숙사로 돌아갈 수도 있고, 쟤가 수상하다면 친구들에게 파라에 대해 물을 수도 있고······
기숙사 가서 보라고 했지만 쌩까고 지금 쪽지 열어봐도 되고······
페이드:(뭔가 데자뷰 느껴지니 쪽지는 기숙사 가서 열어 주기로 한다. 주변인에게 파라에 대해 물으러 다닌다...... 대충 S클래스처럼 보이는 사람 아무나 붙잡았다.)
야, 파라 알아?
그러자 누가 봐도 S 클래스 너드처럼 보이는 남자애 하나가 붙잡힙니다.
토마스: 파, 파라 무어? 알지, 그럼······. 우리 학교에 걔 모르는 사람도 있나.
페이드:요즘 행적이 이상하진 않았어? 뭐...... ......데이트 신청을 한다거나?
토마스: 데이트 신청······? (미쳤냐는 얼굴로 페이드를 본다.) ······ ······ ······이름 헷갈린 거 아냐? ‘파’라가 아니라 ‘클라’라라든가······.
별로 이상한 건 없었는데. 그냥 교무실 계속 들락거린다는 것 정도? 졸업 직전인데. S 클래스 중에서도 걔 정도로 공부에 열의를 보이는 사람은 몇 안 될 거야.
페이드:뇌물 같은 건 아니겠지? (그 파라 무어가?)
토마스: 에이, 뇌물을 바칠 거면 대학 진학하기 전에 바쳤겠지.
그, 근데, 너 페이드지? 파라 무어랑 엎치락뒤치락한다는 애? 갑자기 이런 건 왜 물어? 약점 캐기······?
(더 물을 건 없나......)
궁금한 게 더 없으면 그만 보내주도록 합시다.
페이드:(토마스 어깨 두어 번 치고서 기숙사로 간다.)
(도착하면 쪽지 열어 본다.)
기숙사는 1인실로, 짐을 미리 정리하는 학생들로 복도가 분주합니다.
짐이야 방 빼기 하루 전에만 싸도 충분한 것을.
기숙사에 도착하면, 페이드는 쪽지를 열어봅니다.
쪽지를 열면,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게 상당한 악필로 뭐가 적혀 있습니다.
페이드:(눈 찡그리고 천천히 다시 읽는다. 잘못 읽은 게 아니란 것이 더 놀랍다. 중얼댄다.) 드디어 미쳤나?
이거 너무 악필이라 내가 잘못 봤나~ 싶어서 다시 읽어도,
(대충 다 썼다.)
황당한 프롬포즈, 황당한 데이트 신청, 황당한 쪽지까지.
그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파라 무어가 무슨 속셈인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가 무슨 수작을 부리든, 페이드는 언제나 그를 보란 듯 눌러 줄 준비가 되어 있는걸요.
언제나처럼 친구들과 무리 지어 학생 식당으로 향하려던 당신 앞을 막아서는 건,
평범한 학생들이야 이동 수업도 없이 반에서 떠들기나 하지만,
S 클래스는 여전히 특별 강습이니 뭐니, 여러 프로그램을 이수하느라 바쁘다고 했던가요.
자기 나름대로 말을 걸 타이밍을 찾은 게 점심 시간이었나 봅니다.
페이드:......? (고개 옆으로 까딱인다.)
파라 무어:(옆에 있는 페이드의 친구들을 흘끗 본다.)
페이드:아. (친구들 먼저 보낸다. 둘만 남았다.)
아하. (접힌 쪽지 준다.)
됐지?
파라 무어:······ ······아. (얼떨결에 쪽지 받는다.)
이것도 용건이기는 했는데, 그러니까.
다른 용건은······. (우물거리는 중.)
페이드:...... (주머니에 손 넣는다. 어디 한 번 말해 보라는 듯.)
점심, 같이······ 먹자고. (이 말을 그렇게 힘겹게 한다.)
페이드:그건 이미 마이너스 찍어서 복구 어려울 걸.
파라 무어:······ ······. (슬쩍 쪽지 펴서 5번 항목을 컨닝했다가, 절망적인 눈길로 도로 페이드 본다.)
(누가봐도 구라다.)
파라 무어:그런 기준이면 넌 1학년 때부터 내가 이상형이었다는 뜻이 돼.
사실 거짓말이야.
······ ······ ······없어?
페이드:따지자면 아예 없다기보단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거긴 한데.
생각하기 귀찮아.
파라 무어:점심 먹으러 가자. (말 끊는다.)
파라 무어:응. (먼저 밥 먹자고 얘기한 주제에 발 맞춰서 걷는다는 개념도 없이 그냥 척척 식당으로 걸어간다.)
페이드:(뒤에서 어슬렁대며 따라간다. 대충 속도 맞다.)
급식은 뷔페 형식으로, 오늘 메인 메뉴는 파스타와 찹스테이크입니다.
파스타는 면에 크림, 혹은 토마토 소스를 선택해서 얹을 수 있고, 사이드로 샐러드, 마늘빵, 스프 등도 함께 마련되어 있습니다.
(쟨 저거 다 먹고 더 가져오겠거니......) 음식 가지러 왔다갔다하면 번거롭지 않나.
파라 무어:······ ······ ······ ······.
갖다 달라고? (소통 오류)
너 그만큼만 먹는 거야?
파라 무어:탄단지 영양소 균형은 맞춰서 먹고 있어.
이거 설마 이미 죽은 시체가 나한테 말 걸고 있는 거 아니야? (파라 툭툭 건드려 본다.)
파라 무어:(건드려지면 여과없이 언짢은 표정이다.) 뭐라는 거야······. 산 사람이야.
네 기준으로 봐서 그렇지, 내 신장과 체격을 고려하면 그렇게 적은 양 아니거든.
페이드:너 그렇게 작지 않거든? (제 접시의 스테이크 조각 하나 파라 접시에 둔다. 탄단지 균형이 깨졌다.)
파라 무어:내 완벽한 비율의 식판에 무슨 짓이지? (눈썹 꿈틀.)
파라 무어:······ ······. (묵묵히 집어 먹는다······.)
파라 무어:그러는 너는 좋아하는 음식이, (다시 쪽지 컨닝한다.) 물이라면서. 왜 스테이크만 가져왔어?
파스타 싫어해? 샐러드는? 스프는? 빵 종류는?
그거 적을 땐 목이 좀 말랐고.
토요일엔 뭐가 끌릴 예정인데?
딸기 셔벗......
파라 무어:그래. (이렇게 데이트 코스를 대놓고 물어본다. 밥 먹는 둥 마는 둥 도로 쪽지 봤다가,)
······ ······화려한 옷은 또 뭐야?
파라 무어:아니, 데이트룩 고르려고 했던 건데. 프롬 의상은 이미 정했어.
페이드:그러면 그냥 너한테 어울리는 걸로 입어.
(고르기 귀찮았다. 스테이크 하나 입에 넣는다.)
파라 무어:취향 없어? (꾸역꾸역 캐묻는 중.)
페이드:딱히 취향이라고 느낀 패션은 없는데. 뭐...... 너는, 음. 단정한 게 어울리겠네...... (관심 없다.)
내 옷이랑 어울릴 필요는 없을 거잖아.
파라 무어:(포크 꽉 쥔다.) 좀 성의껏 대답해. 네 취향에 맞춰야 가능성이 그나마 올라가잖아.
파라 무어:(대답 없이 샐러드 찍어 먹는다.)
파라 무어:오늘 샐러드 신선하다. (딴소리.)
파라 무어:······ ······아, 그만 물어봐!
파라 무어:(어쩐지 얼굴이 좀 빨개진 채로 노려본다.)
넌 왜 그렇게 화가 많냐?
네가 자꾸 열받게 하잖아!
그럼 나도 대답 안 할래.
파라 무어:(이 악문다.) ······ ······ ······실 가능성. (개미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
파라 무어:시, 싫어. 못 들었으면 네 책임이지. (고개 옆으로 돌린다.)
······아, 그래. 네 취향 없으면 너 그동안 사귀었던 애들 옷차림이 어땠는지라도. (말 돌린다.)
페이드:(까먹었는데. 잠깐 고민...... 파라 훑는다.) 트렌치 코트.
파라 무어:(의외로 평범하고 정상적이라고 놀란 얼굴이다.)
그럼 걔네가 비키니라도 입고 다닐 줄 알았냐?
최소한 여기까지는 드러내고 다니던데. (손으로 제 어깨쯤 가리킨다. 오프숄더 말하는 듯.)
네가 어떻게 알아?
파라 무어:가끔 문제집 사러 나갈 때 시내 돌아다니던 거 봤어.
알고 있으면 그렇게 입든가. 음, 배도 좀 까도 되고......
난 모르겠는데.
네가 말한 대로 입어.
파라 무어:뭘 몰라. 꽁꽁 싸매고 나갈 거야.
내 알 바는 아니지.
파라 무어:딱히 그런 게 네 취향도 아니잖아! (울컥했다.)
······걔들이랑은 어떻게 사귀게 된 건데.
파라 무어:좋아한다고 하면 다 받아주는 편이야?
파라 무어:······ ······. (한참 침묵하다가 느적느적 포크 따라서 내려놓는다.)
다 받아주는 편이냐고. 왜 계속 두 번씩 물어야 하는지 모르겠네.
파라 무어:······ ······
조금만 더 노력해 보고······. (웅얼웅얼.)
페이드:나도 웬만큼 호감이 있어야 받아 주지. 대답이 됐어? (자리에서 일어난다.)
파라 무어:윽······. (정곡 찔린 표정으로 일어나는 걸 눈동자로만 쫓는다.)
너 별로 매너 없구나. (한숨.)
파라 무어:······ ······그래, 알았어. 잘 가. (이쪽도 식판은 거의 다 비웠지만, 자존심 때문에 따라 일어나지 못하고 괜히 남은 샐러드 쪼가리가 포크로 긁어 모으고 있다.)
페이드:(남은 스테이크 몇 조각 버리고 먼저 간다.)
어쩐지 뒤에서 뭔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알 바는 아니지요.
급식실을 나서서 교실로 돌아가면, 조금 전 페이드가 먼저 보낸 당신의 친구들이 휘파람을 불면서 페이드를 맞이합니다.
잭: 공주님이랑 밥 먹었다며. 벌써 얘기 쫙 돌았어.
페이드:걔한테 그런 더러운 별명도 있던가......
......아니, 뭔 놈의 학교가 소문이 이렇게 빨리 퍼져?
잭: 맞잖아, 우리 같은
서민들은 취급도 안 해주시고.
다들 심심하니까 그렇지. 할 짓 없잖아. (낄낄댄다.) 그래서 진짜 뭔데?
페이드:(고민...... 입꼬리 올린다.) 마음대로 생각해.
소문도 마음대로 퍼뜨려. (이게 다 걔 업보다, 그런 심보...)
잭: (누가 봐도 명백히 놀리던 얼굴이다가 입이 떡 벌어진다.) 아니, 잠깐. 설마······ ······ ······설마 진짜
그거냐?
페이드:그럴지도...... 왜 표정이 바뀌지? 그게 그렇게 놀라워?
잭: 진짜 둘이 썸 탄다고?!?!?!!!! (복도까지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소리 지른다.)
페이드:아니, 쟤가 일방적으로!!!!!!!! (더 크게 질렀다.)
잭: ‘그’ 파라 무어가 너한테 대쉬한다고?!?!?!!!!! (의도치 않게 더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머리를 감싸 쥔다.)
그러나 이미 복도 밖 학생들까지 문과 창문을 죄다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잭: (의자에 털썩 앉는다.) 와, 씨, 와······. 졸업 전에 별일이 다 생긴다. 그럼 그동안 너한테 틱틱댔던 것도 그건가, 관심 얻으려고?
페이드:수줍었을지도 모르지. (소리내어 웃는다.)
(창밖 학생들 보다가......) 나 간다.
잭: 아아, 맞다, 맞다. 까먹을 뻔. 너 없을 때 렉스쌤이 교실 오셨어. 너 찾던데?
교무실부터 가보는 게 좋을 거다. 난 그 쌤 너무 무섭더라. (과장되게 양팔로 어깨 감싸 쥐고 떠는 시늉을 한다.)
(ok 사인...)
렉스 선생님. 이 학교 내에서도 무척이나 깐깐하고 고지식하다고 유명한 선생님이시죠.
귀찮아지지 않으려면 점심 시간이 거의 끝나가니 서둘러서 찾아뵙는 게 좋겠습니다.
교무실에 들어서면, 검은 머리카락을 흐트럼 없이 묶은 렉스 선생님은 금방 찾아낼 수 있습니다.
렉스:왔군요, 페이드 군. 앉으세요. (앞에 놓인 보조 의자를 가리킨다.)
렉스:다름이 아니라, A반 담임이신 마지스 선생님께서 페이드 군을 졸업 장학금 대상자로 지목하셨거든요. 간단한 안내가 필요할 것 같아서 불렀어요.
졸업 장학금은 보통 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거나 태도가 좋은 학생 한 명을 뽑아서 주는데······.
졸업 장학금이라니, 당신은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반마다 한 명만 받게 된다면, 당신과 성적도 비슷하면서, 당신보다 훨씬 수업 태도가 좋은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나요?
눈앞의 렉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영 떨떠름한 눈길입니다.
렉스:······뭐, 페이드 군의 성적은 확실히 우수하니까요. 이번에 대학도 잘 들어갔고. (시선 거둔다.)
마지스 선생님이야 종종 이런 경우가 있었으니. 오늘은 입금받을 계좌 확인만 하고 가면 됩니다. (종이를 내민다.) 장학 증서는 졸업식 때 수여될 예정이고, 이름이 호명되면 단상으로 올라오면 돼요.
따로 리허설은 없지만, 결석은 하지 말아주세요. 땡땡이도 안 됩니다. 아셨죠?
페이드:(종이 받는다.) 예. 그런데......
종이에는 당신의 이름, 전화번호, 부모님의 계좌 번호가 적혀 있습니다.
페이드:(갸우뚱.) 성적과 태도 말고 다른 기준이 더 있나요?
렉스:보통은 담임의 추천을 가장 최우선으로 삼죠. 담임만큼 학생을 잘 아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페이드:그렇다면야. (여전히 이해는 안 되지만.)
슬쩍 주변을 보면,
`렉스의 컴퓨터
`와
`렉스의 책상
`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페이드:(선생님 있는데?! ......하다가 슬쩍
책상으로 눈 돌린다.)
책상 위에는 각종 서류와 문서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습니다.
페이드:
관찰력
기준치: |
50/25/10 |
굴림: |
23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페이드는 그중 살짝 튀어나온 문서에서 처음 보는 인장 문양을 발견합니다.
페이드:(인장 문양은 글자를 읽을 수 있는 형태인가?)
당장 페이드가 읽을 수 있는 글자는 없습니다.
페이드:(한참 노려보다 포기한다.
컴퓨터 본다.)
장학금 관련 내용을 작성 중이었는지, 당신뿐만 아니라 옆 반 동기들 이름도 적혀 있습니다.
페이드:
지능
기준치: |
80/40/16 |
굴림: |
5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어라, 이 이름들, 어디서 봤다 싶었더니······
그렇습니다. 죄다 S 클래스 소속인 학생들이네요.
게다가 내노라하는 집안, 혹은 영향력 있는 인물의 친지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무래도 이 명문 학교에서 졸업 장학금을 타는 것만큼 명예로운 일이 없기 때문일까요?
왜 A반에서는 하필 당신이 장학금을 받게 됐을까요?
페이드:(파라가 이 사실을 알면 열받아 하겠다 싶다.)
왜 저였는진 모르세요?
렉스:글쎄요. 그건 마지스 선생님이 아실 테니, 궁금하면 그쪽에 물어보면 될 것 같군요. 저는 제 담임 반 학생들 일만 해도 바빠서.
이상이 없으면 이만 나가봐도 좋아요. (손을 휘젓는다.)
교무실을 나서면, 점심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립니다.
교실로 돌아가도 여전히 파라는 보이지 않습니다.
S 클래스 특별 강습인가 뭔가, 그걸 듣느라 바쁜 거겠죠.
한적한 시간, 학생들은 카드 게임을 하거나, 수다를 떨거나, 영화를 보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페이드 역시 그 시끌벅적한 풍경에 녹아들어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지냅니다.
갑작스러운 프롬포즈만큼 갑작스러운 장학금 이야기를 들었으니, 두 개가 연관이 있나, 싶기도 하지만,
당사자가 도통 보이질 않으니 뭘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
추측만 하면 뭘 하나요? 호감도 작업하겠다는 애가 코빼기도 안 비치는데.
당신은 아주 기가 막히게도, 파라와 둘이서 이야기할 완벽한 공간을 마련하게 됩니다.
파라 무어:······ ······ ······ ······이런 미친.
이번 시간은 공통 수업인 체육 시간이었습니다.
아주 자유롭게 운동장을 거닐고 있던 당신은 하필 체육 선생님에 눈에 띄어, 파라와 함께 창고 정리를 도맡게 되었습니다만······
파라는 정말로 당황했는지 문고리를 당기고, 밀고, 갖은 힘을 다 써봅니다만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너무 클리셰다.
뭘 하나 했더니......
파라 무어:······ ······. (괜히 문을 쾅쾅 두드린다.) 저기요! 밖에 누구 없어요?
야, 내가 한 거 아니야! (정말로 당황한 얼굴이다.)
페이드:(반신반의하며 문고리 당겨? 밀어? 본다.)
페이드:
근력
기준치: |
40/20/8 |
굴림: |
3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매트 같은 거 하나 찾아 그 위에 앉는다.)
(포기한 얼굴로 구석에 어정쩡하게 서 있다.)
사실 유혹을 하려면 이런 어둡고, 으슥하고, 둘만 있는 공간이 제격일 텐데······
아는지 모르는지. 파라는 활용할 생각도 없어 보입니다.
그냥 이 상황이 민망하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입니다.
파라 무어:(한숨을 쉰다.) 어차피 특별 강습은 소수만 들으니까, 내가 말도 없이 수업에 빠지면 누군가는 찾으러 오겠지.
페이드:그럼 그 사람이 찾으러 오기 전에 해야 할 게 있을 텐데.
너...... 꼬실 마음이 있긴 해?
파라 무어:······ ······? (의문스러운 낯 3초.)
(이후 얼굴이 곧장 달아오른다. 어두워서 잘 안 보이겠지만.)
뭐, 뭐라는 거야!
네 사정이지 내 사정이냐.
파라 무어:아니, (어지간히 당황했는지 버벅거린다.)
꼬시는 거랑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상관인데!
페이드:벌건 대낮에 사람 바글바글한 광장에서 꼬시는 것보다야 여기가 효과는 좋겠지, 멍청아.
파라 무어:(입 꾹 닫는다. 구석에 계속 우두커니 서 있다가, 슬그머니 매트 끝에 걸터앉는다. 꼭 삐걱대는 게 기름칠 안 한 로봇 같은 움직임이다.)
페이드:(그 모습 가만히 바라본다. 어디까지 하나 보자......)
그게 끝?
(고민한다······.)
······ ······. (슬쩍······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앉는다.)
(슬쩍 멀어져 본다.)
파라 무어:······왜, 왜. (약간 절망적인 표정으로 봄······.)
더 와.
파라 무어:(자존심 제대로 상하는 얼굴. 그러나 순순히 더 다가간다.)
용기를 낸 건지 어쩐 건지, 파라가 다가오는 순간······
당신은 무언가가 덜컥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듣습니다.
의문을 가지고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면, 바로 위입니다.
이내 캐비넷 위에 있던 상자 내용물이······ 이쪽으로 쏟아집니다!
페이드:
민첩
기준치: |
80/40/16 |
굴림: |
6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눈을 반사적으로 감은 순간, 우당탕 소리와 함께 당신은 옆으로 밀려납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 방금 당신이 앉아 있던 곳으로 쏟아진 무거운 운동 기구들이 보입니다.
저걸 그대로 맞았으면······ 꽤 끔찍하네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당신 위에 올라 탄 파라가······
······ ······정황상 구해준 것 같은데, 자세가 좀 묘하지 않나?
(잠깐 상황 파악한다. 곧 못 떨어지게 허리 감싼다.)
야.
기회 같지?
파라 무어:저게 왜······. (같은 소리나 하면서 운동 기구 쪽 보고 있다가, 허리가 잡히면 화들짝 놀라서 페이드 쪽을 본다.)
(그제야 자기가 어떤 자세로 있는지 자각한 듯.) ······ ······아니, 아. (얼굴이며 목이 다 새빨개진다.)
뭔. (말도 못 잇고 더듬.)
파라 무어:(그러나 일어나지 않고 입술 꾹 물고 있는다.)
······ ······넌, (한참 있다가 겨우 입 뗀다.) 애가 왜 이렇게······
가벼워?
(생각하다가 말 고친다.) 좀 많이.
페이드:이게 누가 누구 도와 주는지도 모르고......
비켜. 그냥 일어나게.
파라 무어:······. (그러나 비키지 않는다.) 내가 뭘 한다고 네가 넘어올까 싶단 말이야. 짜증 나.
페이드:모르겠으면 뭐든 해 봐야지. 넌 별로......
의지가 없는 것 같은데.
파라 무어:나도 노력하고 있거든?! (또 울컥한다.)
넌 쉬울지 몰라도, 나한테는 다 어렵다고!
모르는 걸 어떡하라고······ 책에도 안 나와 있는데.
파라 무어:······ ······ ······ ······.
(입 달싹인다.)
······ ······말, 해봐. 들어줄게.
페이드:(이게 뭐라고 이렇게 열심인지 의문이다......)
파라 무어:(그러나 꽤 필사적인, 혹은 초조한 표정.)
페이드:(음, 하...... 한숨 한 번 쉬었다가 파라 뒷목 잡아 끌어내린다. 미간 잠깐 찌푸렸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어서.)
(고개 틀어 입 맞추려다 멈췄다. 여기부턴 시키는 게 낫겠단 판단. 눈 반쯤 뜬 채로 바라본다.) 해.
파라 무어:(안경 너머로 눈동자 굴린다. 얼굴이 가까워진 순간부터 이미 시선을 제대로 못 마주치고 허공을 방황하다가,)
······ ······그러니까, 넌.
······ ······이런 게 취향인 거야? (얼토당토않은 오해나. 고개 비스듬히 틀고 머뭇거린다.)
페이드:썸 타는 사람들이 이 상황에서 할 게 이거 아니면 또 뭐가 있겠어. (따지자면 썸은 아니겠지만. 대충 넘어간다.)
파라 무어:(곤란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지금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아니라. 눈 질끈 감고서 그대로 입 맞춘다. 거의 입술만 닿는 수준으로.)
페이드:(......노력 많~이 했겠다 싶다. 여기서 진도 더 나가 봐야 달라질 거 없을 거고. 그만 두기로 한다. 떨어질 때까지 그대로 기다린다.)
파라 무어:(그걸 가지고도 긴장했는지 어깨가 약간 떨린다. 몇 초쯤 그러고 있다가 슬그머니 떨어진다. 코 끝이 스칠 정도 거리에서.)
······야.
아직도 호감도 마이너스야?
페이드:(마이너스 딱지야 드디어 뗀 것 같다만 제 입으로 말하기 자존심 상한다.) 어차피 100 채우려면 한참 남았으니 지금은 알아도 의미 없을 걸.
파라 무어:······ ······너 진짜 까다롭다.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그제야 내려온다. 괜히 얼굴에 부채질을 한다.)
페이드:(그대로 눈만 굴린다.) 네 호감도는 어떤데?
파라 무어:(묘하게 뚱한 낯.) 지금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어?
페이드:전혀 모르겠다. 아, 모르겠는데...... 말로 안 하면 난 모르는데......
파라 무어:이 망할······ (까지 내뱉었다가 초인적인 힘으로 참는다.)
······ ······그럼 모르는 채로 살든가, 바보야. (고개 휙 돌린다.)
(그냥 일어나 다시 매트에 앉는다. 옷에 묻은 먼지 털다......)
아. 장학금 얘기 들었어?
파라 무어:······무슨 장학금? (처음 듣는 표정.)
네가 아니라 내가 받는대.
파라 무어:아. (눈을 끔뻑거리다가······ 의외로 평소처럼 성질 부리지 않고 선뜻 대답한다. 어딘가 불편한 얼굴이지만.) 그렇게 됐구나.
그래, 잘됐네. 축하해.
파라 무어:그럼 내가 너한테 저주라도 퍼부으리?
바네사한테 깨지진 않겠어? 장학금 못 탔는데.
파라 무어:남의 엄마 이름을 막······. (얼굴 찌푸린다.)
깨지지 뭐. 어차피 너한테 질 때마다 깨졌는데 새삼.
졸업 장학금은 한 번밖에 못 받는 거잖아.
(생각보다 너무 담담해서 현실 부정 중이다.)
파라 무어:그러게, 내쫓기려나. (성의 없는 농담.)
어쩔 수 없잖아. 내가 선생님들께 찾아가서 왜 내가 장학생 아니냐고 따지는 게 더 이미지 깎는 짓일 텐데.
왜?
왜 네가 버젓이 있는데 내가 받는지.
머리야 내가 더 좋은 게 사실이라지만......
파라 무어:이건 꼭 안 해도 될 말을 덧붙여서 사람 열받게 만드네······.
파라 무어:됐어. 선생님들도 생각이 있으시겠지. (자리에서 일어나 옷 매무새를 정돈한다.)
어머니께 내쫓기면 네가 나 책임져.
페이드:장학금도 못 탔는데 뻔뻔하기까지......
파라 무어:아님 그냥 길바닥에서 얼어 죽어야지.
파라 무어:뭐, 어쩌라고. 불만이니? (성가시기까지.)
페이드:내 호감도는 누구처럼 100이 아니라서 어쩔 수가 없네.
그런데, 이 정도로 안 찾으러 오는 거면 너 잊힌 거 아니야?
그러고 보니, 수업 종이 친지도 꽤 되었는데요.
일반 학생들이야 어차피 자습일 테니 페이드는 상관없겠지만,
S 클래스가 수업 땡땡이치는 꼴인데 괜찮은 건가?
그때 드디어 바깥에서 문을 덜컥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페이드:(파라 힐끔 본다.) 어. 빨리 열어.
한참 움직이던 문이 곧 스르르 열립니다. 분명 페이드가 힘을 썼을 때는 꿈쩍도 하지 않았는데요.
리비아: 왜 여기서 이러고 있, 엄마야. 무어도 있네.
파라 무어:······ ······그래, 안녕.
아, 이게 아니라. 페이드, 마지스 선생님이 너 찾아. 교실에 없길래 어디 갔나 했더니, 저번 시간에 체육 창고 정리 도맡았다길래 내가 딱 감 잡았지. 너 또 여기서 땡땡이쳤지? 모범생까지 꼬드겨서?
마지스는 또 왜...... (파라와 리비아 번갈아 보다가......) 들어가라.
(으아~ 하는 소리 내며 천천히 걸어간다. 어지간히 귀찮은 듯......)
리비아: 내가 좋은 시간 방해한 건 아니지? (뒤에서 꺄르륵 웃는 소리가 들린다.) 너 페이드한테 대쉬 중이라며? 쟤 사귀는 건 쉬운데, 호감 사기는 어려울걸. 맞다, 근데 너 특별 강습 안 들어가도 돼? 꼬시는 건 좋은데, 쟤한테 너무 어울려 주지 마.
뒤에서 리비아가 파라를 상대로 열심히 수다를 떠는 것 같지만,
파라도 어련히 알아서 S 클래스로 돌아가겠지요.
페이드는 아주 느림보 걸음으로 천천히 교무실로 향합니다.
교무실에 들어서자, 마지스 선생님은 바로 당신을 발견하고 손짓합니다.
귀 밑으로 단정하게 자른 갈색 머리카락. 이번에 실수로 앞머리를 짧게 자르셨다고 하셨던가요?
삐뚤빼뚤하게 자른 머리카락에 힐끔 시선이 갑니다.
마지스:어서 와요, 응. (손짓해 부른다.) 조금 늦었네요?
마지스:어머, 보건실에는 가봤어요? (걱정하는 얼굴이다.)
페이드:크게 넘어진 건 아니라서 괜찮습니다. (앉을 곳이 있나?)
마지스:(앞에 놓인 보조 의자를 가리킨다.) 앉아요, 앉아. 렉스 선생님이 먼저 부르셨다면서요?
미안해요. 어쩌다 보니 깜빡해서, 내가 얘기했어야 했는데. 이미 들었겠지만, 이번에 졸업 장학생으로 페이드 군을 추천하게 되었어요.
안내는 렉스 선생님께서 해주셨다던데.
페이드:(앉는다.) 예. 안내는 받았는데, 절 추천하신 이유가 있어요?
마지스:이유라······ 페이드 군 성적이면 설명이 되지 않나요?
페이드:성적 엇비슷한데 태도는 훨씬 좋은 S클래스 누구 하나 있잖아요.
마지스:무어 양 말인가요? 음······. (생각한다.)
저도 두 사람 사이에서 고르기 어려워서, 그동안의 성적을 종합해 봤더니 페이드 군이 미세하게 더 앞서더군요. 3학년 1학기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무어 양은 확실히 성실하고 수업 태도가 반듯하지만, 음, 사교성이라거나, 교우 관계도 학생에게 필요한 덕목이죠. 게다가 무어 양은 그동안 장학금을 자주 받았으니까.
마지스:부담 갖지 말아요. 페이드 군도 충분히 S 클래스에 견줄 만한 인재니까.
페이드:부담 갖는 건 아닌데, 뭐랄까...... (여전히 의문 가진 채다.) ......아닙니다. 가 보면 되나요?
마지스:아아, 응, 네. 할 말은 끝났는데······. (입을 달싹인다.)
그냥, 담임으로서 상담 시간이라고 할까······. 고민이라도 있으면 편하게 말해도 좋아요. 졸업이 얼마 안 남았으니 심란할 시기잖아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도 되고, 렉스에게 했던 것처럼 마지스의 주변을 관찰해도 되고,
페이드:파라가 최근 교무실을 자주 들락거렸다는데, 혹시......
......뇌물이라거나.
받으셨습니까?
마지스:······ ······네? 어머. 어머머. (한 박자 늦게 입을 가린다.)
무슨 그런 오해를! 무어 양은 교무실에 볼 일이 있어서 오갔을 뿐이에요.
설마 다른 선생님들도 다 계시는 마당에 뇌물 같은 걸 받겠어요?
페이드:그럼 왜 온 건가요? 걔도 상담이 필요했나?
마지스:페이드 군처럼 일이 좀 있거든요. 개인사라 제가 함부로 말하기는 좀 그러네요. 뭐, 질문하러 올 때도 있었고······.
그러고 보니 교내에 소문이 파다하던데, 무어 양이······
(고개 기울인다.) 그런 데 관심 있으세요?
(그냥질문이다)
마지스:(헛기침을 한다.) 그러고 보니, 그럼 프롬은 무어 양과 함께 가나요?
페이드:예. 같이 가자길래. 어차피 저도 파트너 없었고......
마지스:의외네요. 페이드 군은 인기가 많으니까 여기저기서 청할 줄 알았는데.
페이드:(웃는다.) 프롬 파트너를 청할 정도로 좋아하진 않았나 보죠.
마지스:후후, 그래도 좋은 인연을 만날지도 몰라요. 제 제자가 얼마 전에 졸업 파티 파트너와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보내 왔더라고요. 결혼식에도 다녀왔는데,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아참, 그러고 보니······ ······아니다, 이건 굳이 할 말은 아니겠네요. (고개를 젓는다.)
프롬 파트너와 결혼하는 경우도 흔하지만······ 괴담처럼 퍼지는 이야기도 있거든요. 관심 있나요?
(안 흔한 경우가 뭔지 보여 주겠단 생각뿐이다.)
마지스:프롬 당일에, 파트너의 고백을 거절하면······ 마녀가 기뻐하면서 고백에 실패한 파트너를 자신의 짝으로 데려간다는 말이 있어요.
페이드:
지능
기준치: |
80/40/16 |
굴림: |
96 |
판정결과: |
실패 |
마녀가 세운 학교라느니 하는 말이 있었죠. 잘 기억은 안 나지만요.
마지스:실제로 파티가 끝나고 나서 실종 사건이 일어난 적도 있어서 신비성이, ······헛, 아무튼, 그렇답니다? (급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아님 그냥 재밌으라고 꺼내신 얘기예요?
마지스:페이드 군은 이런 거 잘 안 믿을 것 같긴 해요.
프롬에서 무어 양이 고백하면 어떡할 건가요? (후후 웃는다.)
페이드:(따라 웃는다.) 걔 하기 나름이겠죠.
실종 사건은 제대로 수사된 적 있어요?
(목소리 낮춘다.) 다들 쉬쉬하는 이야기라 제가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네요. 궁금하면 혼자 있을 때 검색해 보세요.
페이드:인터넷에 있는 건데 입으로는 못 말해요?
마지스:학생이 왕성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 손으로 찾아보는 건 제 책임이 아니니까?
페이드:그냥 제가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말했다고 하면 안 돼요? 저 검색 잘 못하는데. (이것도 거절당하면 그냥 순순히 검색할 생각이다.)
마지스:(난감하게 웃는다.) 학생에게 협박당했다고 하면 제 체면이~
페이드:알겠습니다. (눈 굴려 근처 둘러보기나 한다. 뭐 특별한 게 있나?)
페이드:
관찰력
기준치: |
50/25/10 |
굴림: |
83 |
판정결과: |
실패 |
(안경 닦고 다시 본다...)
페이드:
관찰력
기준치: |
50/25/10 |
굴림: |
6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처음 보는 인장이 찍힌 문서가 가지런히 책상 위에 놓여 있습니다.
이전에 렉스의 책상에서 보았던 인장과 똑같습니다.
페이드:(인장 가리킨다.) 저건 무슨 인장인가요?
마지스:응? (고개 돌려서 본다.) ······아, 저거.
그냥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도장이에요. 학교 인장은 아니구요.
(빤~히) 왜 학교 인장 안 쓰시고요?
졸업생 목록인데.
마지스:따로 개인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서류라서요. (후후 웃는다.)
정말 단순히 이름만 적혀 있을 뿐이니까, 개인 정보 유출이라거나 하는 건 아니에요.
마지스:이걸요?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순순히 서류를 내민다.) 그럼요. 그걸로 의심이 풀린다면.
페이드:딱히 의심하거나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서류 받아서 내용 본다.)
말 그대로 졸업 학년인 모든 학생의 이름이 적힌 명단입니다.
A반 목록에는 당연히 파라와 페이드의 이름도 있지만,
어쩐지 당신의 이름에 빨간 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저기.
......저 불쌍해서 주는 거예요?
미안해서?
마지스:······ ······ (당혹스러운 얼굴로 본다.) 페이드 군이 불쌍할 이유가 뭐가 있죠?
페이드:쌤들이 나 싫어해서......? (빨간 줄 다시 본다.)
마지스:성적 우수에, 교우 관계 원만하고, 가정도 큰 문제 없다고 알고 있는데.
페이드:식사할 때 뒷담화도 하십니까? (불쌍한 척하며 서류 덮는다.)
마지스:(따라서 서류 내려다 보고는.) 오해예요. 싫어하는데 왜 장학금을 주겠어요?
페이드:추천하시는 마지스 선생님은 절 안 싫어하나 보죠.
방금 빨간 줄 때문에 하는 말이라면, 장학금 대상자를 고민하다가 잘못 그었을 뿐이에요. 다른 반은 전부 S 클래스가 받아서 헷갈리거든요.
페이드:(서류 도로 내려놓는다. 금방 표정 돌아온다. 실은 아무렇지 않았으니까. ...거의.) 그런가요.
다음부턴 동그라미로 부탁하겠습니다.
마지스:으음, 다음은 없겠지만요. 반영해 보죠.
더 상담하고 싶은 거라도?
페이드:저 같은 사례가 또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아.
이전에도 있었나요?
페이드:S클래스가 아닌 학생이 졸업 장학금을 받은?
마지스:물론 있죠. 장학생 추천은 담임 권한이니까. 예를 들어······
그래, 5년 전에도 S 클래스가 아닌 제니라는 학생이 장학금을 받은 적 있어요. 그때도 우리 반 학생이었네요.
페이드 군도 알겠지만, 렉스 선생님은 조금 원칙주의에 깐깐하신 편이라······.
······ ······그래요, 네. (중간 말 생략한다.)
마지스:웬만하면 S 클래스 놔두고 다른 학생을 추천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 애들은 정말 보증된 모범생 같은 거니까.
마지스:페이드 군처럼 불세출의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흠 잡을 곳 없는 학생이기는 했죠.
페이드:(쑥스러워 하는 기색도 없다.) 그렇군요. 음......
(더 물어 볼 거 없나? 지능 판정 가능한가요)
흠~~ 더 궁금한 게 없다면 마지스 선생님과의 상담은 여기서 마무리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왜 당신이 파라를 놔두고 졸업 장학생이 됐는지는 알았으니까요.
마지스:아, 그래요. 가는 김에 이것 좀 전달해 줄래요? (유인물 더미를 가리킨다.)
페이드 군이 나눠주기 귀찮으면 반장한테만 전해주세요.
유인물은 졸업식 안내문으로,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페이드:제가 할게요. (유인물 더미 챙긴다.)
날짜, 장소, 시간 등이 적혀 있군요. 다음 주 월요일, 강당, 아침 9시······.
형식적인 안내문이거나, 부모님들께 전달하기 위함이겠죠.
마지스:좋아요, 고마워요. 상담이 필요하면 언제든 편하게 찾아와요.
페이드:
운
기준치: |
65/32/13 |
굴림: |
4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 바람에 유인물 몇 장이 팔락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지지만, 전부 흩날리지 않은 게 다행이네요.
그런데 유인물이 떨어진 자리에
쪽지
한 장이 있습니다.
페이드:뭔 헛소리야? (주머니에 구겨넣는다.)
쪽지를 주머니에 구겨넣은 채, 페이드는 신경 쓰지 않고 교실로 돌아갑니다.
그 뒤로는 평범했습니다. 친구들에게 유인물을 나눠 주고, 또 파라 무어는 S 클래스에 처박혀서 나오질 않고.
그러니까 그 쪽지 따위는 까맣게 잊어 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날, 아주 기묘한 하루를 보내지만 않았다면 말이죠.
스트리가 사립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 비슷한 하루를 보내곤 합니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고 해도 기숙사 통금이 풀리지는 않았으니까요.
생각해보면 이 학교, 은근히······가 아니라 대놓고 학생들을 붙잡아 두네요.
그래도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업 진도를 나가지는 않으니,
학생들 대다수가 학교를 놀이터 삼아 지내고는 합니다.
조식을 먹기 위해서든, 그저 눈이 조금 일찍 떠져 아침 산책이라도 나갈 작정이었든, 당신은 방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페이드:
관찰력
기준치: |
50/25/10 |
굴림: |
79 |
판정결과: |
실패 |
문 앞에
포스트잇
이 붙어 있는 걸 발견합니다.
누가 장난을 쳤나? 싶어서 복도 모퉁이를 보아도,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기숙사 방 번호인가, 싶어도······ 한 층에 22호까지는 존재하지 않는걸요.
아침부터 이런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장난이라니, 정성 하나는 인정해야겠어요.
페이드:누가 자꾸 장난질을... (포스트잇 떼어서 주머니에 구겨넣는다.)
페이드는 보통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어디로 갈까요?
막 모퉁이를 돌아 이쪽으로 다가오던 인영과 딱 마주칩니다.
(걷다 말고 멈칫한다.)
좋은 아침? (지나칠지 말지 고민.)
파라 무어:(잠깐 머뭇거리다가 따라서 인사한다.) 좋은 아침. 일찍 일어났네.
왜 여깄어?
파라 무어:난 원래 이 시간에 일어나서 조식 먹고 도서관 가서 아침 공부해.
넌 어디 가던 중이었는데?
무슨 공부? 쉴 때 안 됐나? 듣자하니 교무실도 계속 들락거렸다던데.
파라 무어:그냥, 대학 대비 같은 거······ 예습 느낌으로.
학교에 놀 곳이 있나? (중얼거린다.) ······선약 있어?
페이드:어차피 공부하러 갈 거면서 그건 왜 물어?
파라 무어:아니, 그냥······. (우물쭈물하다가 말끝을 흐린다.)
페이드:(......) 그냥? 할 말 더 없으면 나 간다.
파라 무어:야, 아, 잠깐······. (냅다 소매 끝 붙잡고 본다.)
······ ······서,
선약 없으면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페이드:(고민하는 척 고개 기울이며 눈 다른 곳으로 돌렸다. 곧 다시 파라에게 시선 고정한다.) 그럴까?
밥 같이 먹어 주면, 넌 뭐 해 줄 건데?
파라 무어:(이걸로 이미 오늘치 사회성은 다 소진한 사람처럼 약간 낡았다.) ······원하는 거라도 있어?
페이드:문제집도 답지 보고 베끼는 스타일? 안 알려 줘. 가자. 밥 먹으러.
파라 무어:답 없는 문제는 애초에 문제집에 안 나오지. 넌 나한테 딱히 바라는 거 없잖아. (소매 잡은 그대로 식당 쪽으로 마저 걷는다. 저벅저벅.)
페이드:(끌려가듯 따라간다.) 그럴지도......
학생 식당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한적하고 고요합니다.
졸업도 얼마 안 남았겠다, 대부분은 이 모범생처럼 부지런을 떠는 대신 늦잠을 택할 테니까요.
오늘 메뉴는 토마토 스프와 오트밀 빵, 빵에 바를 수 있는 버터와 딸기잼, 과일 샐러드, 그리고 각종 음료입니다.
파라 무어:(언제나처럼 새모이만큼 떠서 자리에 앉는다.)
페이드:(토마토 스프와 빵만 챙겨와 앉는다. 천천히 씹어먹는다.)
······ ······궁금했던 거 물어봐도 돼? (대화 없어서 어색해진 사람의 얼굴이다.)
페이드:(정적 즐기고 있었다. 턱 괴고 본다.) 어. 묵혀 뒀던 질문거리도 있었어?
파라 무어:우리 학년 애들은 아마 전부 묵혀놨을 질문인데.
네 이름 가명이지?
페이드:...... (코웃음치며 애꿎은 빵으로 스프 찌른다.)
그럼 좀 더 묵혀. 한 78년?...... (별 의미 없는 숫자.)
파라 무어:(괜히 샐러드만 노려보는 중이다.) 대답하기 싫어?
넌 이런 게 왜 궁금한데?
······ ······.
원래 좋아하면 별 게 다 궁금해진다고 하잖아. (천연덕.)
마음 같아지는 날이 오면 알려 줄까.
올 가능성 있어?
페이드:그건 모르지. 난 나를 그렇게 분석하진 않아서.
다른 방법도 있어. 네가 마음 접는 거.
파라 무어:못 들은 걸로 할게. (딴청 피우면서 빵이나 좀 찢어 먹는다.)
페이드:(이렇게까지 진심이었다고? 하는 눈으로 보다가 빵 스프에 푹 담근다.)
다 먹고나면 도서관 가나?
파라 무어:······그 눈빛은 뭐야? (떨떠름하게 쳐다보다가 고개 끄덕인다.) 아마. 책 반납할 것도 있어서. 넌 교실 가?
페이드:너한테 붙잡혀오는 바람에 못 갔던 산책이나 하러 가겠지.
시간이 되려나......
파라 무어:······ ······난 강요 안 했다. (괜히 찔리는지 변명조로 덧붙인다.)
페이드:내가 밥 같이 안 먹는다 했으면 어쩔 거였는데?
너 붙잡은 건, 그냥······ 수업 때는 잘 못 보니까······. (웅얼거리다가 포크 내려놓는다.)
······ ······이럴 때라도 봐야 할 것 같아서······.
페이드:적당히 핑계 대고 수업 빼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꼬?신다면서 그 정도도 못 해?
빼먹어?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소리를 듣는 몬스터 같은 말함)
안 해 봤어?
(그럴 것 같긴 하다는 눈)
파라 무어:······ ······ ······ ······꾀병?
그러다가 진도 놓치면 내 손해잖아.
왜 굳이 그런 짓을······.
재밌고. ......
(말 안 통할 것 같았는지 일어난다.)
파라 무어:······ ······너 진짜 매너 꽝이야. (역시나 자존심 때문에 꾸역꾸역 자리에 앉아 있다.)
페이드:(남은 음식 버리고서 자리로 돌아왔다.) 기다려 줘?
파라 무어:해 봐. (남은 토마토 스튜 긁어 모으고 있다.)
페이드:(책상에 삐딱하게 기댄 채 내려다본다. 제 팔 엮어 팔짱 낀다. 삼 초 후......) 되게 느리네.
파라 무어:······. (그 말에 손길이 좀 더 바빠진다. 남은 샐러드 입 안에 거의 밀어 넣다시피 하고는 식판 들고 일어난다.)
페이드:그렇게 급하게 먹을 것까지야. 다 먹었어?
파라 무어:(여전히 샐러드 씹느라 말 못 하고 고개 끄덕인다.)
내가 데려다 주기까지 해야 하는 건 아니지?
그걸 물어본다는 점에서 이미 더블 꽝이다, 너······.
됐거든. 산책이나 잘 하러 가. (식판 반납한다.)
파라는 도서관을 가는지, S 클래스를 가는지, 휑하니 사라져 버리고······
(수업 시작 전까지 잠깐 자러 기숙사 간다.)
페이드가 기숙사 쪽으로 도로 터덜터덜 걷고 있으면······
저 멀리서 누군가 손을 크게 흔들면서 이쪽으로 뛰어옵니다.
잭: 와, 진짜 마침 잘 만났다! 웬일로 이 시간에 일어나 있대? 너 지금 할 거 없지?
야, 너도 우리 반이잖아. 명예를 걸고 나 좀 살려주라.
페이드:(나 명예 없는데. 중얼댄다.) 뭔 일이길래 그래?
잭: C반이랑 농구 내기. 그 자식들이 A반은 범생이 소굴이라느니, 다들 비실거린다느니 떠들잖아!
아침이라 사람도 없었는데 네가 딱 보이지 뭐냐. 이건 운명이 분명해.
페이드:로맨틱한 말을 하네. (한참 고민.) 지금 가자고?
잭: 내가 또 한 로맨티스트 하지. (손키스 보여준다.) 엉, 지금.
벌써 관중석에 여자애들 쫙 깔렸어. 나 한 번만 도와줘.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잭: 우와아아!!!!! 아싸, 고맙다!! C반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자고.
옆에서 갖은 호들갑을 다 떠는 잭과 함께 체육관으로 향합니다.
이 무료한 기간에 갑작스럽게 생긴 이벤트라서 그런지, 잭 말대로 체육관은 학생들로 북적입니다.
파란색과 빨간색 조끼를 나눠 입은 학생들도 보이고,
관중석에는 다른 반 학생들도 섞여 보이는군요.
갑자기 마련된 게임치고는 스케일이 좀 큰 것 같네요.
잭은 자기가 페이드를 데려왔다면서 으스대다가, 당신에게 파란색 조끼를 건넵니다.
페이드:(조끼 받아 입는다.) 얘들이 단체로 할 짓이 없나......
그러고 보면 관중석에 있는 저 금발 머리 여자애······
잭이 한동안 쫓아다녔던 치어리더 아닌가······.
자기 연애 사업에 페이드를 이용한 게 분명해 보이지만, 여기까지 온 거 뭐 어쩌겠어요.
C반 애들은 범생이 2호가 오셨다면서 웃기 바쁩니다.
당신은 성적이 좋을 뿐이지, 범생이와는 거리가 멀지만요.
심판을 봐주기로 했는지, B반 학생 하나가 호루라기를 크게 불면서 경기가 시작됩니다.
관중석은 각자 반, 혹은 친구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떠들썩하고······
그때 잭이 당신에게로 공을 멋지게 패스하는 데 성공합니다. 득점 찬스예요!
페이드:
민첩
기준치: |
80/40/16 |
굴림: |
84 |
판정결과: |
실패 |
(피곤~하다...)
안타깝게도 공은 골대를 부딪히며 튕겨 나갑니다.
잭: 아, 도와준다며······! (관중석을 연신 흘끔거리다가,)
······ ······ ······엥.
쟤가 왜 저깄냐?
떨떠름한 얼굴로 당신에게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는 파라 무어입니다.
심지어 한 손에는 물병과 수건까지 들고 있습니다.
파라는 학생들을 보다가 다시 경기장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일순 그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스쳐 지나가고,
페이드:
관찰력
기준치: |
50/25/10 |
굴림: |
3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잠깐 관중석에 한눈이 팔린 사이, C반 학생이 2점을 득점합니다.
캐서린 앞에서 체면 구기기 싫다고!
너도 쟤, (관중석 턱짓한다.) 앞에서 지는 꼴 보이긴 싫을 거 아냐!
(괜히 잭 어깨 주먹으로 툭 치고 경기로 돌아간다.)
이것들 아까부터 묘하게 자꾸 나한테만 패스하지 않나, 싶지만,
이번에 페이드가 슛을 성공하면 이기고, 실패하면 지는 겁니다.
페이드:
민첩
기준치: |
80/40/16 |
굴림: |
8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공이 깔끔하게 포물선을 그리고 골대 안으로 들어갑니다.
수행평가였으면 만점을 받았을 만큼 완벽한 궤적이네요.
페이드가 3점을 올리며 경기는 A반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공이 바닥을 치고 튀어 오르기가 무섭게 잭이 환호성을 지르며 세레모니를 하고,
다른 A반 학생들도 전부 페이드에게 달려옵니다.
관중석에 있던 아이들도 내려와서 소리를 지르고, 껴안고,
A반에 남자친구가 있는 애들은 자기 애인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군요.
C반 애들은 구시렁거리기 바쁩니다. 잭이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는 걸 본 것 같기도······.
파라 무어:(인간에게 포위당한 페이드한테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그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중.)
페이드:(파라 보고도 가만히 있다. 얘들 언제 가지? 숨 적당히 고르며 반 아이들 대충 상대해 준다.)
파라 무어:(우두커니······ 꿔다놓은 보릿자루······.)
반 애들은 잔뜩 흥분했는지 당신을 몇 분쯤 더 붙들고 연신 칭찬과 감탄을 토해냅니다.
마침내 만족할 정도로 당신을 둘러싸고 있던 학생들이 페이드를 놔줍니다.
잭: 우리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갈 거지? 덥다, 야.
잭: 엥.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꿔다놓은 보릿자루 본다.)
······아하. (그리고 페이드 어깨 툭툭.)
잘 알겠어, 친구. 나만 믿어.
그러고 잭은 체육관에 남은 애들마저 싹 데리고 나갑니다.
(파라 본다.) 왜 아직도 있어?
파라 무어:(9분 동안 서 있었다.) ······타이밍을 못 잡아서.
페이드:(다리 안 아픈가......) 무슨 타이밍.
파라 무어:말 걸 타이밍······. (학생들이 좀 빠지고 나야 다가온다.)
멋지단 말은 하지 마. 지겹다.
파라 무어:······ ······. (눈으로 욕한다.)
너 인기 좋구나.
페이드:이제 알았어? (파라 손의 물병 본다. 손 내민다.)
파라 무어:아니, 새삼······. (아, 하고 내내 들고 있던 물병 내민다.)
애들이 다 너만 쳐다보고 꺅꺅거리던 거 알고 있어?
페이드:(물병 받아들고 한 모금 마셨다.) 그건 몰랐는데. 그 정도였나......
질투나?
파라 무어:······ ······ ······ ······ ······ ······.
(대꾸 없이 긴 침묵······.)
페이드:(답 기다리며 근처 플라스틱 의자 하나 질질 끌고 온다.) 앉아.
보아하니 대답까지 반나절은 걸릴 것 같으니까.
파라 무어:······ ······누가 그렇대? (그러나 순순히 앉는다.)
위기감이 좀 들었을 뿐이야.
파라 무어:그, 너무 가깝거든. (슬쩍 의자 뒤로 민다.)
······ ······토요일에 데이트해 줄 건 맞지? (딴소리.)
페이드:가까우면 너한테 좋은 거 아닌가. (의자 도로 끌어온다.)
그 얘기가 갑자기 왜 나와?
파라 무어:너무 가까우면 별로 안 좋아. (고개 돌린다.)
그냥······ ······ ······불안해져서.
페이드:(양 팔걸이에 두 손 올려 무게중심 둔다.)
내가 뭐라고 대답하든 믿긴 할 거야?
파라 무어:야, 가깝다고. (열심히 시선 피한다.)
좀······ 좀 떨어져서 말해.
파라 무어:······ ······. (할 말 없다.)
믿을 테니까 대답이나 해, 그럼.
하여튼. 데이트해 줄게.
파라 무어:뭘 못 믿는데? (혀 찬다.) 선심 써줘서 참 고맙다······.
페이드:뭐든. (의자에서 떨어져서 똑바로 선다.) 원래 사이가 그랬는데 어떻게 단번에 인식이 바뀌어?
시험도 다 치르고 나니까 그냥······. (입 꾹 다문다.)
······ ······어차피 너 다른 애들도 딱히 신뢰도 높아서 사귄 것도 아니잖아.
페이드:걔넨 좀 믿을 만했어. 이런 걸로 거짓말할 애들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데이트 오는 거 맞냐고 물어보려고 기다린 거? 그래서 경기 관전도 하고?
물병이랑 수건도 들고?
파라 무어:······내가 무슨 이득이 있다고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해.
그건······ 그냥······
······ ······원래 경기만 조용히 보고 가려고 했어.
파라 무어:네가 경기 뛴다길래······. (웅얼웅얼.)
그래, 그냥 더 보고 싶어서 남아 있었어. 특별한 용건 없어. 됐지? (그리고 벌떡 일어난다.)
볼 만큼 봤으니 가려고?
파라 무어:애초에 용건은 끝났으니까 가야지. (성가셔졌다.)
다음부턴 그냥 너 신경 안 쓰고 애들이랑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파라 무어:그래, 난 도서관에서 종잇조각이나 씹어 먹지 뭐.
책은 씹어 먹으면 안 되는 거 알지?
파라 무어:알아! (울컥해서 소리치고 그대로 성큼성큼 문쪽으로 걷는다.)
페이드:성질은. (매점 간다. 파라가 향한 문 지나쳐야 하나?)
파라는 문으로 걷다 말고 당신의 말에 휙 뒤돌아서 뭐라고 대꾸하려고 합니다.
느낌상 남아서 공을 가지고 놀던 친구들이 그걸 잘못 던진 모양이죠?
페이드:
민첩
기준치: |
80/40/16 |
굴림: |
7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민첩
기준치: |
80/40/16 |
굴림: |
99 |
판정결과: |
실패 |
당신은 재빠르게 몸을 틀어서 날아오는 공을 피하지만······
대체 누가 던진 것인지 아주 무서운 속도로 날라오던 농구공이······
페이드:
SAN Roll
기준치: |
70/35/14 |
굴림: |
6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파라는 그런 광경이 아무렇지도 않은지 자연스레 공을 잡아듭니다.
뒤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립니다.
파라 무어:위험하잖아. 사람 쪽으로 공을 던지면 어떡해!
그러나 파라는 전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듯 혀를 찰 뿐입니다.
페이드:(굳어 있다가 뒤돌아본다.) 어. ......
그런 의문을 품으며 무어라 말을 하려던 찰나······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잔뜩 당황한 표정으로 당신에게 다가오는 파라의 얼굴,
허공에 멈췄던 농구공. 그건 정말로 당신의 착각이었을까요?
파라 무어:······ ······야, 괜찮아?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페이드:(미간 찌푸리며 머리 짚는다.) 지금, 내가 문제가 아니고......
뉴턴이 관짝에서 튀어나올 만한 광경이......
......못 봤어?
파라 무어:······ ······뉴턴이 왜 튀어나와? 사과가 중력을 역행했니? (떨떠름······.)
네가 문제가 아니면 뭐가 문제야. 너 갑자기 쓰러졌거든?
최근에 이상한 징조 있었어? 심장 쪽이 아프다거나, 아니면 손발이 저리다거나······. (뭔가 줄줄 늘어놓음.)
사람이 살다 보면 가끔 기절도 하고 그러는 거지. 그런데,
농구공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공중에서 멈출 순 없는 법이거든.
그대로 네가 맞았어야 하는데, 왜 멀쩡하지. (아쉽다는 건 아니라며 덧붙인다.)
내가 맞았으면 좋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페이드:
심리학
기준치: |
50/25/10 |
굴림: |
96 |
판정결과: |
실패 |
파라가 지금 괜히 꼬투리를 잡으며 화제를 돌린다는 사실은 대강 알겠습니다.
페이드:(안경 벗어두고 비척비척 엎드려 베개에 얼굴 묻는다. 모르겠고, 농구공에 꽂혔다. 그게 왜...... 하며 웅얼댄다. 그러다 고개 돌려 파라 본다.)
농구공이......
왜 멈춰?
파라 무어:······ ······내가 잡았으니까?
공중에서 멈췄는데.
공이 어떻게 공중에서 멈춰. 영화 찍니?
잘못 봤나......
그러나 이 타이밍에, 파라가 들고 다니던 책 제목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 건 우연일까요?
<마법은 실존하는가?>
라고 적힌 책 아래로, 작게 세 자리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파라 무어:뭐······ 머리 아파? (약간 초조한 목소리.)
보건 선생님 곧 오신댔는데.
페이드:아니. 이제 괜찮은데. (일어나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는다.) 보건 선생님한텐 나 다 나았다고 말하지 말고.
그 책 뭐야?
(안경 다시 쓴다.)
파라 무어:책? (무릎 위에 놓인 책 본다.)
······그냥 책인데, 왜?
파라 무어:지금 하러 갈 거야. (황당하게 본다.)
너 이런 거에 관심 있었어? 너 물리학 쪽 아니었니?
페이드:관심 있는지 없는진 읽어 봐야 알겠지. 그건 본 적도 없는 거라.
잠깐 정도는 괜찮잖아. 줘.
파라 무어:그러니까 갑자기 왜? (책 등 뒤로 숨긴다.)
그냥 싸구려 책이야. 내용도 별 신비성 없어.
파라 무어:······ ······난 물리학 쪽이 아니라서?
읽을 수도 있지.
얘가 왜 이러지?
난 뭐, 읽으면 안 돼?
······ ······그냥 좀 껄끄럽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심성도 없이 커튼이 확 젖혀집니다.
네우:어머, 말소리가 들리길래 둘이 앙큼한 짓이라도 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건전하게 대화 중이었니? 재미없어라~
파라, 넌 왜 아직도 여기 있어? S 클래스 안 가봐도 돼?
노란색 머리카락을 아래로 느슨히 묶고, 안경알 뒤로 서글서글한 눈매가 보입니다.
파라 무어:······ ······환자를 혼자 두기가 좀 그래서요. 선생님 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네우:그래? 그럼 이제 나 왔으니까 넌 가봐도 된다.
네우에게 인사하고 보건실을 나서면서도 그는 당신을 끝까지 흘끗 뒤돌아봅니다.
네우:어휴, 저렇게 걱정할 거면서 말은 왜 잘 듣는담. 조금만 더 있겠다고 하면 그러라고 했을 텐데. 쟤도 참 융통성 없어. 안 그러니?
페이드:쟤가 그렇죠, 뭐.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눕는다.)
네우:S 클래스가 대체로 저렇지만. 그래, 쓰러졌다며? 지금은 좀 어때?
페이드:문제 없는데, 좀 피곤합니다. 휴식만 취하다 갈게요.
네우:어지럽거나 토할 것 같지는 않구? (선반을 뒤적거린다.) 나름 건강하던 애가 갑자기 왜 그랬을까. 이상한 거라도 봤니?
선생님은 마법을 믿어요?
그럼, 믿지~ 살면서 마법 같은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데.
네우:사랑? (찡긋하면서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인다.)
파라 걔가 마법...... 어쩌고 책을 갖고 다니길래요.
원래 그런 데 관심 있었나?
네우:왜 남일처럼 말해. 너도 지금 한창 좋을 때인데. (소리 내서 웃는다.)
응, 글쎄다. 평소에도 몰래 좋아해 오던 거 아닐까? 왜, 범생들이 그런 오컬트적인 쪽으로 종종 빠지기도 하고.
페이드:(아닐 것 같은데...... 이상한 불신 있다. 잠깐 그대로 있다가 침대에서 내려온다.)
저 이제 가 볼게요.
네우:아아, 뭐. 그럼 이거라도 먹고 가렴. 명색이 보건 선생님인데 아무 조치 없이 학생을 보낼 수는 없으니까. (물 한 컵과 흰색 알약 하나를 내민다.)
네우:아니, 빈혈에 좋은 영양제. 두통약으로 줄까?
페이드:아뇨, 괜찮습니다. (감사 인사도 않고 문으로 걸어간다.)
네우:조심해서 다녀! (뒤에서 웃으며 소리친다.) 널 호들갑 떨면서 데려 온 파라 심정도 생각해야지. 난 걔가 그렇게 놀라는 건
두 번째로 봤다, 애.
걔가 놀랄 일이 또 있나.
네우:세 번째라고 할까? 첫 번째는 너희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성적 발표날.
그때 애 울었다며? (키득거린다.) 살살 좀 해주지 그랬니.
그렇게 못할 줄은.
다른 건요?
네우:글쎄~ 살다 보면 이래저래 놀랄 일이 좀 있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라거나.
보건 선생님은 다 알아요.
전 잘 모르겠네요. 그럼......
네우:생각하지도 못한 사람에게 반하면 그럴 수 있지. 너한테 구애한다는 소문이 여기까지 들리던데. (깔깔 웃으며 손 흔든다.)
재밌게 즐기렴. 몸 안 좋아지면 바로 또 오고.
네에. (진짜 나간다.)
페이드:
운
기준치: |
65/32/13 |
굴림: |
20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당신은 네우의 책상 위에 올린 서류 더미 속, 분명하게 파라의 이름과 사인을 보게 됩니다.
삐져나온 종이라 정확한 내용은 보기 힘듭니다.
그리고 그 사인 밑에 찍힌 인장은, 마지스와 렉스가 사용하던 문양과 동일합니다.
그러니 이제 더는 처음 보는 문양이 아니고, 세 번쯤 본 문양이 되겠네요.
페이드:(갸우뚱. 가리킨다.) 저건 무슨 문서예요?
어머, 눈도 좋아라. 선생님과 학생 간에 깜찍하고 비밀스러운 문서. (여전히 웃는 낯으로 서류 더미를 탁탁 쳐서 정리한다.)
난 남의 예비 애인 건드리는 몹쓸 선생님은 아니니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장학금 수령인이 바뀌기라도 한 거예요?
장학금은 그냥 즐기렴. 그건 네 것 맞아. 무려 담임의 추천인걸?
그리고 말이다, (목소리 낮춘다.) 저게 장학금 양도 계약서 같은 거였으면 그 애 성격에 순순히 사인을 했겠니.
페이드:아니, 뭐, 바뀌어도 상관은 없는데......
아.
네우:심지어 자신에서 너한테 바뀌는 데 동의를 했겠어?
페이드:(그런가? 싶다가......) 걔 장학금에 별로 미련 없어 보이던데요.
네우:당연히 좋아하는 사람 앞이니까 안 그런 척 한 거겠지. 무어 의원님 극성맞으신 걸 누가 몰라.
페이드:흠. (서류 있던 부분 유심히 쳐다보다 꾸벅 목례하고 나간다.)
보건실 문을 얌전히 닫고 나오면, 한산한 복도입니다.
페이드:(도서관으로 저벅저벅...... 가는 길에 창밖으로 받은 약 버린다.)
빈혈은 무슨.
학교 도서관은 무척 넓습니다. 한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니 당연하겠지만요.
1층은 아주 긴 책상들이 홀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뒤쪽에는 거대한 책장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입구 근처에 있는 테이블에서는 사서가 구식 컴퓨터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2층은 개인 독서실 공간 및 스터디 활동이 가능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요.
그리 많지는 않지만 도서관을 오가는 학생들이 보입니다.
숨소리조차 함부로 내면 안 될 것 같은 공간에서 사람들의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유독 크게 울립니다.
페이드:(사서에게 다가가 <마법은 실존하는가?> 의 위치를 묻는다.)
사서: 아, 그 책은 한 권 있는데······ 현재 대출 중이네요.
예약 걸어줄까요?
페이드:예. (대답만 하고 자리 떠서 도서관 내부 둘러본다. 파라가 있으려나?)
도서관에 오더라도 걔는 대부분 2층 개인 독서실에서 짱박혀 있을 뿐더러,
지금은 아마 S 클래스 수업을 듣는 중이겠군요.
사서: 네, 예약됐어요. 혹시 그쪽에 관심이 있으면 비슷한 책들이라도 소개해 줄까요?
사서: 음, 마법 관련은 아무래도 픽션 소설 쪽이나······
200번대 서가에도 좀 있더라고요. 종교 코너예요. 그쪽으로 가보면 비슷한 도서들이 있을 텐데.
저쪽이에요. (거대한 책장 중 한 곳을 가리킨다.)
페이드:(고개 까딱여 인사하고 200번대 위치로 가서 책장 훑는다. 222가 있나...... 혹은 눈에 띄는 도서라든가.)
<숭배자들>
이라는 제목의 검은색 표지를 가진 두꺼운 책입니다.
페이드:아, 거 되게 두껍네. (꺼내서 대충 어디 자리 잡아 앉고 읽기 시작한다.)
페이드가 책을 꺼내 사람 없는 곳에서 펼쳐보면,
책의 페이지가 제멋대로 펄럭거리며 넘어가더니 한 부근에서 멈춥니다.
페이드:숭배자들이 아니라 멍청이들이겠지...... (턱 괴고 중얼인다.)
......흠. (책장 넘긴다. 별 내용 없나?)
과거 종교와 신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인 것 같네요.
그나저나 열린 창문이 없는데 어디서 바람이 들어온 거지?
페이드가 책장을 넘기면, 당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도로 페이지가 앞으로 넘어가 아까와 같은 곳을 펼칩니다.
페이드:(이게? 책 한 대 주먹으로 때렸다가 문장 보고 멈칫......)
......
(두리번거린다. 창문 안 열려 있는데?)
(페이지 천천히 넘긴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글자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는데요.
어디선가,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립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강한 꽃향기가 코끝을 맴돌고,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를 소음이 귓가에 진동처럼 울릴 때에······
책장에 있던 책들이 허공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합니다.
표지에 적혀 있던 각종 제목의 활자가 튀어나와 모래처럼 흐트러져 사라집니다.
주변을 살피면, 아까까지 멀쩡히 움직이던 사람들이 그대로 굳어 있습니다.
페이드:
SAN Roll
기준치: |
70/35/14 |
굴림: |
3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리고 다시, 당신이 쥐고 있던 책에 글자가 새겨지기 시작합니다.
누군가 실제로 펜을 쥐고 쓰는 것처럼 글씨 끝에는 잉크의 번짐이 묻어 나옵니다.
[목숨이 소중한 줄 안다면, 당신의 편에 선 마녀를 찾을 것.]
[찾지 못한다면 당신은 마녀의 제물이 된다.]
눈으로 보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에요.
[힌트를 원한다면, 당신의 이름을 말하시오.]
(주변 다시 보았다가 다시 책에 눈 둔다.) 제물?
꿈이야, 이거?
(볼 꼬집어 본다.)
(고민하다 책에 가까이 대고 속삭인다.) 데티아스 노시그네트.
펄럭, 다시 한 번 책의 페이지가 넘어갑니다.
백지에는 점차 알 수 없는 문장이 새겨집니다.
페이드:
지능
기준치: |
80/40/16 |
굴림: |
92 |
판정결과: |
실패 |
분명 본 적 있는데, 눈앞의 광경에 압도되어서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데티아스 노시그네트’와 ■는 계약을 맺는다.]
[‘데티아스 노시그네트’는 이 계약 사실을 비롯해 지금껏 본 모든 풍경을 남에게 말하거나 알려줄 수 없게 된다.]
[■는 ‘데티아스 노시그네트’에게 ‘정답’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첫 번째 힌트, 마녀는 총 세 명이다. 한 명은 인간에게 적대적이며, 한 명은 인간에게 호의적이다. 그리고 남은 한 명은 내기를 꾸몄다.]
[두 번째 힌트는 금요일의 ‘파라 무어’에게 있다.]
[마지막 힌트를 확인한 날, 정답을 맞힐 수 있다.]
그리고 팟! 시야가 점멸되었다가 천천히 돌아옵니다.
주변 사람들은 언제 멈췄냐는 듯, 다시 책을 가지러 움직이고 있습니다.
책장에 있던 책들도 모두 얌전히 제자리에 꽂혀 있습니다.
<숭배자들>
의 내용 또한 원래대로 돌아와 있습니다.
페이드:누군데 마음대로...... (궁시렁대며 쪽지 꺼내어 본다.)
[종이에 마녀의 이름을 적으라. 소환된 마녀는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 줄 테니.]
[P.S. 졸업 전 마지막 시험입니다. 정답을 맞히길 진심으로 바랄게요.]
그럼 그······ 모든 물리 법칙을 싸그리 무시하는 일이 현실?
하지만 장난이라고 하기에 그 장면은 너무나 환상적이었습니다.
외면해도 당신에게 닥치는 이 모든 이상한 일들이 하나의 진실로 이어지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페이드는 도서관을 나섭니다. 이후로는 평범한 일상이 이어집니다.
파라가 어떤 식으로는 이 일에 연관되어 있는 건 확실한데,
직접 물어보기에도 그는 모습을 도통 보이지 않습니다.
‘금요일의 파라 무어’에게 있다는 두 번째 힌트.
소름끼치게 질척한 어둠이 깔린 배경에서, 당신은 걷고 있습니다.
당신의 손에, 발에, 찐득한 무언가가 올라타고 있습니다.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없습니다.
당황한 표정으로 당신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파라가 보입니다.
천천히 시야가 돌아오며 사태를 파악하게 됩니다.
새벽녘의 어스름한 배경과 그 어딘가에서 맡아지는 지독한 악취.
딱히 무리한 것도 없는데, 몸살 비슷한 감기 기운이 올라와 결국 보건실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피로한 몸은 생각보다 금방 잠에 들었지만······
그 와중에 파라는 또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어딘가 아파 보이는 낯은 아닌데 말인데요.
수업 안 들어?
파라 무어:아, 나는 보건 선생님이 부르셔서······.
왔는데 네가 끙끙 앓고 있길래.
(보건실에 선생님 있나? 두리번거린다.)
페이드의 시선을 읽은 건지 파라가 먼저 대답합니다.
파라 무어:선생님은 잠깐 볼 일 있으시다고 어디 나가셨어.
페이드:나쁘지 않은 상황이네. (문서 더미 사이에서 그때 보았던 문서 찾는다.)
전에 봤던 그 문서는 보이지 않고, 대부분 학교 공문이나 졸업식, 혹은 입학식 관련 안내문 정도입니다.
(다시 원래대로 정리해 둔다.) 서명......
무슨 문서에다가 한 거야?
아니다. (도로 침대에 들어가 눕는다.)
닦을 거라도 줄까? 너 식은땀 났어.
파라 무어:응. (잠깐 뒤적거리더니, 물 한 잔과 수건을 찾아와서 내민다.)
페이드:(받아서 물 마신 뒤 식은땀 닦아낸다.)
자꾸 악몽을 꿔.
뭐가 날...... 죽이는데.
요새 뭐 신경 쓰이는 일이라도 있어? 네가 이렇게 허약할 줄은 몰랐네······.
마법 어쩌고 그 책, 아직도 갖고 있어?
파라 무어:아, 응. 어제 반납하는 걸 까먹어서.
······내가 대쉬하는 게 그렇게까지 심란할 일이야?
페이드:그렇게까지 바로 반납해야 된다고 했으면서?......
(뒷말 넘긴다.) 줘 봐. 책.
파라 무어:기숙사에 있어. (어깨 으쓱인다.)
마법 믿어?
······ ······아니.
그때 언제나처럼 조심성 없이 커튼이 활짝 열립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재미없게 놀고 있고. 몸 많이 안 좋으면 기숙사 가서 쉬렴. 마지스한테는 내가 말할게.
그리고 파라는······ 아, 내가 너한테 줄 게 있었는데, 참. 오늘 분명 들고 왔는데 왜 안 보이는지 모르겠네. 내일 기숙사에 있니?
파라 무어:아, (페이드 쪽을 흘끗 본다.) 아뇨. 약속이······ 있어서 내일은 외출해요.
네우:그래? 그럼 졸업식에 줄게. 페이드 너는? 기숙사 갈래?
페이드:(파라 본다.) 좀 더 있다가 갈게요.
네우:그래? 어차피 쉴 거면 기숙사 침대가 더 편할 텐데?
아니면 선생님한테만 두근두근하게 이야기 할 비밀이라도 있니? (후후 웃는다.)
파라도 좋아하지 않아? 툭하면 페이드랑 성적으로 내기하면서.
페이드:그럼 시험을 좀 더 열심히 치러 볼 걸 그랬네.
네우:(대놓고 깔깔대고 웃는다.) 너희 정말 사이 좋구나. 언제 사귀어?
자, 그래서 페이드는 여기 있을 거고?
솔직히 말하자면······
선생님도 쉬어야 하니까 네가 그만 가줬으면 좋겠는데.
페이드:아, 네. 쉬세요. (순순히 일어서서 나간다.)
아, 그럼 내가 좀 도와줘야지. 파라가 페이드 좀 기숙사에 데려다 주렴. 중간에 또 혼절하면 큰일이잖아.
설마 모범생이 선생님 말을 거스르진 않겠지?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나란히 양호실에서 내쫓깁니다.
그는 노려보듯 보건실 입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털고 당신을 마주 봅니다.
파라 무어:······ ······네가 안내해.
페이드:(잠깐 쳐다봤다가 기숙사로 발 옮긴다.)
기숙사로 올라가는 계단쯤 되어서야 그가 입을 엽니다.
넌 만약에······ 음. (잠시 생각한다.)
나랑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나갈 수 있는 방에 갇혔어. 그럼 어떻게 할 거야?
파라 무어:평서문은 아니었는데. 인토네이션이 올라갔잖아.
난 살 거야. 그렇게 죽는 건 싫어서.
내가 죽일 필요는 없는 방인 거지?
탄환 하나 든 총 같은 게 있다고 해볼까······. 응.
페이드:그냥 하는 질문이면 내가 답할 이유도 없으니까.
파라 무어:아, 뭐······ 호감도 측정용 질문이라고 할까.
......아니, 아니다. 가지 말아 봐.
파라 무어:결국 대답 안 해주잖아······.
파라 무어:(좀 뚱한 얼굴로 본다. 팔짱 낀 채 대답하지 않는다.)
야.
(묵언 수행.)
파라 무어:본인은 비합리적인 질문을 하면서 나한테만 대답 강요하는 건 별로라고 생각해.
(그리고 다시 입 꾹 다문다.)
파라 무어:이름도 결국 말 안 하고······. (중얼.)
그게 내가 너한테 다 맞춰줘야 한다는 뜻은 아니거든.
페이드:내 질문 하나고, 네 질문 두 개면......
대화가 이대로 끝났을 때 더 손해보는 게 누구일까.
네가 먼저 대답하면 나도 하나 답할게. 공평하게.
파라 무어:너도 아까 보건실에서 마법을 믿냐느니 물어봤잖아.
나 간다?
안 믿어.
됐지? (고개 까닥인다.)
······아, 아니. 방금 건 질문 아니야.
됐으니까 내 질문에나 대답해.
페이드:방금 전 대답이 거짓이 아니라면야, 못 해 줄 것도 없지.
파라 무어:(잠깐 머뭇거리다가 팔쪽 셔츠를 잡아서 멈춰 세운다. 페이드보다 계단 한 칸 아래에 서서.)
날 좋아해? (묻는 게 결국 이런 거.)
파라 무어:······ ······. (뭔가 더 묻고 싶은 눈치지만.) 그래.
페이드:(내려다보다 입 다문다. 질문이야 더 안 한다면 좋은 일이다. 잡힌 채 가만 있다.)
파라 무어:(다시 스륵 팔을 놓는다. 어쩐지 불편한 얼굴로.)
그다음 층에서, 파라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합니다.
파라 무어:아, 여기 내 방 층인데······.
······ ······.
······ ······ ······ ······.
······ ······ ······래? (안 들리는 목소리.)
(심호흡.)
자, 잠깐 들렀다 가겠냐고······.
어쩐지 버벅거리는 말투. 붉어진 귓가. 어색하게 굴러가는 눈동자.
그는 당신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죠?
방금 당신의 대답에서 위기감을 느꼈든, 어쨌든.
파라 무어:······싫으면 말고······.
악몽, 마녀, 마법, 제물, 목숨······ 온갖 환상 같은 단어들과 더불어 문득 한 문장이 떠오릅니다.
[두 번째 힌트는 금요일의 ‘파라 무어’에게 있다.]
페이드:(선심 쓴단 투로 답한다.) 그럴까. 안내해.
나 그냥 가?
······아니, 가지 마.
파라는 그렇게 말하고 어쩐지 삐걱거리는 움직임으로 제 방까지 갑니다.
자기가 초대해놓고 어쩐지 문을 열기 직전까지도 당신을 흘끗흘끗 보는 꼴이 역시나 우습습니다.
페이드는 팔자에도 없는 S 클래스 모범생의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의 성격을 드러내 주듯 깔끔하게 정돈된 침구, 옷장, 책상,
무채색으로 일관된 인테리어와, 필수적인 가구만 놓인 다소 삭막한 풍경입니다.
그리 크지 않은 책장에는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습니다.
앉을 데가 마땅히 없어서······ ······ ······침대에라도 앉아 있을래?
페이드:그래도 되나. (그새 침대 앞에 섰다.)
(눈만 굴려 책장 훑어 본다.)
파라 무어:싫으면 서 있든가. (서랍 뒤적거린다.)
페이드:
관찰력
기준치: |
50/25/10 |
굴림: |
90 |
판정결과: |
실패 |
(그냥 앉는다.)
깔끔한 책장에는 그동안 학교에서 썼던 교과서와 문제집, 각종 서적이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그 사이에 뭔가 이질적인 회색 종이뭉치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한데······
슬~쩍 꺼내보면, 이건 시험지가 아니라 신문 뭉치입니다.
읽어보니, 심지어 최근도 아니고 대략 5년 전 신문입니다.
그중 아주 구석에 적힌 파트에 빨간 볼펜으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네요.
제목은······ ‘J의 실종 사건은 왜 묻혔는가?’입니다······
페이드:그 실종 사건? (내용 읽을 수 있는 상태인가?)
마지스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실종 사건일까요?
페이드:(턱 매만지다 신문 옆에 내려놓는다.)
파라는 왜 이런 신문을 찾아 읽고 있었을까요?
이내 서랍을 뒤적거리던 파라가 작은 박스 하나를 꺼내 당신에게 내밉니다.
파라 무어:숙면에 도움을 주는 향이래. 나도 가끔 못 자서 언니가 보내줬는데 효과가 괜찮길래······.
자꾸 악몽 꾼다며.
페이드:그건 그랬지. (감사 인사도 않고 박스 도로 닫아 신문 위에 올려 둔다.)
파라 무어:······ ······별로야? (눈?치 봄?)
왜?
파라 무어:네 반응이 싸가지가 없어서······. (이걸 검열도 안 하고 그대로 말함)
혹시 초등학교 때 고맙다는 말 안 배웠어?
다른 목적 있는 건 아니고?
파라 무어:······내가 이렇게 해서 얻을 게 뭐가 있다고?
난 자처해서 기분 나빠질 짓을 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
페이드:실종됐다는 J씨랑 나랑 상황이 좀 겹치는 것 같아서.
뭔가, 음, 밑작업을 하는 거라든가.
그렇다고 네가 그런 데 가담할 것 같진 않고......
(고개 기울이고 한참......) 걱정해서 그러는 거야? 없어질까봐?
이해 안 되는 일 투성이라 전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
파라 무어:······ ······J는 성실하고 선생님들 사이에서 평판도 좋은 학생이었대. 너랑 다르지. (침대에 털썩 주저앉는다.)
내가 널 좋아한다고 하는 게 이해가 안 돼?
페이드:하지만 S 클래스는 아니었지. ......
......너 같으면 이해가 되겠어? 생각해 봐.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너한테 프롬포즈하고, 데이트 신청하고, 좋아한다면서 이상한 질문지까지 주는 상황.
어떻게 받아들일 건데?
파라 무어:(입 다문다. 자신이라도 미쳤나 싶었을 것 같으니까.)
······그렇지만 진심인걸.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네. 프롬포즈하고, 데이트 신청하고, 이상한 질문지 주는 게 내 최선이었다고.
내가 너를······ ······ ······걱정했다고 하면 그건 믿을래?
페이드:넌 좋아하는 마음 그냥 묻을 것 같은 이미지라 뭘 어떻게 해도 안 믿겨.
나 걱정해서 이런 거 보고 있던 거야? (신문 가리킨다.)
파라 무어:네가 날 얼마나 안다고 그런 이미지래?
(신문 쪽 본다.) ······ ······그냥······.
······우리 학교, 매년 졸업생 중에서 실종자가 나오는데, 사람들은 아무도 몰라. 언론도 안 다뤄. 그나마 저 기사가 유일한데, 저마저도 별로 주목을 못 받았어.
그 사람들은 잊힌 거야. 아무도 어떻게 됐는지 모르는 채로. (그리고 다시 침묵.)
페이드:그래서 네가 파 보려고?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파라 무어:그래서 널 기억하려고. 뭐가 어떻게 되어도.
파라 무어:······ ······널 좋아하니까.
페이드:......애초부터 상대해 주지 말 걸 그랬네.
더 할 말 없어? 오늘이 우리가 얼굴 보는 마지막 날이 될 것 같은데.
뭐가 문제인데?
페이드:누가 나 기억하고 그러는 거 좀...... 기분 나빠서.
안 한다고 하면 데이트도 하고, 프롬도 같이 가고, 하여튼 뭐든 어울려 줄 수 있는데, ......
어떡할래?
잊히고 싶어?
J처럼?
얜 남았잖아. 여기.
그러니까 너도 날 남길 작정이면, 그냥 더 보지 말자고.
파라 무어:나는, (그리고 말 잇지 않는다.)
(간극 후.) ······ ······그래. 그렇게 할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내일 문제 없이 나오는 거지?
페이드:그럴 걸. (상자 챙겨 방 나서려다 멈춘다.)
이거, 네가 쓰던 향초야?
파라 무어:같은 향이야. 언니가 오래 두고 쓰라고 여러 개 보내줬거든.
그 책 어딨어? 마법 책.
파라 무어:······. (순순히 책상 쪽을 가리킨다.)
페이드:(책상 가서 <마법은 실존하는가?> 찾는다.)
책상은 어쩐지 좀 어질러져 있습니다. 파라 성격이면 늘 깨끗하게 정돈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 켠에는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페이드는 그 책들 사이에 끼워진
종잇 조각
하나를 발견합니다.
[본래 마녀만 사용할 수 있는 주문으로, 소량의 마력(1D2)을 소진해 곧바로 시전되는 단순한 구조다.]
[그러나 시전자가 마녀가 아니라면, 주문의 주인에게 제약을 받는다. 따라서 지정된 ■■와 ■■, 추가적인 ■■을······]
끝에 이르러서는 글씨가 번지고 찢어져 문장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파라 무어:알아서 돌아가든, 좀 더 쉬다 가든 알아서 해. 난 수업 들으러 가볼게.
파라는 당신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듯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방을 나섭니다.
페이드:(종잇 조각까지 챙겨서 기숙사로 간다.)
향초를 켜볼 수도 있고, 가져온 책을 읽어볼 수도 있고, 그냥 쉴 수도 있겠군요.
페이드:(<마법은 실존하는가?> 펼쳐서 읽어 본다.)
파라가 말했던 대로, 별로 영양가 있는 내용은 아닙니다.
역사 속 구전되는 마법사나 마녀를 이야기하는, 공상 같은 이야기지만······
지금 당신에게는 그저 환상으로만 들리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녀’ 챕터에 가름끈이 끼워져 있다는 걸 제외하고는 별로 흥미로운 건 없습니다.
(한쪽에 치워 두고 향초 켠다.)
저녁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새카만 어둠이 내려앉고,
그 안에서 향초의 불빛만이 애처롭게 일렁거립니다.
불꽃을 주시하고 있으면, 문득 시선이 느껴집니다.
아주 가까이, 아주 가까이 무언가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인지, 뒤인지, 옆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꺼질 것 같이 불빛이 줄어들었다 커지기를 반복합니다.
그동안 맡지 못했던 악취가 갑작스레 쏟아집니다.
페이드:
SAN Roll
기준치: |
70/35/14 |
굴림: |
4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 끔찍한 냄새를 향초가 막아주고 있던 걸까요?
구토가 치미는 것을 막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뜨면,
그리고 향초가 들어 있던 상자에 아까는 보지 못했던 쪽지가 들어 있습니다.
페이드:대체 뭘 준 거야? (쪽지 꺼내어서 본다.)
[두 번째 힌트. 마녀는 두 사람과 내기했다. 하나는 당신, 그리고 하나는 또 다른 이 학교의 학생.]
[그 학생과 내기하는 데 한 마녀는 반대했고, 한 마녀는 그럭저럭 만족했다. 그리고 한 마녀는 그것을 주도했다.]
[그리고 그중 한 마녀는, 당신과도 내기를 벌인 줄 전혀 모르고 있다.]
[즉, 이 마녀를 고를 일은 없기를 바란다.]
[세 번째 힌트는 토요일의 ‘파라 무어’에게 있다.]
금요일의 ‘파라 무어’에게 있다는 힌트가 이것이었나 봅니다.
페이드:(쪽지 책상에 올려 두고 향초 다시 켜 본다.)
향초에 다시 불을 붙여도 특별히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어쩐지 오늘은 악몽을 꾸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네요.
어제 잠들기 전, 페이드는 파라로부터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적은 문자를 받았습니다.
페이드:(평소에 입던 대로 캐주얼 룩......)
페이드:
외모
기준치: |
80/40/16 |
굴림: |
7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잘생긴 페이드는 적당히 옷을 입고 약속 장소로 나갑니다.
한 소극장 앞, 마찬가지로 평소에 입던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있는 파라 무어가 보입니다.
진짜 왔네.
들어가면 되나?
파라 무어:응, 연극 시작까지 한 15분 남았으니까. 들어가서 기다리면 될 것 같아. (손목 시계 본다.)
소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오늘 볼 연극의 포스터가 널찍하게 걸려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라고 만들어 둔 포토 스팟도 있고요.
페이드:......일부러 오늘로 정한 거 아니지?
파라 무어:······? 우리 학교는 기숙사제라 평일에는 외출 못 하고, 주말 이틀 중 하루인데, 월요일이 졸업이니까 일요일은 휴식을 취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서 오늘로 정했어.
문제 있어?
그렇게 다 말할 필요는...... (포토 스팟 구경한다.)
평범한 포토 스팟입니다. 연극 타이틀이 앞에 세워져 있고, 뒷배경으로는 무릎 꿇은 남성과 그에게 손을 뻗는 여성의 실루엣이 있는······
비치된 팜플렛에서 줄거리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페이드:(팜플렛 하나 챙겨서 줄거리 확인한다.)
[정체를 숨긴 채 인간 세상에 뛰어든 마녀 줄리엣은 인간 로미오와 사랑에 빠진다.]
[그가 떠날까 전전긍긍하던 줄리엣은 사랑의 묘약을 만들고, 그것을 마신 로미오는 줄리엣에게 완전히 홀려 버린다.]
[그러나 그런 그를 수상쩍게 여기던 친구 로렌스가 우연히 줄리엣의 정체를 알게 되는데······.]
당신이 팜플렛을 읽는 동안, 파라는 어느 새 당신 곁으로 와 함께 줄거리를 읽고 있습니다.
네가 들고 읽을래?
결말이 어떻게 될 것 같아?
(팜플렛 하나를 집어들어서 챙긴다.) 사랑하던 여자가 사실 마녀였고, 자긴 마녀한테 홀렸다는 걸 알면······ 로미오는 줄리엣을 떠날까?
페이드:줄리엣이 화형당하고 로미오는 슬퍼하겠지.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느꼈던 감정들이 가짜가 되는 건 아니니까.
............
너도 뭐에 홀린 거 아니야?
무슨 이런, 묘약 같은 거 마신 거 아냐?......
파라 무어:······ ······아, 내가 사랑의 묘약을 마셔서 널 좋아하게 됐다? (짜게 식은 눈으로 봄)
페이드:그런 게 아니면 대체 뭘 보고 좋아하는 건데?
파라 무어:······ ······ ······ ······.
얼······굴?
말고.
인성이나 성격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내가 객관성을 잃지는 않았어.
페이드:얼굴만 보는 거면 럭비부 대가리라도 소개해 줄까 했는데.
파라 무어:아, 싫어. (질색한다.) 걘 마초이즘에 찌들어서 목소리만 크고, 천박하고, 땀 냄새 나.
난 나보다 똑똑한 남자가 좋더라.
(할 말 없다.) 그래. 내가 조만간 성형을 하든 해 보지......
아, 그. 향초. 진짜 네 형제가 준 거 맞아?
파라 무어:응, 저번 외박 때 직접 받아 왔는데.
향 별로였어?
쪽지도 네가 넣은 거야?
파라 무어:······? 사용 설명서 같은 거 아냐?
미개봉 제품인데 쪽지 같은 게 있을 리가.
'♡언제나 사랑해♡' 였나?
끔찍한 소리하지 마.
페이드:그~래. 보러 들어가자. (이만하면 충분히 놀렸단 표정 하고서 등 떠민다.)
파라 무어:나 아니야! (등 떠밀리며 계속 억울한 듯 해명한다.)
소극장 안으로 들어가서 좌석을 찾아 앉으면, 얼마 가지 않아 안내 멘트가 흐릅니다.
곧 조명이 깜깜하게 꺼지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로맨스 연극일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극 초반부터 아주 진한 키스신이 나오는군요.
어두워서 확실하진 않지만 파라의 귀 끝이 붉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작은 헛기침 소리, 민망한 듯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아무튼 당신을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확실히도 느껴집니다.
페이드:(손 그대로 두고 몸 기울여 속삭인다.) 나갈까?
파라 무어:(정면만 응시한 채로 고개 느리게 젓는다.)
(그러나 목이 빳빳하게 굳어 있다.)
페이드:그럼 됐고. (다시 똑바로 앉는다. 잡힌 손 뒤집어 깍지 낀다.)
파라 무어:(티나게 움찔한다. 잠깐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곧 꾹 힘주어서 깍지 낀다. 손 빼지 않고 그대로 연극 본다.)
로렌스의 고발로 줄리엣은 결국 로미오에게 정체를 들키고, 사랑의 묘약을 먹였다고 실토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묘약에 취한 로미오는 줄리엣을 끌어안고서 말합니다.
“내 사랑은 고작 그런 묘약으로 좌지우지되지 않는다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실되었소.”
“해독약을 먹는다 한들 내 마음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오. 부디 내 사랑을 증명하게 해주오, 사랑스러운 당신.”
그 말에 감동한 줄리엣은 로미오에게 해독약을 건넵니다.
그렇지만 막상 묘약의 힘이 끝나자 로미오는, 충격과 배신감에 휩싸여 마녀를 미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솔직하게 말했다가는 마녀가 보복할까 무서웠던 그는, 감정이 달라지지 않은 척 마녀에게 여전히 사랑을 속삭입니다.
그러자 로렌스는 마녀를 쫓아낼 방법을 찾아 로미오에게 알려줍니다.
그것은 마녀에게 마법을 빼앗아, 죽은 것과 다름없는 폐인으로 만드는 주문.
“당신은 정말로 사랑스럽소. 마치 한 떨기의 꽃 같고, 당신의 미소는 봄날의 햇살을 닮았지.”
“그러나 당신은 인간을 존중할 줄 모르는 악랄한 마녀이며, 내가 당신을 벗어나고자 하면 내 영혼까지도 구속할 것이오.”
줄리엣은 화를 내거나 그를 해코지하지 않고, 그저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립니다.
“나를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내가 아름답다고 했잖아요! 약에 취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할 것이라고 했잖아요!”
줄리엣은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입맞춤을 해주면, 주문을 쓰지 않더라도 사라져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로미오는 그에게 입을 맞추고, 줄리엣은 약속대로 로미오를 떠나지만,
혼자 남은 로미오는 그제야 자신이 마녀를 진정으로 사랑했음을 깨달으며 크게 후회합니다.
······아무도 남지 않은 공터, 뒤늦게 사랑을 고백하는 로미오의 처절한 독백으로 극은 막을 내립니다.
파라 무어:(잠간 생각해 본다.) ······아니. (질색한다.)
파라 무어:네가 우는 걸 상상했더니 속이 안 좋아져서······.
음······.
······ ······좋아하는 사람의 우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하지 않니?
페이드:속이 안 좋아지는 건 좀 다른 느낌 아니야?
파라 무어:꼴 보기 싫다는 점에선 비슷하잖아.
(어이가 없다.)
파라 무어:그냥 평범한 사랑 이야기던데, 뭐.
로미오가 멍청하다는 생각······.
줄리엣이고 로미오고 로렌스고 다 마음에 안 들어.
너······.
이동할까.
네우:어느 면이? 어라, 페이드랑 파라 아니니?
너희도 이거 보러 왔구나?
파라 무어:······ ······안녕하세요. (예의 바르게 인사함.)
아주아주 친밀하고 가까운 동료. (눈 찡긋한다.) 둘이야말로 데이트 왔어?
얘가 오재서요.
파라 상처받았겠는데?
렉스:두 사람, 외출증은 제대로 제시하고 나왔나요?
졸업 직전이라지만, 기숙사에 아직 거주 중인 스트리가의 학생인 이상 학칙은 지켜야 해요.
했어요.
(페이드 봄)
어차피 졸업 직전인데 외출증 한 번 안 냈다고 퇴학이라도 시키겠니.
그보다 연극 어땠어? 재밌었어?
키스신이 좀 진했던 것 같기도 하고.
파라 무어:(옆에서 사레 걸린 것처럼 헛기침 한다.)
네우:너희도 이제 다 성인인데 그런 거 가지고 뭐.
베드신이 나온 것도 아니고.
네우:적당히 밥 먹고 헤어져야지. 너희 방해는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렴. 파라는?
파라 무어:(입 다물고 있다가.) ······조금 별로요.
렉스:의견이 일치하는군요. 애초에 마녀와 인간은 만나지 않아야 될 관계였습니다. 시작부터 잘못된 걸 극적으로 승화하려다 보니 전개가 다소 억지스럽더군요.
네우:아이, 깐깐해라. (페이드 어깨동무를 한다.) 저 까칠이들을 어떡할까?
페이드:재밌었다고 말할 때까지 연극 계속 보여 줄까요?
네우:나쁘지 않다. 다음에는 19금 걸린 성인 연극으로 찾아줄까?
페이드:저야 감사하죠. (흥미 없다. 어깨동무에서 빠져나온다.)
네우:에이. (손 탁탁 턴다.) 둘이 이런 판타지 연극에 관심에 있는 줄은 몰랐는데, 그럼 내가 재미있는 전설 하나 얘기해 줄까?
파라 무어:선생님, 저희 식당 예약 시간이 다 돼서······.
네우:아이, 얘기하는 데 몇 분이나 걸린다구. (페이드 쪽 본다.) 흥미 있어?
빠르게 좀 부탁드릴게요.
그러니까······ 마녀의 입맞춤은 저주와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예전에 자신의 먹잇감이라는 증표를 남기는 용도로 쓰였다고 해.
로미오가 마지막에 줄리엣에게 입 맞추고, 그가 떠난 뒤에야 사랑을 깨닫고 괴로워하는 게 어쩌면 저주받은 탓이 아닐까?
······ ······뭐, 그런 이야기지!
페이드:
심리학
기준치: |
50/25/10 |
굴림: |
3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페이드는 이야기하는 내내 네우의 시선이 자신과 파라를 번갈아 응시하는 걸 느낍니다.
그 눈동자에 담긴 건······ 호의보다는 흥미에 가까워 보이네요.
렉스는 네우의 이야기가 못마땅한 눈초리고, 파라는······
워낙 사교성이 없다고 해도 선생님에게 반목할 사람이 아닌데, 어쩐지 불안하고 불편한 기색입니다.
네우:어휴, 알겠다, 알겠어. 방해꾼들은 이만 빠져줄게.
데이트 잘 하고 학교에서 보자, 둘 다.
그렇게 두 선생님은 군중 속으로 섞여 듭니다.
파라 무어:······ ······. (한숨을 삼킨다.) 우리도 갈까?
(잠깐 머뭇거리다가······ 손 내민다.)
······잡아도 돼?
왜?
파라 무어:······ ······잡고 싶어서······.
안 돼?
페이드:(잠깐 있다 내민 손 잡는다.) 가자.
적당히 분위기 좋고 넓은 양식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차지한 대다수가 연인이나 부부로 보입니다.
친절한 직원이 다가와서 예약자 성함을 묻자, 파라는 자신의 이름을 댑니다.
두 사람은 창가 쪽 근사한 자리로 안내받습니다.
파라 무어:피자 하나랑 파스타 하나면 괜찮을까?
모자라는 것보다야 낫겠지. 그렇게 하자.
파라 무어:남으면 남는 거지. 음료는 뭐 마셔?
진짜 좋아하는 거였어?
파라 무어:음. (손 들어서 웨이터 부른다.)
파라는 바질페스토 피자와 오일 파스타, 청포도 에이드 한 잔과 차가운 물을 주문합니다.
창밖으로는 노을이 지고 있고, 피아니스트의 연주 소리가 듣기 좋게 울립니다.
퍽 낭만적이네요. 왜 주변에 연인과 부부만 보이는지 대충 알겠습니다.
여기서 다 보고, 우연이네요.
오늘따라 바깥에서 아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기분이 드는데, 착각일까요?
이제 막 함께 온 상대와 식사를 마친 모양인지, 그는 당신들 앞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다가 두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마지스:아, 미안한데 먼저 나가 있을래요? 제자들을 봐서······.
마지스와 함께 온 상대는 “그럼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피해줍니다.
마지스:여기 꽤 비쌀 텐데, 둘이 데이트라도 나왔나 보네요.
페이드:(고개 까딱여 인사한다.) 예. 선생님은 애인이랑 오셨나 봐요?
마지스:(화들짝 놀란다.) 큰, 큰일날 소리를!
저번에 말했던 그 학생이에요. 왜, 프롬 파트너와 결혼했다는······.
마지스:잘 지내는 모양이에요. 신혼집 벽에 프롬 때 사진을 크게 걸어뒀다는데, 귀엽지요. (흐뭇하게 웃는다.)
두 사람도 프롬 파트너를 하기로 했던가요?
저는 늘······ 음, 두 사람을 응원하고 있으니까요. 잘 될 거예요.
여기는 제가 계산해 줄게요. 편애한다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다른 학생들에게는 비밀로 해주겠어요?
파라 무어:아, 아뇨, 선생님, 제가······.
마지스:그냥 받아둬요. 졸업 축하 선물쯤이라고 생각하고.
파라 무어:······ ······내가 사고 싶었는데······.
졸업 축하 선물은 다른 걸로 받는 걸로 할게요, 선생님.
파라 무어:······ ······. (얼굴 좀 빨개져 있다.)
마지스:(둘을 번갈아 보다가,) 어, 네, 그럼······ 네.
하긴, 무어 양 정도면 별로 부담스러운 금액도 아니겠네요, 음······.
그럼······ 네, 졸업식에서 보도록 하죠. 힘내요.
마지스는 어색한 응원 이후, 화장실에서 돌아온 자신의 옛 제자와 함께 자리를 뜹니다.
파라 무어:······ ······선생님들이 단체로 외출 나오셨나. (중얼거린다.)
(피자 한 입 먹는다.)
괜찮네. (창밖 봤다가......)
파라 무어:(피자 나이프로 자르는 중.) ······입에 맞아?
여기 분위기도 좋고......
파라 무어:(입에 넣는다.) ······다행이네. 열심히 찾았거든.
(주변이 커플 투성이인 건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페이드:다른 사람들 눈엔 지금 우리도 쟤들처럼 보이려나. (다른 손님 힐긋.) 찾는 데 며칠 걸렸어?
파라 무어:(그 말에 사레 걸려서 기참하다가 에이드 마신다.) 사흘 정도······.
페이드:(그 모습 보고 웃는다.) 적당히 다른 레스토랑 찾아 놨어도 됐을 텐데.
······ ······제일 좋은 데로 데려오고 싶어서······. (웅얼웅얼.)
(차마 후기에 있는 ‘데이트하기 좋은 곳’ ‘커플 명소’라는 멘트를 보고 골랐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페이드:잘 안 들렸는데. 뭐라고? (다 들었다.)
파라 무어:······ ······ ······ ······제, (귀 끝부터 빨개지는 중이다.)
제일 좋······
······ ······ ······.
몰라. 밥이나 먹어.
페이드:아~ 오케이. (마음대로 생각하겠단 듯 시선 음식으로 돌린다.)
파라 무어:뭐가 오케이인데?! (당황했는지 말이 좀 빨라졌다. 그리고 주변에서 들리는 ‘자기야’ ‘여보’ ‘허니달링베이비’ 소리에 애꿎은 에이드만 들이킨다.)
페이드:허니달링베이비? (중얼중얼 따라한다.)
뭐.
무슨. 뭐.
뭔. (렉 걸린 듯.)
페이드:쟤들이 하길래 따라해 봤어. (태연하게 자른 피자 입에 넣는다.)
파라 무어:(입 벌린 채 버벅거리다가 얼굴에 손 부채질한다.)
그, 그런 거 따라하지 마······.
페이드: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데...... (물 마시고.)
파라 무어:······ ······ ······하지 마······. (과부하 걸린 듯 그 말밖에 못 한다.)
(괜히 귀 뒤로 넘기고 있던 옆머리 빼내서 귀 가린다.)
페이드:(팔 뻗어서 머리카락 도로 넘긴다. 헛웃음.)
에이드 더 주문해?
파라 무어:(그대로 터지기 직전까지 빨개진 귀가 드러난다. 어쩐지 더 붉어진 것 같기도 하고.)
(의자 뒤로 밀어서 몸 떨어트린다.) 됐거든.
······ ······괜히 여기로 왔어.
파라 무어:(아예 에이드에 담은 얼음 씹어 먹는다.)
다 먹었어?
파라 무어:그런데 뭘 다른 데로 옮기재······.
파스타 맛있어?
파라 무어:그럭저럭······. (솔직히 지금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것이다.)
(입 벌린다.)
파라 무어:(집게 들고 덜어주려다가 우뚝 굳는다.)
······ ······어? (2차 렉)
파라 무어:(기계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삐걱거리면서 파스타 면 포크에 감는데 한 다섯 번은 미끄러졌다. 아마 손이 떨리고 있을 것이다.)
······진짜, 이건······.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눈 꾹 감았다가 마저 말아서 내민다.) 자.
페이드:(손 감싸잡고 조금 더 끌어와 파스타 입에 넣고서 놔 준다.)
먹을 만하네.
파라 무어:너는, 애가, 너무······. (얼굴 아직도 식지 않은 채로 슬그머니 손 내린다.)
······ ······내가 해야 할 걸 왜 네가 하고 있지······.
페이드:내가 심성이 착한 걸 다행으로 여겨라. 네 허술하고 어설픈 유혹 작전도 이렇게 도와 주고......
파라 무어:심성이 뭐가 뭐? (와중에 그냥 못 넘기는 발언 발견)
나 정도면 착하지 않나. (중얼......)
파라 무어:정신이 번쩍 드는 발언이었어. 고맙다. (파스타 마저 먹고 지나가는 웨이터에게 물 한 잔 요청한다.)
(손목 시계 보고,) 너 아직 체력 괜찮지?
파라 무어:이 근처에 야간 조명 예쁜 정원이 있대서······. (그것 또한 데이트 명소라고 이름 났지만 말하지 않는다.)
페이드:야간 조명 예쁜 정원이면 밤에 커플들 많겠네.
어떻게 이런 데만 골라서 찾았어?
파라 무어:······감사합니다. (대답 안 하고 웨이터가 가져다 준 물이나 마신다.)
페이드:모른 척하면 더 의심스러운데...... (자리에서 일어난다.)
파라 무어:이런 건 안 묻는 게 매너 아니야? (자리에서 따라서 일어나 계산대로 간다.)
페이드:매너 없는 거 이젠 슬슬 깨달을 만하지 않아?
파라 무어:방금 본인 입으로 착하고 곱고 올바르다던 사람 어디 갔죠?
페이드:착하고 곱고 올바르지만 매너는 없나 보지.
원래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
파라 무어:보통 매너가 없는 사람을 착하다고 말하진 않아. (카드 내밀어서 계산.)
아니면 나한테만 없는 거니?
페이드:나도 필요할 땐 매너 챙겨. 네 앞에선 좀...... 불필요하달까.
좋게 대해 줄 이유가 없다?......
파라 무어:아, 이미 잡은 물고기다? (흘겨보면서 카드 받는다.)
페이드:아니. 호감도 좀 떨어지라고. 못마땅해서. 왜 하필 나야?...... (궁시렁대며 레스토랑 나선다.)
파라 무어:······ ······파렴치한. (다 들리게 중얼거리면서 직원에게 인사하고 나온다.)
공원 어디야?
정원?...... 정원.
파라 무어:이해 못 한다는 점까지 양아치 같아. 저쪽. (턱짓한다.)
그러고 보니 식당에서 나온 커플들이 자연스럽게 한 곳으로 걷고 있네요.
아마 어디서 유명한 데이트 코스인가 보지······.
약간 차가운 공기를 맡으며 조금 걷다 보면 환하게 조명을 켜둔 정원에 도착합니다.
어두운 밤이라 더 분위기 있고, 곳곳에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조명이 은은하게 꽃을 비춥니다.
하트 모양으로 세워진 포토 스팟에서 사진을 찍는 커플도 많이 보이고,
꽤 넓은 편인지, 사람들이 분포되어 있어 눈에 보이는 커플은 그리 많지 않지만요.
어쨌거나 미세하게 퍼진 꽃향기와 곳곳에 만개한 꽃들이 감각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파라 무어:······ ······ ······ ······.
(우뚝······.)
파라 무어:······ ······벼, 별로······. (대답이 한 박자 늦었다.)
(삐그덕거리면서 다시 걷는다.)
페이드:(따라간다.) 파렴치한이자 무뢰배이자 양아치인 짝사랑 상대에게 팔을 붙잡히신 소감은?
페이드:저런 수식어 붙은 사람 좋아하는 너도 보통은 아니다.
파라 무어:인성 보고 좋아하는 거 아니랬잖아. 그정도까지 미치진 않았어.
만약 마지스 말대로 우리가 프롬 파트너를 해서, 결혼?까지 하게 되면. (그럴 일 없다고 덧붙인다.)
넌 거의 항상 화난 상태일 텐데 (내가 예상하기로는.) 괜찮겠어?
파라 무어:······거의 항상 화난 상태로 살아도 괜찮겠냐고?
나랑 있어서 좋을 거 없잖아.
글쎄, 그 화 감당하는 건 너일 텐데, 내가 안 괜찮을 이유가······.
······ ······아무튼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불필요한 가정이네.
페이드:그렇지. (가자며 팔 약하게 끌어당긴다.) 여기서 그냥 풍경 구경하는 거야?
파라 무어:정원 좋아한다며. (순순히 다시 이끌린다.) 정원에서 뭐 하는 거 좋아하는데?
페이드:산책하고...... 하늘 보고. 사람들 구경하고?
여긴 커플 천지라 볼 것도 없겠네.
파라 무어:그럼 그냥 산책이지. (손목 시계 흘끗 본다.)
파라 무어:······ ······ ······ ······너······
다른 애들도 이런 식으로 꼬셔?
난 꼬셔 본 적 없는데.
(팔짱 놓는다.)
페이드:싫은 거면 말고. (두 손 후드집업 주머니에 넣는다.)
호감도 떨어지길 바란다며. 그럼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냐?
페이드:사실 호감도야 어떻든 내 알 바 아니지. 우리 졸업하고 나면 헤어질 건데.
것보단 이게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파라 무어:결국 내 고백 받아 줄 생각은 없는 거야?
파라 무어:너 고백하면 대체로 받아준다던데. 한두 달은 사귈만하다고, 에반스가······.
에반스가......
누구더라?
파라 무어:······ ······ ······ ······.
네 전여친······.
······ ······ ······ ······난봉꾼. (뭐가 하나 더 추가됐다.)
......
페이드:습...... (뒷목 매만지며 벤치로 향한다.)
파라 무어:(따라는 감······.) 왜 나만 받자마자 차?
페이드:너랑 나랑 사이가 그랬는데 어떻게 한두 달을 견뎌, 내가.
누구 말대로 뒤끝이 좀 있어서.
파라 무어:(자기 업보라 할 말이 없다. 벤치에 풀썩 앉는다.)
······어떻게 해야.
어떻게 해야 네가 날 좋아해줄까······.
어렵네.
자존심 안 상해?
저 멀리 시계탑에서 9시 정각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
조명이 일순간 최소한만 남기고 전부 꺼집니다.
암묵적인 이벤트 타임인지, 주변에 걷던 커플들이 서로에게 입을 맞춥니다.
(눈 굴려서 주변 잠깐 봤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교제를 하고 싶은 거야?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나도 널 좋아하게 되는 거?
그래서 뭘 할 건데. ...... 목적이 있을 거 아냐. (지극히 사랑 안 해 본 인간의 관점이다.)
파라 무어:목적? 목적······. (허탈하게 웃는다.)
모르겠어. 나도 내가 뭘 하고 싶은 건지. 뭘 하는지······.
(벤치에서 일어난다.) 결국 네 마음이지. 사람은 수학 문제나 실험이 아니니까 내 투자 대비 산출물이 그대로 나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프롬에서 너한테 고백할 거야. 그다음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페이드:지금 안 하고 굳이? (손목 잡아 끌어당긴다.)
이틀 지난다고 뭐가 달라지진 않을 텐데.
그 사이에 뭐라도 더 해 보려고?
파라 무어:최대한 늦게 대답 들으려고. 왜, 지금 해줘?
페이드:아니. 나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 (반쯤 농조.)
원하는 게 내 마음......인 거면, 좀 적극적으로 해. 너 저번부터 그런 분위기 감돌면 계속 빼기만 하고. 아까 식당에서도 그렇고......
데이트 왜 왔는데? 이런 정원은 왜 알아봤고.
뭘 모르겠으면 주변 사람들 따라라도 해 보든가.
많이 해봤으니까 익숙하겠지만, 난. (도로 입 닫는다. 아까부터 확연히 어두워진 주변을 모르지 않는다.)
······ ······아까 네우 선생님한테 그랬던가, 그런 걸로 상처받을 애 아니라고.
틀렸어. 상처받아. (페이드의 팔 쪽 옷을 잡아내린다.)
넌 시험 문제는 그렇게 정답 잘만 맞히면서, 나만 틀리는구나······.
페이드:(내려간 겉옷 그냥 둔다.) 그건 쉬운데, 넌 어렵거든.
앉아. 그냥 손만 잡고 있어. 난 키스니 뭐니 하는 것보다 그런 것 더 좋아해. (등받이에 기댄다.)
......키스도 나쁘진 않고. (근처 커플 하나 힐긋 보고.)
파라 무어:(그 말에 도로 앉는다.) 난 네가 어려워.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 이렇게 감도 안 잡히는 문제는 없었는데. 답지가 있으면 컨닝하고 싶을 정도야.
(페이드 쪽으로 고개 돌린다.) 키스하면 좀 알 수 있을까?
어차피 넌 날 좋아하지 않는데······.
페이드:(손 가볍게 잡는다. 작은 불빛 응시한다.) 할 줄 알아? 키스도 글로 공부했나?
영상 자료······. (영화 봤다는 뜻.)
(작게 웃었다. 고개 돌려 파라 본다.) 학습한 대로 해 봐.
파라 무어:······ ······으음. (고개 약간 튼다. 이 각도가 맞나, 알쏭달쏭한 얼굴.)
(페이드 목덜미에 팔 두르고 자기 쪽으로 끌어내린다. 얼굴이 가까워지면 잠깐 머뭇거리다가, 고개 기울인 그대로 일단 가볍게 입술 부딪히고 본다. 체육 창고에서 했던 것과 비슷하게.)
페이드:(남은 손으로 뒤통수 감싼 뒤 입 조금 벌려 맞닿은 것 핥는다. 행동 하나하나 겉보기엔 다정하다. 상대도 벌릴 때까지 기다렸다 곧 뭉근히 섞기 시작한다. 숨 쉴 틈도 종종 주면서. ...... 좀 그러는가 싶더니 리드 그만둔다. 마음대로 하라는 듯.)
파라 무어:(손이 작게 떨린다. 반사적으로 허리에도 힘이 들어가 몸이 빳빳해진다. 기껏 숨 쉴 틈을 줘도 타이밍을 놓치고 몇 번 호흡을 삼키고, 잇새로 앓는 소리가 흐른다. 감은 두 눈 사이 미간이 좁아진다. 그러니까, 영화는 지극히 한정적인 프레임만 제시해서······. 각도별 교본이나 그 겹친 입술 속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 같은 건 없다.)
(결론. 페이드가 리드 그만두면 잠깐 입술 떼서 숨 쉬었다가, 기껏 다시 입 맞추지만, 사실 학습한 건 없다. 어설프게, 그러나 최선을 다해 방금 전을 흉내내는 게 전부. 누가 봐도 서투르고, 엉성한······.)
(그러나 아마 확실하게 첫키스.)
5분쯤 지나면, 다시 주변에 조명이 켜집니다.
방금 키스한 연인들은 한층 로맨틱한 분위기로 마저 산책을 즐기거나, 아직 직전의 열기를 잊지 못해 가벼운 스킨십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아무리 어둡다고 해도, 그 정도 가까이 있었으면 보이는 게 있기 마련입니다.
목까지 전부 벌개진 모습이나, 긴장한 듯 잔뜩 힘이 들어간 손,
정원 전체에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보다 크게 들리던 심장 소리.
그건 정말 당신이 의심하던 대로 ‘가짜’일까요?
페이드:(눈 깔아 내려다본다. 조금 더 놀려도 괜찮나? 혹은 이미 선을 넘었나. 확실한 것 하나, 그만두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단 생각. 어떻게든 끝을 보긴 해야겠다는 판단. 제 흥미 위한다는 명목으로 적어도 졸업식까진 옆에 있기로 했다.) 이제 들어갈래?
그러나 기숙사 앞에서, 파라는 당신에게 작은 상자를 하나 내밀며 말합니다.
파라 무어:난 오늘 외박이야. 어머니께서 부르셔서.
들어가. 졸업식 날 보자.
상자에는 안경줄 하나가 들어 있습니다. 그냥 보기에도 꽤 비싸 보이는데······.
일상용이라고는 조금 화려하고, 목적이 빤히 보이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역시나 쪽지 한 장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페이드:(흠? 안경줄 들어내고 쪽지 확인한다.)
[세 번째 힌트. 다정하고 착한 마녀는, 생각보다 소심하다.]
[그는 제물을 진심으로 안타깝게 여기지만, 적극적으로 마녀의 관습을 바꾸려 나설 정도로 대범하지 않다.]
[마지막 힌트를 위해서는 내일 새벽 4시, 교실로 올 것.]
그래요, 이 이상하고 황당한 일도 이제 마무리될 때가 됐지요.
당신이 학교를 졸업하고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걸요.
페이드:가긴 해야 할 텐데. (4시에 어떻게 일어나지. 밤 새야 하나 고민한다.)
페이드:안 울리면...... (비관적...... 일단 알람 설정한다.)
아니면 새벽 훈련 나가는 운동부 친구에게 깨워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겠군요······.
어김없이 향초의 은은한 향기가 방을 뒤덮습니다.
새벽 4시, 어제 미리 맞춰둔 알람이 시끄럽게 삑삑대면서 울립니다.
째깍거리는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옵니다.
페이드는 기숙사 건물을 몰래 빠져나와, 교실이 있는 본관으로 향하게 됩니다.
페이드:
운
기준치: |
65/32/13 |
굴림: |
31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이크! 어두운 복도를 걷다가 누군가 버린 캔 쓰레기를 밟을 뻔합니다.
심지어 주말 새벽 4시에 교실로 향하는 학생은 아무래도 수상하니까요. 들키면 이래저래 귀찮아지겠죠.
주변을 둘러보면 당신의 교실인 A반이 보입니다.
가능한 것: 1. 열쇠공이나 근력으로 자물쇠를 해결하기
페이드:
지능
기준치: |
80/40/16 |
굴림: |
97 |
판정결과: |
실패 |
페이드:
관찰력
기준치: |
50/25/10 |
굴림: |
3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복도를 두리번거리다 보면, 문 바로 옆쪽 창문 문턱에 무언가 반짝거리는 걸 발견합니다.
원래 교실 열쇠는 교무실에 반납해야 하는 거 아닌가?
누가 일부러 이곳에 갖다 둔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잘됐다면 잘된 일이네요.
페이드:게으른데? (별 생각 없이 열쇠로 문 열고 들어간다.)
그래도 어둠에 나름대로 익숙해진 눈 덕분에 어디 부딪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교실을 둘러보면, 당신이 언제나 머물던 그 공간 그대로입니다.
다만 교탁 위에 출석부가 하나 올려져 있습니다.
페이드:이건 또 왜 여깄지. (원래 그랬나? 출석부 펼친다.)
출석부에는 A반 학생들 이름과 출석 현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파라 무어는 일 년 내내 빠짐없이 올 스트레이트 출석이네요. 지독하군······.
특이한 건 당신 이름에 밑줄이 쳐져 있다는 것과,
글씨를 확인하는 순간, 다시 한 번······ 마법이 펼쳐집니다.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시야가 환해집니다.
그리고 칠판 아래 서랍이 열리며 분필이 저 혼자 튀어나와, 칠판에 무언가 적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힌트. 당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녀는 한 명이다.]
[또한, 힌트를 알려주는 마녀의 초성은 N이다.]
팔랑, 어디선가 종이 한 장이 떨어져 당신의 손 위로 안착합니다.
마지스:아뇨, 정답이에요, 페이드 군. 별달리 힌트를 준 적도 없는데 정말 저를 소환할 줄은 몰랐군요.
그래요, 이런 강단 있고, 지혜로운 아이들을 희생하게 만드는 풍습은 이제 사라져야 해요. 그게 맞겠죠.
어느 새 교탁 뒤에는 마지스가 서서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저 서 있기만 할 뿐인데, 평소 풍기던 분위기와 180도 다른 느낌이에요.
귀 밑으로 내려오는 단정한 갈색 머리카락이 짧게 흔들립니다.
마지스:그동안 궁금했던 게 많았을 거예요. 전부 설명해 줄게요.
지금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
무슨 내기를 했다고 하고.
먼저······ 출석부를 다시 펼쳐볼래요?
환해진 덕에 글씨 색상이 다시 보이는군요. ‘장학생’이라는 글씨는 붉은색으로 쓰여 있었습니다.
페이드:
SAN Roll
기준치: |
70/35/14 |
굴림: |
1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거기에는 필립이라는 이름에 밑줄이 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붉은색 글씨로 ‘장학생’이라고 적혀 있고요.
페이드가 출석부를 덮었다가 열 때마다 날짜는 바뀌어 있습니다.
그리고 5년 전, 제니라는 이름에도 밑줄. 그리고 어김없이 ‘장학생’이라는 붉은 글씨.
마지스:내 소개부터 하죠. 살아남은 마녀, 스트리가 일족 출신인 마지스라고 해요.
우리 일족은 과거, 생존을 위해 니오그타라는 신을 모시며 제물을 바치는 관습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제물 후보를 쉽게 모으기 위해 학교를 세웠고요.
그분께서는 입학생 중 마음에 드는 학생을 점찍었고, 그 아이는 졸업 이후 그분께 그대로 제물로 바쳐져요. 그들에게 졸업 장학금을 주는 건······ 가족을 위한 마지막 위로금이라고 할까.
나는 마녀이지만 인간과 가깝게 지냈고, 이런 관습이 가혹하다고 생각했죠. 그렇지만 적극적으로 나서기에는 무서워서, 언젠가 제물이 될 학생이 나를 찾아내면, 그때야말로 도와주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요.
그렇지만 정말 저를 찾아내는 학생은 당신이 처음이네요, 페이드 군.
마지스는 눈을 꼭 감고, 조금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페이드:('제니' 이름 보며 멍하니 듣는다. 실은 마녀가 실존한다는 것부터 이해 못 했다.)
그래서, 이제 제가 더 해야 할 게 있어요?
당신이 제물로 바쳐졌을 때 그 주문을 사용하면 당신은 무사할 수 있을 거예요. 제 마력도 빌려줄 테니 실패할 일은 없을 거예요.
어쩔 수 없이 마녀와 관련된 기억은 지워야겠지만······ 졸업 이후로는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절 믿어줘요.
페이드:예, 뭐. 저도 지워 줬음 하던 차라.
그렇게 말하며 마지스는 주문이 적힌 양피지를 건넵니다.
마지스:아무튼, 당신이 졸업 장학생으로 선출된 이유는 그런데······
······ ······더 궁금한 게 있나요?
마녀의 입맞춤이라는 주문은 진짜로 있는 겁니까?
마지스:아, 네. (고개를 끄덕인다.) 있어요. 보통 그분께 바칠 제물에게 증표를 새길 때 사용하죠.
페이드 군한테도, 음, 그······. (말끝을 흐린다.) ······ ······아무튼 새겨질 예정이었어요.
마지스:······ ······보통은 마녀가 하지만.
마지스:(끙, 앓는 소리 낸다.) 페이드 군은, 그러니까······ ······ ······마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새기게 될 거예요. 아마도······.
엮인 사람이 하도 많아서.
마지스:무어 양이요. (짧게 한숨을 내쉰다.) 그게 그 아이가 한 내기였거든요.
내기의 내용이 뭔...... 뭔데요?
······ ······무어 양은 정말로 우연히 마녀와 이 학교의 정체를 알게 됐어요. 그렇게 진실을 안 학생들도 제물로 바쳐야 하는 게 원칙인데, 제가 그것만큼은 말리려고 했더니······
마녀가 셋이라고 말한 걸 보면 이미 아는 모양이지만, 다른 마녀인 네우가 그와 내기하기로 했죠.
······프롬 파티에서 당신에게 제물의 증표를 새기면 그 아이는 살려주기로.
다만 무어 양은 마녀가 아니기 때문에, 마녀의 입맞춤을 하려면 다른 조건을 더 달아야했어요. 그게······. (다시 말끝 흐린다.)
마지스:······ ······ ······ ······페이드 군에게 고백해서 승낙의 대답을 듣거나, 아니면 당신이 먼저 고백해야 하는 거였죠.
그러니까 프롬 때 당신에게 고백하는 데 성공하고, 입 맞추면 무어 양은 살 수 있다는 내기였어요.
마지스:그, 어차피 페이드 군이 제물로 바쳐질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으니까요. 무어 양 입장에서는 둘 다 죽느냐, 자기라도 사느냐의 선택이었을 거예요.
그 아이도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으려고 노력한 모양이지만······.
······ ······어쨌거나, 내일 프롬에서 무어 양이 고백하고 입 맞추거든 그냥 받아주세요. 그래야 그분이 당신을 먹잇감으로 인식하고, 제물로 바쳐질 장소로 이동하니까요. 그렇게 되면 침착하게 절 기다려요. 함께 그분을 송환하면 돼요.
마지스:내기에 실패하면 그렇게 되겠지만······.
······ ······아니죠?
알았어요. 고민해 볼게요.
마지스:음, 정말 만약에 무어 양이 포기하면 페이드 군이 직접 고백과 입맞춤을 해도 증표가 새겨질 거예요. 어, 어차피 기억은 지워지니까······.
······한 번만 부탁할게요.
마지스는 끝까지 불안한 눈길로 당신을 보다가,
그 말과 함께 짧게 당신의 이마에 입 맞춥니다.
누군가 당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 눈을 뜹니다.
렉스:페이드 군, 단상 위로 올라오세요.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장학생 페이드 학생은 단상 위로 올라와주세요.
당신은 분명 어제 새벽, 교실에서 마녀를 만나 대화하고 있었는데.
기억도 하지 못하는 사이 강당으로 모여 자연스레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에요.
(단상 위로 올라간다.)
연이은 재촉에 결국 단상으로 올라가면, 인자한 얼굴을 한 교장 선생님이 당신에게 장학 증서를 내밉니다.
페이드:
관찰력
기준치: |
50/25/10 |
굴림: |
57 |
판정결과: |
실패 |
졸업을 맞아 들뜬 학생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입니다.
멀리 있어서인지, 그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S 클래스에 동생이 있다는 그 유명 팝 가수가 직접 행차한 축하 공연,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일들이 휙휙 지나갑니다.
마지막으로 다 같이 교가를 부르고 나면 졸업식은 마무리됩니다.
아마 밤에 있을 졸업 파티 때문에라도 일찍 끝낸 것 같네요.
졸업 파티가 열리는 파티장은 학교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분명 엄격한 학칙으로 이름 난 곳에서, 굳이 프롬만을 위한 건물을 따로 지어놨다는 게······
진실을 아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꺼림칙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그 건물 전체가 제물을 바치기 위한 제단 같잖아요.
학생들이 강당에서 와글와글 빠져나가고, 프롬을 위해 준비하러 가는 시간,
할 말 있어?
파라 무어:프롬, 9시에 시작이니까······
그 전에 파티장 앞에서 만나서 같이 들어가자고.
파라 무어:(더 할 말 없는지 눈동자 굴리다가,)
그럼······ 이따 봐.
먼저 빠져나가는 당신 뒤로 시선이 따라붙습니다.
페이드는 강당을 나옵니다. 지금은 두 시 정도.
꾸밀 게 많은 친구들은 지금부터 부지런히 움직여도 시간이 모자라다고 하지만······
페이드:(아무래도. 기숙사에서 휴식이나 취할까......)
기숙사에서 잠이나 자다가 가도 될 것 같습니다.
준비하는 데 뭐 그렇게 오래 걸린다고······.
졸업 직전이니까 추억에 잠기며 교정을 산책해도 되겠지요······.
(기숙사로 향한다.)
8시 40분쯤. 당신은 프롬 건물로 나왔습니다.
건물 입구에는 사람들이 짝을 지어 줄을 서고 있고,
그 주변으로 통제하는 학교 경비원과, 그 뒤에서 고개를 빼고 있는 기자들도 보이네요.
고작 학교 졸업 파티에 뭐 이렇게 관심이 쏠리나 싶지만,
스트리가의 명성과 S 클래스 학생들을 생각하면 이상할 일도 아닙니다.
그 건물 앞에서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인영이 보입니다.
그는 건물 입구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파라 무어:(내민 손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위에 제 손 얹는다.)
오늘은 매너가 좀 있네.
(건물 내부로 들어간다.)
건물 입구에서 기자들은 열심히 셔터를 누릅니다.
파라는 그런 시선과 다소 무례한 촬영마저도 익숙한 얼굴로 경비원에게 초대장을 제시합니다.
파티장 안에는 초대장을 받은 졸업생과 교직원만 출입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구석에는 테이블이 있고, 윤기 나는 핑거 푸드가 화려하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2층에는 홀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난간과 함께,
친구들, 혹은 연인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휴식 방이 따로 있죠.
프롬 건물 2층 방은 함부로 문을 열면 안 된다고, 낄낄거리면서 친구들끼리 많이 이야기하는 주제입니다.
그저 학교 파티라기에는 수준 높아 보이는 장식품과 조각상들.
소문대로 정말 화려하기는 합니다. 아마 이런 상황이 아니었으면 페이드도 꽤 즐겼을지도 몰라요.
어느 새 파티장 분위기는 바뀌어 잔잔한 왈츠가 흐릅니다.
파트너들은 서로 손을, 허리를, 어깨를 잡습니다.
······춤 출 줄 알아?
파라 무어:못 할 수도 있지. 솔직하게 말해도 돼.
파라 무어:(페이드를 마주보고 선다.) 배웠어?
페이드:익혔지. (파라 한 손 잡고, 다른 손으로 허리 감싼다.)
파라 무어:연습한 적 있어? (페이드 어깨에 손을 올려놓는다.)
페이드: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이랑 어울렸던 적이 있어서. (스텝 밟기 시작한다.)
파라 무어:(구두 앞굽으로 살짝 발을 누른다.) 방금 건 매너 없었어.
페이드:......어쩌라고. (아랑곳 않는다.)
댄스홀은 빙글빙글 도는 연인, 혹은 친구들로 가득합니다.
연인도, 친구도, 그 무엇으로도 관계를 정의할 수 없습니다.
전교 1등과 전교 2등. 스트리가의 수석과 차석. 도서관 지박령들.
주변에서 둘을 보고 수군거립니다. 듣지 않아도 무슨 내용인지는 대충 알 것 같군요.
분명 파라의 귀에도 들렸을 텐데, 그는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오직 당신의 스텝에 맞추는 데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의 추억이니, 친구니 하는 것보다 오직 성취와 명예에만 집착하는,
어울리는 사람이라고는 유망하거나 영향력 있는 이들의 관계자뿐인,
삭막하고, 재미없고, 틀에 갇힌 삶을 영위하는 사람.
그리고 마녀의 제물이 된 이들은 전부 잊힌 걸 알고도 당신을 기억하려고 했다는,
그날 밤, 정원에서 당신을 좋아한다고 말하던 여자애.
드디어 그의 행동 목적과 동기를 알게 되었는데,
곡이 끝나고 나면, 어느새 다시 경쾌한 멜로디의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잘 모르는 이들도 후렴구는 적당히 따라 부를 수 있는 유명한 팝송입니다.
그러나 파라는 떼창을 하는 학생들이 퍽 시끄러운지,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가 말합니다.
페이드:우연이네. 나도 있는데. (손 잡고 올라간다.)
시끌벅적한 웃음소리, 노랫소리, 번쩍거리는 조명.
그런 건 하나도 보이지 않는 듯, 파라는 그저 당신에게 시선을 둡니다.
2층 복도를 쭉 걸어가면 그 끝에 커다란
액자
가 보이고, 그 옆에
문
이 하나 있습니다.
온통 새까만 색으로 칠해진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마녀인 스트리가 일족을 상징하는 문양이겠죠. 혹은 그 신이니 뭐니 하는 놈을 상징하거나요.
대체적으로 보라색 인테리어에, 커다란 창이나 간식이 올려진 테이블, 반원형 소파가 보입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면 오후 열 시 가량입니다.
파라는 프롬에서 당신에게 고백한다고 했으니, 이제 두 시간쯤 남았나요.
그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소파에 걸어가 앉습니다.
파라, 날 좋아해?
파라 무어:(빤히 바라본다. 몇 번 입을 달싹인다.)
나는.
나는······.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 속에서, 마침내 침묵을 깨고 그가 다시 입을 엽니다.
파라 무어:······ ······아니. 난 네가 싫어.
네가 재수없어서 싫고, 노력도 안 하는 주제에 보란 듯이 성적만 잘 받는 게 싫어.
도서관에서 쓸데없는 책이나 읽는 주제에 사람 약 올리고 귀찮게 구는 것도 싫고,
끼리끼리 몰려다니면서 시끄럽게 구는 것도 싫어.
매사에 진지하지 못한 네 태도가 싫어.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네가 진짜 싫어.
파라 무어:몇 번이고 네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바랐을 정도로, 난 네가 끔찍하게 싫어······. (시선을 떨군다.)
난 널 사랑하는데.
(허리 숙이고, 파라 턱 잡아올려 입 맞춘다. 그 이상 나아가지 않다 금방 떨어졌다.)
파라 무어:(입술 닿기 직전에 다급하게 손바닥으로 입 막는다. 경악하는 낯으로.)
미쳤니?
더한 것도 했으면서?
파라 무어:거짓말이었어. 널 좋아한다느니 했던 거. 전부.
졸업도 얼마 안 남은 김에 너 성가시게 해보려고 좀 집적거려 본 거야. 됐어?
네가 맞춰 줄 이유 없어. 비켜, 페이드.
페이드:입맞춤 한 번만 해 주면 깔끔히 포기할게.
내가 해야겠으니까.
너야말로 이제 와서.
좋아하는 여자가 나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는 꼴은 재밌으니까.
파라 무어:하······. (얼굴 일그러트린다.)
그런 식으로 사람 놀리면 재밌어?
이 지경이 된 것도 전부 다 네 탓 아니야? 네가 처음부터 그런 짓 안 했으면......
그러니까 책임 지는 차원에서. 한 번만.
파라 무어:그래서 책임지겠다고. (입술 악문다.) 책임지겠다고 이러는 거잖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페이드:응. 아무것도 모르니까. (파라 한쪽 어깨 등받이 쪽으로 지긋이 누른다.)
파라 무어:모르면 비켜. 짜증나게 하지 말고. (어느새 이전과 같은 말투로 돌아와 있었다.)
노력이 물거품이 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냥 눈 딱 감고 해.
그럼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파라 무어:······ ······무슨. (낯빛이 새하얗게 질린다.)
(안경 너머로 눈동자가 흔들린 것 같기도 하다. 목소리도 같이 떨린다.)
너, 알고······ 있었어?
파라 무어:(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본다. 거짓말한 걸 들킨 어린 아이라도 되듯이.)
······ ······뭐든······.
네 목적도 알고는 있는데.
여전히 널 모르겠네. 아무튼.
해결할 방법도 알고 있으니까, 믿어 봐.
혹시 실패해서 사라져버려도 그게 네가 원하던 바 아닌가?
그래, 네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네가 밉고 싫었으니까.
그렇지만 정말 네가 죽기를 바랐던 건 아냐······.
······ ······놔줘. 나 갈래.
같이 죽을 생각이야?
둘보단 하나가 낫잖아.
그런 생각으로 요 며칠 그랬던 거 아니었어?
이젠 어차피 하나야.
네우 선생님이 어제 그러셨거든. 내가 실패하면 넌 봐주겠다고.
······ ······저번에 물어봤지.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나갈 수 있는 방에 갇히면 어떡할 거냐고.
난 내가 죽었을 거야. 널 좋아해서가 아니라, 사람 죽이고도 편하게 발 뻗고 살 수 있는 성정이 못 돼서.
그게 다야. 됐어?
난 그, 뭐냐. 마지스 도와서 신인지 뭔지를 좀 물리쳐야 되거든?
네가 왜 마지스 선생님을 돕는데?
화는 안 내?
화가 안 나는데.
파라 무어:너 진짜 내 말 하나도 안 믿었었구나, 애초에······.
너한텐 화도 안 나. 네가 뭘 하든......
그러니까, 이거 딱 한 번만 하고 헤어져서 남남으로 살자고.
전부 잊고.
파라 무어:(입을 막고 있던 손을 스륵 내린다.)
뭘 모르는 상태에서 내가 오늘 고백했으면 뭐라고 대답할 거였어?
파라 무어:다른 여자애들은 대충 다 받아줬다면서 왜 나는?
페이드:걔들은 이런 걸로 희망고문 안 당하는 애들이고.
꽤 가벼운 애들이고. 속 다 보여서. 그런데 넌 아니잖아.
내가 네 속내 알았으면 진작 내쳤지.
하여튼......
마지막이겠네. (다시 몸 숙여 얼굴 가까이 한다.) 네가 할래?
파라 무어:(숨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페이드를 올려다 본다.)
결국 내가 진심이었어도 가망은 없었다는 소리구나.
······ ······.
쓸데없는 가정은 하지 마.
좋아해.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끌어내려서 짧게 입 맞춘다.)
자신이 마녀인 걸 숨기고, 사랑의 묘약으로 로미오를 속였던 줄리엣.
그를 사랑하지 않는데도 거짓으로 사랑을 속삭였던 로미오.
시야가 점차 어두워지고, 입술에 불이라도 붙은 듯 뜨겁게 느껴집니다.
새카만 어둠 속, 이제는 익숙한 악취가 당신을 덮칩니다.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당신의 발을 붙잡고, 점차 온몸을 감싸려고 움직입니다.
페이드:
SAN Roll
기준치: |
70/35/14 |
굴림: |
5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대로 잡아먹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지만······
당신에게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끔찍한 신을 돌려보내는 주문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니오그타의 정신력은 140으로, 기본 마력 5점을 필요로 합니다.
기본 확률은 5%로, 이후 마력 1점마다 확률을 5%씩 올릴 수 있습니다.
페이드의 마력 14점을 투자한 현재 확률은 75%.
거기에 마지스가 자신의 마력 5점을 더 추가합니다.
이로써 완벽하게 신을 돌려보낼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거예요.
페이드:
신 송환 Roll
기준치: |
100/50/20 |
굴림: |
9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윽고 문이 열리고, 끔찍한 비명이 들려옵니다.
마지스는 줄곧 긴장한, 그러나 어딘가 후련한 얼굴로 끝까지 그 자리를 노려봅니다.
제대로 앞이 보이지는 않지만 어느덧 당신의 몸을 감싸던 무언가는 사라지고,
같잖은 모범생의 유혹을 받아주지 않아도 되고,
이상 현상에 시달리며 악몽을 꾸지 않아도 됩니다.
졸업 진심으로 축하해요.
마지스의 속삭임을 끝으로, 다시 시야는 뒤집힙니다.
아뇨, 그래도 공식적인 학교 행사이니 술이 준비되진 않았을 텐데.
잭이 몰래 알코올을 들여올 거라고 허풍을 떨던데, 설마 진짜였나.
당신은 졸업식을 마친 후, 파라와 프롬에 왔죠.
뭔가 실랑이로 벌였던 것 같기도 하고······
파라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애초에 당신은 왜 그와 졸업 파티를 오게 되었나요?
드문드문 빈 기억에 혼란스러운 것도 잠시, 주변을 둘러보면 여전히 그 방입니다.
옆에는 파라 역시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습니다.
규칙적으로 흉부가 오르내리는 걸 보니 단순히 잠든 모양입니다.
페이드:(너무 충격받아 잠깐 혼절했나? 파라 본다. ......)
근데 나만 보면 노려보기 바쁜 이 모범생이 왜 나한테 고백했더라?
파라는 당신의 혼란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잠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몇 번 시선이 흔들리더니, 당신을 바라보고, 예의 익숙할 그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자기 머리를 짚습니다.
내가 왜······.
뭐, 어쨌거나 무사히 파티는 즐긴 모양이니까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두 사람에게 달려 있겠죠.
니오그타는 송환되었습니다. 졸업한 이후의 일상을 즐겨 보아요.
마녀, 제물, 마법과 관련된 모든 기억은 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