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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만 시나리오/Fade

여름을 말려 심장에 꽂는 법 / KPC: 페이드, PC: 파라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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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COC 7th fanmade scenario
 

 
눈을 뜨자 보이던 맑게 갠 하늘.그곳은 페이드가 사라진 여름이었습니다.아니, 당신만이 페이드를 기억하는 세계.
 
KPC Fade PC Farrah Moore
 
Written by Team.Ganada
 
2024.02.19.
 
─────── ✦ ───────
 
나만이 널 오롯이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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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입 ───────
 
새벽을 적시던 비는 어느새 폭우가 되어 내리는 중입니다.
 
개학을 하루 앞둔 지금, 파라는 집에 홀로 남아있습니다.
 
말발굽 소리처럼 휘몰아치는 비,
 
색을 잃은 잿빛 하늘,
 
습한 여름.
 
기승을 부리는 여름은 꺾일 기미 하나 보이지 않으매 비는 더위를 감추지 못합니다.
 
특별한 것 없는 일상입니다.
 
파라가 괜히 강수량에 대해 떠드는 뉴스에 집중하다 보면,
 
 ✦ 듣기 판정 ✦ 
 
파라 무어: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63
판정결과: 실패
 
쏴아아-
 
매서운 빗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 비는 언제 즈음 그칠까요?
 
다시 한 번 귀 기울여 봅시다.
 
 ✦ 듣기 판정 ✦ 
 
파라 무어: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쏴아아-...
 
끊이지 않는 빗소리, 그 사이 이질적인 소리도 함께 들립니다.
 
➤:“8월 하순을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의 강수량이….”
 
빗소리보다 조금 더 거칠고 무게 있는 소리가 들립니다.
 
...
 
더 이상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습니다.
 
앵커가 무어라 하든 그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지니까요.
 
➤:“새벽부터 시작된 비는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시간당 100mm로 인천 전역을 시작해 전국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졌으며,”
 
-똑
 
“기습폭우로 인한 피해 역시 속출하는 중입니다.”
 
똑똑.
 
확실하게,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택배를 시켰던가요?
 
누가 집에 방문하기로 했던가요?
 
기억을 더듬어도 방문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파라가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팟-
 
몇 가지 소리와 함께 가전제품들의 불이 꺼집니다.
 
...정전입니다.
 
우중충한 하늘 덕에 잿빛이 슬금 들어온 집안은 낮임에도 어둑하네요.
 
인터폰마저,
 
지직, 뚝.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습니다.
 
어째 예감이 좋지 않네요.
 
문을 열어줄 건가요?
 
아님, 조용히 그 누군가를 무시할 건가요?
 
파라 무어:······누구세요? (주춤거리며 현관문 쪽으로 향한다.)
 
“…….”
 
“……파라?”
 
다행히도 이름 모를 방문객은 아닌 모양입니다.
 
꽤 익숙한 목소리……
 
그래요, 페이드인 것 같은데.
 
비가 힘껏 쏟아지는 창밖을 보면 어떤 이유에서 연락도 없이 찾아왔을지 쉬이 예상되지 않습니다.
 
파라 무어:페이드? (예상 밖의 목소리에 눈을 끔뻑거리다가, 창밖을 한 번, 그리고 현관문을 한 번 본다. 이내 문을 연다.)
갑자기 무슨 왜······ 연락도 안 하고.
 
여전히 불 하나 켜지지 않은 실내는 어둑하기만 합니다.
 
문이 열리고, 문 앞에 선 상대를 확인하면……
 
뚝, 뚝.
 
흥건히 젖은 바닥이 보입니다.
 
그리고, 물벼락을 맞은 듯 푹 젖은 옷을 입은 페이드도 함께.
 
빗물이 방울방울 매달린 머리카락, 하염없이 물이 떨어지는 옷, 또…….
 
페이드:……파라.
 
당신을 부르는, 파리한 인상의 페이드.
 
 ✦ 심리학 판정 ✦ 
 
파라 무어:
심리학
기준치: 50/25/10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당신의 착각일까요?
 
여유를 잃은 그 표정은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페이드:괜찮은 거야?
 
파라 무어:너 꼴이 왜 이래? (대답 대신 당황하며 내뱉는다.)
우산 없어? 저 비를 그대로 다 맞은 거야?
 
페이드:아니, 그건 됐고......
......아니야.
 
……무엇이?
 
하여튼, 페이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고칩니다.
 
아까처럼 목소리를 떨지 않고, 그저 태연한 낯으로.
 
페이드:우산이 없어서 왔어.
 
우선은 젖은 페이드를 집안으로 들이는 게 좋겠죠.
 
파라 무어:우산이 없는데 왜 여기까지, (까지 말하고 여전히 떨어지는 빗물을 본다. 막무가내로 팔을 당겨서 집 안으로 들인다. 어머니가 안 계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일단 들어와서 얘기해.
 
페이드:(당겨진다...... 지나가는 곳마다 물자국 남긴다.)
어떻게 지냈어?
 
파라 무어:(욕실에서 수건 들고 온다.) 어떻게 지냈냐니?
늘 똑같지······. 야, 진짜 뭔데? (퉁명스럽게 수건 던진다.)
 
페이드:뭐가. (잘 받아서 제 머리 물기 턴다.) 오지 말 걸 그랬나?
 
파라 무어:우리가 이렇게 연락도 없이 불쑥 집에 찾아올 사이였던가······. (팔짱 끼고 본다.) 집에 나만 있어서 망정이지.
 
페이드:......아, 영 모르겠네.
밥은 먹었고?
 
파라 무어:말 돌려? (한쪽 눈썹이 구겨진다.)
 
페이드:알면 좀 넘어가 주지?
 
파라 무어:(탐탁찮은 표정으로 보다가.) 안 먹었어.
 
페이드:좀 먹고 살아라. 이럴 때라도...... (이미 다 젖은 수건 들고 서 있다.)
 
다시 전원이 들어온 네모난 상자 속 뉴스는 여전히 이번 기습폭우를 다루고 있으며, 화장실에서는 뽀송한 수건을…… 이미 가져왔지만, 하나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 부엌 찬장에 고이 모셔둔 티백으로 차가운 페이드의 몸을 녹일 수 있겠네요.
 
페이드는 그저 우뚝 서 있습니다.
 
파라 무어:체력과 건강에 해가 되지 않을 선에서 알아서 잘 먹고 살거든. (까칠하게 대꾸하고는 화장실로 들어간다. 수건 하나 더 가져와야겠군.)
 
◈ 화장실
습기 가득한 눅눅한 하루라 해도 수건은 뽀송한 게 제구실을 할 수 있겠습니다.
 
파라 무어:(뽀송한 수건 하나 더 꺼냄)
 
수건을 꺼내던 중,
 ✦ 관찰 판정 ✦ 
 
파라 무어:
관찰력
기준치: 55/27/11
굴림: 54
판정결과: 보통 성공
 
가지런히 놓인 칫솔이 눈에 밟힙니다.
 
……원래 저런 색이었던가요?
 
파라 무어:(고개 갸웃······ 새 걸로 바꿔 놓으셨나? 아무튼 수건 들고 나가서 페이드에게 건네준다.)
뭐······ 마실 거라도 줘?
 
아아, 화장실을 나서려던 그 순간!
 
 ✦ 행운 판정 ✦ 
 
파라 무어:
기준치: 55/27/11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발이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습니다.
 
하마터면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할 뻔했어요.
 
페이드:(수건 또 받는다.) 주면 좋고.
 
파라 무어:물기 제대로 닦아. 바닥에 물 떨어지면 가만 안 둔다. (으름장 놓고 부엌으로 간다.)
 
페이드:이미 많이 떨어졌는데.
 
◈ 부엌
 
찬장에는 티백이 여러 개 놓여 있었습니다.
 
어디서 받았던 건지, 직접 산 건지 기억은 흐릿하지만요.
 
파라 무어:(컵에 따뜻한 물 받아놓고서 찬장 뒤적여서 적당한 티백 하나 찾는다.)
 
덜컹, 내부는 텅 비어있습니다.
 
분명 많이 남아있었는데, 함께 사는 가족이 모두 먹었을까요?
 
 ✦ 행운 판정 ✦ 
 
파라 무어:
기준치: 55/27/11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 구석에서 코코아 가루를 찾았습니다.
 
딱 하나 남아 있었네요.
 
파라 무어:(쟤가 코코아를 마시던가······ 그래도 맹물보다는 나을 테니 코코아 타서 가져다 준다.)
 
페이드:(달콤한 것 잘 먹으니. 받아 마신다.) 마시멜로는 안 띄워 줘?
 
파라 무어:불청객이 바라는 게 많아. (뒤늦게 쫄딱 젖은 페이드 봤다가······ ······ ······왠지 민망해져서 뉴스 듣는 척 한다.)
 
◈ 뉴스
 
“기습폭우에 의한 피해가……”
 
주간 날씨를 알려주는 화면은 온통 먹구름으로 가득합니다.
 
비, 비, 그리고 비.
 
여름철 장마는 흔한 일이라고 하지만, 전국을- 그리고 한 주가 비로 가득한 건 이번 여름 중 처음입니다.
 
“유명 스포츠 선수 A씨의 은퇴 사실에 관한 루머들이……”
 
 ✦ 지능 판정 ✦ 
 
파라 무어: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3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처음 듣는 내용인 것 같은데, 다음으로 다루는 뉴스 내용은 낯설기만 하네요.
 
파라 무어:(은퇴? 고개 갸웃한다. 인터넷과 단절돼서 사는 수험생이니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약간! 용기를 얻어서 다시 페이드 쪽으로 시선 돌린다.)
 
◈ 페이드
 
세찬 비를 맞은 탓인지 페이드의 낯은 평소보다 더 창백합니다.
 
그 외 평소와 다른 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평소와 다른 점이…….
 
 ✦ 관찰력 판정 ✦ 
 
파라 무어:
관찰력
기준치: 55/27/11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찰나, 페이드의 손등 위로 여린 푸른빛이 반짝거립니다.
 
파라 무어:······? (손등 빤히.)
 
다시 보아도 페이드의 손등은 멀쩡하기만 합니다.
 
페이드:......? (빤히.)
 
파라 무어:······ ······. (잘못 봤나? 눈 비빔······.)
 
눈을 비비고 보아도 그저 멀쩡합니다.
 
페이드:눈에 뭐 들어갔어?
 
파라 무어:······아니. (잘못 봤나 보다.) 그래서 진짜 우리집에는 왜 왔는데?
 
페이드:말했잖아. 우산이 없어서 들렀다고.
......
 
쏴아아, 비는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말발굽 소리처럼 휘몰아치는 비,
 
색을 잃은 잿빛 하늘,
 
습한 여름.
 
어느 정도 물기가 마른 페이드는 간간이 멍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질적인 하루입니다.
 
폭우와 정전,
 
빗방울과 페이드,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운 여름.
 
내일은 개학식이니 페이드도 일찍 집에 돌아가야겠죠.
 
폭우에 페이드의 가족이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페이드:(소파에 털썩 앉는다.)
 
파라 무어:(황당하게 본다.) 우산 빌려 줄게.
 
페이드:너도 여기 앉아 봐.
우산은 좀 이따 줘.
 
파라 무어:너 집에 안 가?
 
페이드:가야지. 집에 돌아가야지.
아, 빨리 와.
 
파라 무어:왜, 왜······. (주춤.)
그럼 집에나 가. 부모님 걱정하시겠다.
 
페이드:(어쩔 수 없지. 중얼이며 몸 일으켰다.)
파라.
 
당신의 이름이 허공을 둥둥 부유합니다.
 
나지막한 소리. 사뭇 진지한 표정의 그가 보입니다.
 
파라 무어:······왜?
 
페이드의 손등에 새겨졌던 빛이, 헛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당신만을 오롯이 담은 그 눈에 푸른 빛이 스칩니다.
 
마치, 별자리처럼……
 
……지금 파라는 무얼 보고 있는 거죠?
 
페이드:(손 끌어와 잡는다.) 이번엔 잘 될까.
……기억할 수 있지?
 
 ✦ 듣기 판정 ✦ 
 
파라 무어: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지금 이 상황, 이 공간이 너무나도 고요합니다.
 
비가 그쳤던가요?
 
창밖을 바라보면 비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니, 비는 허공에 방울방울 ‘멈추어’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둥근 물방울의 형태를 가지고서.
 
이해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상황입니다.
 
 ✦ 이성 판정 ✦ 
 
파라 무어: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6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음.
 
페이드:학교에서 만나. 기다릴게.
 
무어라 말하든 페이드는 파라의 손을 강하게 마주 잡고 눈을 감습니다.
 
파라 무어:뭘······ 기억해야 되는데?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낯.)
 
페이드:기억해야 하는 것.
 
피부 위로 새겨진 무늬는 페이드를 집어삼킬 듯 반짝이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숨을 쉬기도 어렵습니다.
 
별자리가 촘촘히 수 놓인 페이드에게서,
 
우리에게서 빛이 쏟아집니다.
 
중력이 배로 느껴지는 기분에 속이 울렁거려요.
 
허공에 방울방울 매달린 비는 여전히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페이드가 입 모양으로 어떤 말을 전합니다.
 
하나,
 
둘,
 
셋.
 
...
 
깜빡.
 
─────── 여름을 ───────
 
...
 
...
 
...
 
“이번 주 내내 맑은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열대야 역시 지속적으로……”
창밖은 맑으매 푸른 하늘은 눈이 부십니다.
 
무더운 여름은 건조한 탓에 비는 내리지 않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립니다.
 
파라, 당신의 손을 잡고 있던 상대는 어디로 갔나요?
 
집 안에 남은 건 맑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살, 그리고 당신뿐입니다.
 
 ✦ 이성 판정 ✦ 
 
파라 무어: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1
 
파라 무어:······페이드? (주위를 돌아본다.)
 
마치 영화 속 장면이 빠르게 전환되듯 페이드아웃 없이 한순간에 뒤바뀐 세상.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주위를 돌아봐도 페이드는 보이지 않습니다.
 
주변을 더 살펴볼 수도, 페이드에게 연락을 할 수도, 혹은 다른 행동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파라 무어:이게 뭐야. 뭔데? (창쪽으로 뛰어가서 창을 내다본다. 정말 비가 그쳤나?)
 
푸른 하늘입니다.
 
작은 구름 몇 점이 동동 떠 있고, 햇살은 눈이 부시게 쏟아져 내립니다.
 
먹구름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파라 무어:분명 비가······ 비가 내렸는데. (중얼거린다. 부엌으로 가서 찬장을 다시 열어본다.)
 
찬장엔 코코아 가루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파라 무어:(이거 내가 페이드에게 타주지 않았나? 화장실로 가서 수건 갯수를 확인해 본다.)
 
페이드에게 꺼내 준 수건까지 차곡차곡 잘 쌓여 있습니다.
 
파라 무어:······ ······왜? (칫솔도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인가?)
 
그것까지도 그대로.
 
파라 무어:(황당해져서······ 페이드에게 전화를 걸어보기로 한다.)
 
신호음이 한참 이어지더니,
 
전화를 받을 수 없어……
 
기계음만이 돌아옵니다.
 
파라 무어:(세 번쯤 다시 건다.)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파라 무어:······ ······.
 
파라는 여기저기 쏘다니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페이드에게서 뚝뚝 떨어지던 물마저 사라졌습니다.
 
소파까지도 모두 마른 상태입니다.
 
파라 무어:왜······.
(왜, 마치 증발하기라도 한 것처럼.)
 
뉴스에서는 기상캐스터가 주간 날씨를 알려주는 중입니다.
 
맑음, 맑음, 그리고…… 맑음.
 
장마철인데도 이렇게 맑은 날이 지속되는 건 드문 일이라고 합니다.
 
분명 전부 비였는데.
 
파라 무어:(일주일 내내 비가 온다고 했는데. 습한 여름이었는데······.)
(뭐라도 이상한 게 없을까? 집안 곳곳 돌아다녀본다.)
 
이상한 것은 없습니다.
 
날짜와 시간도 그대로.
 
창밖은 맑음.
 
평범하고 익숙한 당신의 집일 뿐입니다.
 
바깥은 그늘마저 푸르러 바다를 베어 옮겨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매미 소리,
 
물감을 풀어둔 푸른 하늘,
 
건조한 여름.
 
파라가 꿈이라도 꾼 걸까요?
 
쏟아지는 햇살에 이처럼 눈이 따가운데도?
 
폭우도 페이드도, 그리고 반짝이던 무늬마저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게 틀림없잖아요?
 
페이드는 연락을 받지도 않으니 내일 학교에서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분명 학교에서 만나자고 말했었죠.
 
대체 오늘 겪은 일이 무엇인지.
 
멍한 정신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
 
...
 
...
 
─────── 말리어 ───────
 
개학. 멀게만 느껴지던 단어가 오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펄럭이는 교복들이 흰나비처럼 이곳저곳을 쏘아 다니네요.
 
어제 일어났던 일들이 생생한 꿈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일을 빼면 이 여름은 평범한 하루와 다를 것 하나 없어, 배로 혼란스러운 기분입니다.
 
정말 꿈이었을까요?
 
걸음은 느릿해집니다.
 
보통은 횡단보도를 건너, 가로등 두어 개를 지나면 페이드가 보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시아:야, 그거 들었어? 오늘 정상수업이래.
 
파라의 어깨에 자연스레 팔을 걸치는 건 다름 아닌 같은 반 친구, 시아입니다.
 
페이드는 보이지 않습니다.
 
시아:오늘 날씨 진짜 좋네. 보통 이맘때 즈음이면 비도 오고 그랬던 것 같은데.
……아, 미안. 사람을 착각했네.
 
파라 무어:······아, 응. (어색하게 어깨 동무에서 몸을 뺀다.)
비······ ······오지 않았나······. (아직 얼떨떨하게 중얼거린다.)
 
시아:그게 무슨 소리야? 요즘 계속 맑은 날씨만 이어지고 있잖아.
 
파라 무어:······. (그럼 내가 본 건 뭐지? 꿈? 자각몽?)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너 혹시 페이드하고 연락 돼?
 
시아:……그게 누구야?
몰라,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인걸. 혹시 다른 학년이나 다른 반이야?
 
파라 무어:······ ······어? (자기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낸다.)
페이드 말이야. 우리 반. (재차 묻는다.)
 
시아:그러게 모른다니깐.
진짜 처음 들어. 내가 널 상대로 장난 칠 이유가 없잖아.
 
파라 무어:무슨······. 자, 잠깐만. (다급하게 갤러리를 뒤진다. 페이드의 사진이라도 없을까?)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일부가 나온 사진이 있었다 해도, 합성이라도 한 듯 깔끔하고 자연스럽게 잘려나가 있습니다.
 
파라 무어:(반 단체 사진을 찾았다가 황망해진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을 부정하듯 마지막으로 묻는다.) 우리······ 우리 반 총원 몇 명이지?
 
시아:스물일곱 명. (그러니까, 페이드는 카운트하지 않은 수.)
 
파라 무어:(정말 없다. 페이드가 사라졌다.)
 
시아:아, 맞다. 동아리 보고서!
 
걸음을 멈춘 시아는 뒤를 돌더니 왔던 길 위를 냅다 달리기 시작합니다.
 
무언갈 두고 온 모양이네요.
 
덩그러니 남겨진 파라의 뺨 위로 푸른 나뭇잎 하나가 떨어집니다.
 
파라 무어:······. (나뭇잎 뗀다.)
 
중력을 따라 떨어진 잎은 한가득 여름을 담아 푸르기만 합니다. 그리고…….
 
 ✦ 지능 판정 ✦ 
 
파라 무어: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6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까 그 친구는 페이드와 친분이 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말 모르는 눈치였죠.
 
의문도 잠시, 교문 앞 횡단보도입니다.
 
신호를 기다리며 건너기 전, 당신에게 전화 한 통이 도착하네요.
 
휴대폰이 가볍게 진동합니다.
 
저장되지 않은, 처음 보는 번호입니다.
 
파라 무어:······? (우선 받는다.)
여보세요?
 
휴대폰 너머로 옅은 숨소리가 들립니다.
 
한참을 얘기하지 않은 채, 그저 숨소리만이.
 
잘못 건 전화일까요?
 
파라 무어:(얼굴 찌푸린다.) 여보세요?
 
페이드:……파라?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전화를 건 이는 페이드입니다.
 
불안하고, 여유가 사라진 그 목소리는 볼품없게 느껴져요.
 
동시에 그가 낯설기도 합니다.
 
파라 무어:(잠깐 정적.) 야, 너······
너 지금 어디야?
 
페이드:먼저 학교에 도착했어. 알아볼 게 있어서 도서관에 들르려고.
 
파라 무어:전화는 왜 안 받았어! (왈칵 화를 낸다.)
 
페이드:......전화했었어?
 
파라 무어:네 번이나! (여전히 성질이다.)
 
페이드:몰라. 왜 짜증을 내.
......파라, 내 이름 기억나?
 
떠올리려 한다면,
 
 ✦ 정신력 판정 ✦ 
 
파라 무어:
정신
기준치: 65/32/13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
 
...
 
...
 
뭐였죠?
 
아, 곧 생각납니다.
 
페이드.
 
분명, 종종 부르던 이름이었는데......
 
문득, 아까 페이드를 모른 체하던 친구가 생각납니다.
 
파라 무어:(부자연스러운 침묵 끝에 말한다.) 페이드잖아.
그 이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페이드:......설마, 아직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거야?
 
보행자용 신호등 불이 초록색으로 바뀝니다.
 
횡단보도, 그 하얀 선을 따라 걸을 때 즈음 페이드가 중얼거립니다.
 
매미가 우는 소리에 묻혀버릴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페이드:……나, 사라지고 있어.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요?
 
그러나 페이드은 장난을 치는 기색이 아닙니다.
 
휴대폰 너머의 표정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습니다.
 
그리곤 전화를 뚝 끊어버리네요.
 
분명 말도 안 되는 소리일 텐데.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 정신이 멍해집니다.
 
그러나 의문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끼익-!
 
큰 소리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습니다.
 
당신의 눈앞, 가까운 거리를 두고 아슬하게 멈춘 차 옆으로 한 학생이 넘어져 있습니다.
 
부딪히진 않았지만 모두가 웅성거리며 횡단보도 쪽을 쳐다보네요.
 
 ✦ 관찰력 판정 ✦ 
 
파라 무어:
관찰력
기준치: 55/27/11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운전자와 학생은 무어라 얘기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차로 시선을 옮기면……
 
바퀴가 없습니다.
 
잘못 본 걸까요?
 
눈을 두어 번 깜빡이자 그제야 바퀴가 보입니다.
 
파라 무어:······ ······. (공부만 하다가 내가 미쳤나? 찝찝하게 자동차를 보다가 마저 학교로 걸음을 옮긴다.)
 
소란도 잠시, 지각을 피하고자 모두 다시 학교로 걸음을 옮깁니다.
 
오늘 하루의 시작이 묘하고, 또 불안하게만 느껴지네요.
 
한층 한층 계단을 오르다 보면 파라의 반이 보입니다.
 
오늘따라 파아란 창밖이 무섭게도 아름답습니다.
 
정신을 고쳐잡고 페이드를 찾으면, 당신의 교실 속 익숙한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파라 무어:······ ······. (아직 도서관에 있나?)
 
...아니, 페이드만이 없는 게 아닙니다.
 
페이드의 책상과 의자까지도 그림을 잘라 떼어놓은 듯 보이지 않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지나가는 친구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눈치이며, 교탁에 붙은 자리표에는 학생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파라 무어:(곧장 자리표를 확인한다.)
 
교탁 위에 붙여진 자리표에는 학생들의 자리 위로 이름과 학번이 적혀있습니다.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활자를 짚어 살피면….
 
없습니다.
 
애초에 없던 학생처럼 페이드의 자리도, 이름도, 학번도.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파라 무어:왜······. (다짜고짜 친구들을 붙잡는다.)
너희 페이드 어디 있는지 알아?
 
친구들은 방학 때 있던 일이나, 다른 학교보다 이른 개학에 대한 불만을 토하고 있습니다.
 
언제 도착했는지 등교 시간 때 만났던 친구도 보이네요.
 
시아:아까부터 계속 걔 얘기네. 걔가 누군데 그래?
 
➤:"처음 듣는 이름인데, 우리 반이야? 그런 애가 우리 학교에 있는 줄도 몰랐어."
 
파라 무어:모른다고······?
······ ······.
(정말 자존심 제대로 상하는 얼굴로 꾸역꾸역 입 연다.) 1학기 중간고사······ 1등했던 애 있잖아.
 
시아:그건 다은이였잖아.
 
당신을 놀리는 기색이 아닙니다.
 
정말, 진지하게 페이드의 반 친구들은 당황한 표정을 짓네요.
 
마치 벽을 두고 얘기하는 기분이라 파라는 답답하기만 합니다.
 
다들 페이드를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요?
 
 ✦ 이성 판정 ✦ 
 
파라 무어:
SAN Roll
기준치: 63/31/12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음.
 
매미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울어댑니다.
 
하나, 둘, 셋.
 
당신에게 그리 속삭이던 페이드는 어디로 간 건가요?
 
모두가 한 사람을 잊고 여름을 보내는 중입니다.
 
창밖의 푸른 하늘은 작위적으로 맑고, 나무 아래 그림자는 잠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매미의 울음소리는, 어딘가 이상합니다.
 
파라 무어:(하늘을 바라본다.)
 
구름 몇 점이 떠다니는 하늘은 지독하게도 푸릅니다.
 
 ✦ 관찰력 판정 ✦ 
 
파라 무어:
관찰력
기준치: 55/27/11
굴림: 2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무리 바람 하나 불지 않는 날씨라고 해도, 구름은 제자리에 못이 박힌 듯 움직이지 않습니다.
 
애초에 움직이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그 자리에 굳어 있습니다.
 
파라 무어:(이렇게까지? 매미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직감적으로 깨닫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매미의 돌림노래는 끝날 기미조차 느껴지지 않습니다.
 
 ✦ 듣기 판정 ✦ 
 
파라 무어: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마치 녹음본을 틀어둔 듯 그 소리는 기이하게도 완벽히 반복됩니다.
 
잠시 멈추는 건 7초에 한 번, 소리가 커지는 것은 일정하게.
 
파라 무어:(1, 2, 3······ ······7. 몇 번 세어본다. 반복해서 검증한다. 이내 확신한다. 완벽한 주기를 가지고 있다.)
(자연 현상이 이렇게 규칙적일 수 있나?)
 
띠리링-
 
힘차게 울리는 수업 종.
 
재잘거리던 아이들도 자리를 찾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파라, 당신은 당신의 기억을 믿을 수 있나요?
 
모두가 그것이 거짓이라고 속삭여도?
 
......
 
선생님께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프랑스어 수업을 시작합니다.
 
출석 역시 페이드의 이름은 건너뛰고 이어지네요.
 
누군가의 부재는 애초에 없던 것처럼 하루가 흘러갑니다.
 
➤:"예문에도 나와 있듯이 관계부사를 써야 하므로……"
"……에서, 그러므로 빈칸에 들어갈 말은."
"Où."
 
몇 아이들이 답합니다.
 
동시에 선생님께선 당신을 탐탁지 않게 쳐다보네요.
 
➤:" 파라가 오늘 영 집중을 못 하는 것 같네. 아까 말한 빈칸의 답, 한번 불러보렴."
 
모두의 시선이 당신에게 쏠립니다.
 
흔들림 없는 올곧은 시선을 보자 절로 속이 메스꺼워집니다.
 
 ✦ 관찰력 판정 ✦ 
 
파라 무어:
관찰력
기준치: 55/27/11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그때, 복도 쪽 창가를 익숙한 인영이 스쳐 지나갑니다.
 
햇살에 눈이 절로 찌푸려졌지만, 분명 페이드를 닮은 이입니다.
 
➤:"파라?"
 
선생님께선 벙긋하는 입으로 무어라 얘기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당신에게 중요한 것이었을까요?
 
페이드를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또 가득 채웁니다
 
파라 무어:(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난다.)
Où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시선은 창밖 너머 복도에.)
······ ······선생님, 저, 머리가 너무 아파서 그런데 잠깐 양호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러니? 그래. 다녀오렴."
 
파라 무어:감사합니다. (곧장 문을 나서서 방금 본 인영을 쫓는다.)
 
흔들리는 머리칼은 이미 계단을 오르고 있습니다.
 
위로, 그리고 다시 위로.
 
어느 교실에선 시를 읊는 소리가, 어느 교실에선 공식을 정의하는 소리가.
 
계단을 오르는 이는 당신과 페이드뿐입니다.
 
페이드는 뒤 한 번 돌지 않고 계속해서 계단을 오르네요.
 
숨이 부족해집니다.
 
한참을 걷던 다리가 저릿해질 때 즈음, 당신은 활짝 열린 옥상 문을 보게 됩니다.
 
……페이드가 이곳에 있을까요?
 
...
 
...
 
...
 
─────── 심장에 ───────
 
옥상에 발을 딛자 철조망 밖 너른 하늘을 보는 이가 그곳에 서 있습니다.
 
흩날리는 머리칼은 왼쪽에서, 다시 오른쪽에서.
 
바람의 방향은 초 단위로 달라지고, 하늘 위 구름은 못이 박힌 듯 움직이지 않습니다.
 
펄럭이는 교복, 흔들리는 흑색 머리카락.
 
파라 무어:(숨을 거칠게 몰아쉰다. 호흡 정돈할 틈도 없이 외친다.) ······ ······야!
 
페이드는 천천히 뒤를 돕니다.
 
아, 그 얼굴은 분명…….
 
페이드?:……파라?
 
검은 머리, 당신보다 훨씬 큰 키, 대충 입은 건지 제대로 입은 건지 모를 교복에, 곧 사라질 것만 같은 분위기까지.
 
하지만, 얼굴은 지우개로 문댄 듯 보이지 않습니다.
 
흐릿하고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그 얼굴만은 알아볼 수 없습니다.
 
 ✦ 이성 판정 ✦ 
 
파라 무어:
SAN Roll
기준치: 63/31/12
굴림: 65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당신에게, 그리고 페이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블러 처리가 된 듯한 그 얼굴에 몸이 반사적으로 얼어붙습니다.
 
페이드?:파라, 아무도 날 기억하지 못해.
너는…… 너는 날 알고 있어? 지금 내 얼굴, 보여?
 
아리송한 표정.
 
웃고 있나요, 울고 있나요.
 
아니, 저걸 표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흐릿한 얼굴은 여전히 뿌옇기만 합니다.
 
눈은 어떤 색이었고, 어떤 모양이었고, 또 어디에 자리 잡고 있던지.
 
파라마저 그 얼굴을 떠올리기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곧 자연스럽게 깨닫습니다.
 
당신이 가진 페이드에 관한 기억들 역시 하나둘씩 지워지는 중입니다.
 
파라 무어:(멈칫한다. 그러니까, 쟤 눈동자 색이.)
(······ ······눈동자 색이······.)
 
페이드?:……보이지 않는구나.
 
파라 무어:아니, 아니야······. (반사적으로 부정하고 본다.)
 
페이드?:뭐가 아니야, 아니긴.
 
손을 뻗으려던 페이드는 그대로 굳어 당신을 마주 봅니다.
 
그 무엇도 보이지 않지만, 당신은 분명 그리 느꼈습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요동칩니다.
 
가는 침묵이 흐른 후 페이드는 파라를 천천히 끌어안습니다.
 
쿵, 쿵.
 
엇박자로 뛰는 심장 소리.
 
페이드?:다른건 다 좋은데, ......
......너는 날 잊으면 안 되지.
 
파라 무어:안, 안 잊었어. 알아. (그러나 목소리가 얕게 떨린다. 이 기억이 얼마나 갈지는 알 수 없어서.)
 
페이드?:뭘 아는데.
솔직하게 말해, 그냥.
 
파라 무어:네 이름, (그러나 그게 그의 진짜 이름이던가?)
네 목소리, 말투······ 다 알아. (그러나 그의 얼굴을 떠올릴 수는 있던가.)
 
페이드?:곧 그것까지도 잊겠지.
기억할 자신 없잖아.
 
파라 무어:(거짓말 못 하는 성정이라.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마주 끌어안는다.)
기억할 거야. (가늘고 불안하게 확언한다.)
 
페이드?:그렇다기엔. ......
차원의 관문도 사용할 수 없어. 마치 이 세계에 갇힌 것만 같아......
 
차원의 관문? 그리 말하는 페이드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습니다.
 
파라 무어:······ ······차원의 뭐? (고개 들어서 본다.)
 
페이드?:아직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거야?
우린 원래 세계에서 신도들에게 쫓기는 중이었어.
도망치던 중 차원의 관문을 사용했지만, 그대로 우주 미아가 되었고.
망할 쉘터로 돌아가기 위해 계속 차원을 넘었잖아.
다른 세계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가끔 기억을 잃기도 했는데…….
 
……우리가?
 
페이드의 말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영화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제물과 차원의 관문, 우주 미아와 다른 세계.
 
동시에 기이하게도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우주를 건너, 먼 은하를 건너, 다른 세계로 함께.
 
마치 당신이 겪은 일처럼.
 
핸드아웃, 기억의 파편.
 
비로소 모든 것이 떠올랐습니다.
 
 ✦ 이성 판정 ✦ 
 
파라 무어:
SAN Roll
기준치: 62/31/12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이성 -2
 
비가 멈추는 것은 주문진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비가 쏟아지던 그 여름도, 맑고 화창한 이 여름도.
 
모두 우리의 진짜 여름이 아닙니다.
 
우린 원래 세계를 찾아 한없이 우주를 넘나들었죠.
 
그 과정 중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여름인데도 선선했던 어느 세계,
 
잘못된 위치에 떨어져 바다에 빠졌던 우리,
 
겨울 별자리가 보이던 또 다른 세계.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집을 찾아서, 다음 세계로.
 
...
 
그렇다면 왜, 이번 평행세계에서 데티아스는 사라지는 중인 걸까요?
 
데티아스의 존재 자체가 없었던 세계 또한 이번이 처음입니다.
 
무언가 잘못된 것처럼.
 
데티아스:이 세계는 확실히 다른 곳들과 달라. 다들 날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 이유는 모르지만, 난 사라지는 중이고.
……파라, 너 역시 날 잊을지도 몰라.
 
페이드는 진정한 듯 천천히 당신에게서 떨어집니다.
 
파라 무어:(떨어지는 페이드를 붙잡는다.)
(기억 났다. 모든 게.)
그리고 그게 네가 원하는 거였지? (붙잡은 손에는 힘이 들어간다.)
 
데티아스:......
아니, 잊지 마.
 
흐르지 않는 몽글한 구름이 그림자를 만들어내면, 우리가 선 곳의 짙은 파랑이 가려집니다.
 
데티아스는 천천히 철조망에 기대앉아 당신에게 작은 수첩과 연필을 건넵니다.
 
당신을 위해 옆자리를 가볍게 쓸어내리는 그 손은, 미약하게 떨리는 그 손은.
 
데티아스의 얼굴처럼 흐려지고 형태를 잃고 있습니다.
 
이건 잊지 않기 위한 기록입니다.
 
파라 무어:······. (수첩과 연필을 받고 옆자리에 앉는다.)
나 악필이야. (수첩을 펄럭 넘긴다.)
 
데티아스:뭐 어때. 읽을 수만 있으면 되지.
다 적어. 알고 있는 것들. 빠진 건 내가 알려 줄게.
적어두면 더 기억하기 쉽겠지. 잊지도 않을 거고.
 
파라 무어:(끄적끄적······.) 경험담으로 말하는데 정말 그렇더라.
 
데티아스:......
(철조망에 머리 기대고 한숨 내쉰다.)
 
파라 무어:(다리 세우고 앉아 연필 끄트머리 입에 문다.) 야.
······노시그네트.
 
데티아스:......어. 왜?
 
파라 무어:노시그네트.
 
데티아스:응.
 
파라 무어:······ ······.
데티아스.
 
데티아스:......
여기 있어.
 
파라 무어:있을 거야? (연필 내리고 바라본다.)
 
데티아스:음. (마주본다. 아마도.)
적어도 쉘터로 돌아갈 때까진.
 
파라 무어:그 뒤로는?
넌 이대로 잊히면 좋은 거 아닌가. 늘 그러길 바랐잖아.
 
데티아스:이건 내 의지가 아니니까......
나중엔, 글쎄. 어쩔까.
 
파라 무어:하지만 이런 기회 두 번은 없을 거 알지.
난 자의로는 널 안 잊을 거니까. 나한테서 잊히려면 지금 뿐이야. (쓰던 손짓이 어느 새 멈춰 있다.)
 
데티아스:말했지. 잊지 말라고.
그냥 변덕이야. 늘상 하던.
 
파라 무어:그러고 또 어느 날 변덕으로 잊으라고 할 거고?
 
데티아스: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잖아.
 
파라 무어:(손 뻗어 뺨 건드려본다.)
 
데티아스:(잡히기야 한다. 촉감은 미묘하지만.)
 
파라 무어:(그대로 살짝 감싸쥔다.)
왜 나한테 변덕 부려?
네가 제일 잊히고 싶어 하던 사람이었잖아, 나는.
 
데티아스:이유가 중요해?
그냥, 그러고 싶어서.
언젠가부터 너한테만은 기억되고 싶어서......
싫어?
 
파라 무어:시체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거라며.
기어코 남으려고, 나한테?
 
데티아스:응. 어떻게든.
왜 계속 물어. 쓰기나 해...... 시간 없어.
 
파라 무어:(그제야 손을 떼고 다시 느리게 연필을 움직인다.)
궁금해서. 안 되냐?
 
데티아스:안 되는 건 아니고.
(손 떼어내고 다시 정면 본다.)
 
파라 무어:(다 적고 수첩 내민다.) 검토해.
 
데티아스:......
우리 함께했던 추억들은 안 적고?
도서관에서 내가 장난쳤었잖아.
 
파라 무어:네가 적어. (연필 떠넘긴다.)
네 글씨체도 남겨 놔.
 
데티아스:힘든데. (연필 받아서 이어 쓴다.)
 
파라 무어:어쩌라고. 써. (단정한 모범생 말씨는 사라진지 오래다.)
 
데티아스:됐지. (수첩과 연필 넘겨준다.)
너 진짜 글씨 못 쓴다.
 
파라 무어:(받아서 읽어본다.)
이 새끼 왜 지금도 시비를 털지······.
넌 글씨 얼마나 잘 쓰는데? (그리고 수첩 끝부분 가리킨다.)
······ ······내 이름 써 봐.
 
데티아스:여기에도 많이 썼는데. (제가 쓴 부분 가리키고.)
......네 이름?
 
파라 무어:(못 들은 척.) 모르는 거 아니지?
 
데티아스:아니거든. (적어서 도로 준다.)
(나름 필기체.)
 
파라 무어:(제 이름 내려다본다. 말없이.)
······ ······난 너 못 잊어. 알지.
 
데티아스:잊으려 발악해도 안 잊힐 거야.
 
파라 무어:잊으라고 발악해도 안 잊을 거야. (세운 무릎 사이로 얼굴을 묻는다.)
 
데티아스:(말없이 수첩 또 가져갔다 돌려준다.)
 
어느 정도 정보를 적었을 때 즈음, 그의 목소리마저 뭉툭해져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데티아스는 파라의 어깨 위로 툭, 힘없이 머리를 기대옵니다.
 
그 무게마저 낯섭니다.
 
흐릿해지는 기억을 애써 붙잡아도,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기만 합니다.
 
데티아스:다시 만날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절대로 잊지 마.
파라.
마지막으로, 내 이름을 불러 줘…….
 
파라 무어:(수첩 열어본다. 허, 하고 헛웃음이 흐른다. 누구 마음대로······. 중얼거렸다가 이내 데티아스의 머리 위로 제 머리를 기울여 기댄다.)
페이드.
노시그네트.
······ ······.
데티아스.
 
데티아스:......한 번만 더.
 
계속, 다시.
 
불안하게 떨리는 그 목소리.
 
파라 무어:데티아스 노시그네트. (언젠가 네 손으로 새겼던 이름.)
데티아스. (어딘가 고장난 것 같은 이 세계에 갇힌다면 이 이름도 함께 박제될까.)
데티아스. (그 이름이 해져서 닳아 없어질 때까지 부른다.)
데티아스······. (또 언젠가는 네가 내게서 빼앗으려고 했던 이름을.)
······ ······.
여기 있어······.
 
데티아스는 그 와중에도 자신의 이름을 한참 동안 불러달라고 속삭입니다.
 
□□□□:……기억해.
 
그 이름 역시 떠올리기 힘들어질 때면, □□□□는 천천히 눈을 감습니다.
 
흰 물감을 군데군데 풀어둔 하늘 아래, 한 사람의 그림자가 서서히 지워집니다.
 
기대어 느껴지던 무게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 □□□□, □□□□…….
 
우리는 차원을 넘기 전, 집으로 돌아가길 빌며 속삭이곤 했죠.
 
이렇게, 지금처럼.
 
하나,
 
둘,
 
셋.
 
...
 
깜빡.
 
...
 
...
 
...
 
─────── 꽂는 ───────
 
여름은 맑으매 푸른 하늘은 눈이 부십니다.
 
무더운 여름은 습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립니다.
 
데자뷔처럼 옥상에는 당신만이 홀로 남아있습니다.
 
 ✦ 이성 판정 ✦ 
 
파라 무어: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2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손에는 힘껏 구겨진 수첩, 급하게 휘갈겨 쓴 티가 역력한 글이 남아있네요.
 
가장 크게 □□□□ □□□□□라고 적혀있으며, 그 아래로는 누군가의 사소한 정보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 □□□□, □□□□…….
 
절대 잊어선 안 될 이름인데도 왜 이렇게 기억이 흐릿한지.
 
이젠 여름이 원망스럽게 느껴집니다.
 
□□□□를 되찾고, 이 세계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오로지 당신의 힘으로만, 홀로.
 
한참을 되뇐다고 하여 방법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철조망에 오래 기댄 탓에 몸이 찌뿌둥하기도 하네요.
 
툭.
 
근처에서 가벼운 종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파라 무어:(마른 눈가를 깜빡거린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또 누군가가 답지 않은 목소리로 답지 않은 말을 했던 것도 같은데.)
(종이를 주워본다.)
 
작은 쪽지를 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보입니다.
 
840.01이12꽃 / 도서실
 
혹시 몰라 남겨 둔다.
 
 ✦ 지능 판정 ✦ 
 
파라 무어: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암호 같기도 하지만, 당신은 바로 알아챌 수 있습니다.
 
도서실 창구번호를 표기한 것 같네요.
 
띠리링-
 
……그 사이에 수업 하나를 완전히 빠진 것 같습니다.
 
잠시 등골이 오싹해지네요.
 
파라 무어:······ ······. (섬뜩.)
 
아니, 생각해보면 이곳은 진짜 세계가 아니므로 상관없는 일이죠.
 
어쨌든 쉬는 시간입니다.
 
파라 무어:아. (습관적으로 그만.)
(자리 툭툭 털고 일어나 잠깐 옆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도서관으로 향한다.)
 
이름도, 성격도, 함께한 추억도,
 
그 모든 게 조각난 사람이 마지막으로 한 부탁만이 남은.
 
 ✦ 정신력 판정 ✦ 
 
파라 무어:
정신
기준치: 65/32/13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절대 잊어선 안 됩니다.
 
□□□□를 오롯이 기억하는 건 당신뿐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괜히 발걸음이 빨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은 어지럽고, 울렁거리는 속은 이 계절을 완전히 받아내지 못합니다.
 
...
 
그는 어떤 표정을 지으며 웃었던가요?
 
이 평화로운 세계를 떠날 정도로, 그는 당신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인가요?
 
구겨진 수첩에는 옅은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도서실에 도착하면 종교, 예술, 언어가 적힌 책장들이 빼곡합니다.
 
기이한 충동입니다.
 
저곳에 당신에게 필요한 정보가 있을 거란 예감이 듭니다.
 
사서 선생님께선 보이지 않네요.
 
파라 무어:(종교 책장부터 확인해 본다. 창구 번호를 찾아서.)
 
◈ 종교 책장
 
2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종교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 자료조사 판정 ✦ 
 
파라 무어:
자료조사
기준치: 65/32/13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에 관한 기억이 조금 더 흐려집니다.
 
수첩을 한 번 더 봐야겠어요.
 
 ✦ 자료조사 판정 ✦ 
 
파라 무어:
자료조사
기준치: 65/32/13
굴림: 3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핸드아웃, 종교, 혹은 미신 이야기
 
파라 무어:외부 세계와 이어진 매게체······. (고개 기울이고 예술 코너도 본다.)
 
◈ 예술 책장
 
6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예술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 자료조사 판정 ✦ 
 
파라 무어:
자료조사
기준치: 65/32/13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핸드아웃, 고대 예술과 발전
 
파라 무어:두 그림으로 나뉜 별자리. (언어 책장까지 뒤진다.)
 
◈ 언어 책장
 
7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언어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 자료조사 판정 ✦ 
 
파라 무어:
자료조사
기준치: 65/32/13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에 관한 기억이 조금 더 흐려집니다.
 
수첩을 한 번 더 봐야겠어요.
 
 ✦ 자료조사 판정 ✦ 
 
파라 무어:
자료조사
기준치: 65/32/13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핸드아웃, 언어의 기원
 
파라 무어:사람의 이름. (······ ······수첩을 흘끗 본다. 도무지 눈에 익지 않은, 그러나 자신이 밑줄까지 쳐놓고 기억하려던 이름을.)
 
파라의 시야에 문학 책장이 들어옵니다.
 
파라 무어:(문학 책장도 살펴본다.)
 
쪽지에 적힌 창구 번호, 840.01이12꽃.
 
책장을 살펴 보자니, 그것이 눈에 띕니다.
 
그것은 꽃갈피란 제목의 얇은 영문 시집이었습니다.
 
파라 무어:······ ······. (시를 읽었나? 꺼내서 펼쳐본다.)
 
꽃으로 책갈피를 만드는 방법과 짧은 시들이 실려있습니다.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는 꽃을 여러 번 말려야 한다고 하네요.
 
우리의 여름을 닮았습니다.
 
수없이 반복한 탓에, 심장에 꽂을 수 있을 정도로 얇게 마른 우리의 63번째 여름.
 
책에는 쪽지 한 장이 끼워져 있습니다.
 
파라 무어:(어쩌면 겨울에서만 살았던 우리는, 겨울만 알고 지내던 우리는······ 첫 번째 여름 정도는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아직 이 수분이 다 마르기 전에는.)
(쪽지를 꺼내본다.)
 
핸드아웃, 편지
 
그 아래에는 필기체로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 □□□□, □□□□…….
 
데티아스 페이드 노시그네트.
 
외부세계와 가장 강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 거짓된 세계를 부술 수 있는 한 단어.
 
그러나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거짓된 세계라고 하여도, 한 사람만이 사라진 이곳은 평화롭고 고요합니다.
 
굳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 하나요?
 
우린 다시 우주 미아가 되고 말 텐데, 기약 없이 차원의 관문을 다시 넘나들어야 할까요?
 
파라, 당신에게 데티아스는 그럴 가치가, 의미가 있는 사람인가요?
 
파라 무어:(손안에서 쪽지가 구겨진다. 치마 안에 단정히 넣어 입었던 셔츠와 그 아래 덧입은 민소매까지 들어 올려 자기 허리를 내려다본다.)
(그럼 그곳에는, 자신이 온몸으로 받아 새겼던 단 하나의 흔적이.)
(그리고 어쩌면 두 번째 흔적. 노시그네트. 너는 왜 내게 네 이름을 붙였을까. 그러나 하나는 확신한다. 나는 완벽히 사라지기를 바란다는 너를 끝까지 쫓을 것이다.)
(설령 그곳이 진창이더라도, 또다른 겨울이더라도, 영원히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그렇다면 그 이름을 불러요.
 
거짓된 여름을 부숴요.
 
그를 기억하고, 형상화할 수 있는 최고의 단어를.
 
데티아스를 오롯이 기억하는 당신의 입으로.
 
파라 무어:(그래, 네가 내게서 빼앗으려고 했던,)
(그러나 절대로 빼앗기지 않을 이름이.)
······ ······.
페이드.
노시그네트.
······ ······데티아스.
 
.
 
.
 
.
 
─────── 방법 ───────
 
깜빡.
 
당신이 데티아스의 이름을 부르자 모든 기억이 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세계의 소리가 멈춥니다.
 
맴맴 울던 매미의 소리, 복도에서 재잘재잘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바람에 커튼이 흔들리는 소리까지.
 
시간이 멈춘 듯 이곳은 고요해집니다.
 
기이한 침묵.
 
충분히 겁먹을 만한 상황인데도 되레 익숙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 관찰력 판정 ✦ 
 
파라 무어:
관찰력
기준치: 55/27/11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깜빡이던 형광등이 꺼지고 맙니다. 정전일까요?
 
아니.
 
창밖을 봐요, 파라.
 
하늘, 땅이랄 것도 없이 검은 우주가 펼쳐져 있습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새까만 밤과 반짝이는 은하수, 촘촘히 박힌 별들.
 
건물도 도로도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짙고, 또 짙은 밤하늘이 전부입니다.
 
 ✦ 이성 판정 ✦ 
 
파라 무어: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음.
 
당신은 깨닫습니다.
 
이 거짓된 세계가 부서지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사라지고 오로지 파라만이 이곳에 남아있습니다.
 
아니, 혼자가 아니라……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파라!
 
운동장이었던 그 너른 공간 한가운데, 우주 위로 데티아스가 동동 떠 있습니다.
 
반짝이는 별들 사이 중력을 무시한 채 흩날리는 데티아스의 머리카락.
 
마치 그림의 한 폭 같습니다.
 
물론 감상이 이어지기도 전, 그는 당신을 향해 무어라 소리치네요.
 
 ✦ 듣기 판정 ✦ 
 
파라 무어: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장 밖으로 나와. 학교가 무너지고 있어!'
 
쿠궁.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별가루들이 흩날립니다.
 
그러나 당황하던 것도 찰나.
 
정신을 차리면,
 
100번, 600번, 800번.
 
책장들이 모두 별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있어요.
 
심지어…… 도서실 전체- 학교 전체가!
 
당연하죠, 이 세계를 부수는 단어는 당신이 읊었잖아요?
 
주변을 둘러보면 마땅한 탈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대로 잔해 속에 깔리는 건 아닌지…….
 
아, 다행히도 창문이 보이네요.
 
아니, 이게 다행인가요?
 
지금이 당신이 있는 층은 1, 2, 3……
 
떠올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요.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내가 받아 줄게. 뛰어내려!
 
부서지는 학교, 창문 아래의 데티아스가 소리칩니다.
 
파라 무어:뭐? (창문 아래를 내려다본다. 까마득하다.) 미, 미쳤어?!
 
말이 쉽지…….
 
파라 무어:이 높이에서 뛰어내리라고? 네 뼈도 부서져!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요.
 
시간이 없습니다.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그럼 어쩔 건데?
 
파라 무어:야이씨······. (이 악물고 무너지는 도서관을 돌아보았다가, 다시 창문 밑 데티아스를 본다. 머뭇.)
 
창틀을 딛고, 유일하게 부서지는 세계 속 당신을 바라보는 이에게 뛰어내립시다.
 
응원이라도 하듯 거센 바람이 당신의 등 뒤에서부터 불어옵니다.
 
파라 무어:(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다. 아, 아케르나르에서 이런 훈련도 받았던 것 같은데. 그때 페퍼 씨가 뭐라고 하셨더라.)
(다른 곳 보지 말고 밑에 있는 사람만 보라고······.)
(오직 데티아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창틀을 딛고 그대로 낙하한다.)
 
창턱을 밟고 아래로, 다시 아래로.
 
별가루가 흩어지매 까만 우주는 눈이 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이어질 추락에 잔뜩 긴장해도 당신은 아주 천천히, 중력을 무시하고 아주 천천히.
 
바람 따라 나는 민들레 씨처럼 느릿하게 떨어집니다.
 
와락, 그런 당신을 데티아스는 쉽게 그러안아 잡습니다.
 
여전히 흐릿하지만, 그 얼굴의 이목구비는 점점 선명해지고 있어요.
 
나풀거리는 머리카락 탓에 꼭 물에 빠진 것만 같습니다.
 
 
이윽고 외부 세계로 나가기 위해, 외부 세계와 가장 강하게 연결된 데티아스가 묻습니다.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내 이름, 기억해?
 
파라 무어:(그 얼굴을 본다.)
어, 페이드.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좀 더.
 
파라 무어:노시그네트.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마지막은?
 
파라 무어:······ ······. (이마를 툭 부딪힌다.)
데티아스.
 
파라가 답을 하자, 흐릿했던 것들이 완전히 되돌아옵니다.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그럼 우리가 어떤 관계였는지도?
 
파라 무어:······ ······원수 새끼? (아리송한 얼굴.)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
 
파라 무어:······뭐.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무수한 여름을 함께 건너온 사람.
......이런 말 좀 해라.
 
파라 무어:흠.
겨울을 함께 지낸 사람. (순순히 바꿔 말한다.)
 
파라가 답을 하자,
 
반짝.
 
둘의 팔에 새겨진 주문진에 빛이 들어옵니다.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내가 네게 남긴 흔적들은?
 
파라 무어:등에 하나. 옆구리에 하나. (이마 뗀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졌을 다른 흉터들도.
······이런 거 들으면 안 찔리냐?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아니, 되게 찔리는데.
 
건네는 말엔 웃음기가 가득합니다.
 
파라가 답을 하자, 모든 별가루가 허공에 둥둥 뜬 채로 멈춥니다.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마지막 질문이야. 우리의 세계로 돌아갈 거지?
 
파라 무어:어.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돌아가자.
 
답을 들은 데티아스가 당신의 두 손을 잡습니다.
 
피부 위로 새겨진 별자리와 같은 무늬가 애초에 하나였던 것처럼, 둘의 팔을 타고 이어져 반짝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푸른 빛이 스칩니다.
 
어디선가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고, 중력이 배로 느껴지는 기분에 속이 울렁거립니다.
 
하지만, 이건 모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일이었잖아요?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왜 포기했어? 이 세계.
완벽했잖아.
 
파라 무어:네가 없잖아. (이 역시 쉽게 대꾸한다.)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내가 옆에 있었으면 해?
 
파라 무어:넌 네 멋대로 못 사라져. (잡힌 두 손에 힘을 준다.)
네가 그걸 바란다고 해도, 이미 넌 나한테 박제됐거든.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하.
그거 잘 됐네......
 
부서져 가는 세계, 거짓된 세계, 꾸며진 여름.
 
우린 그것들을 두고 차원의 관문을 넘을 거예요.
 
어쩌면 다시 우주 미아가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눈앞의 상대가 환히 웃습니다.
 
마주 잡은 손이 웅웅, 진동하며 가볍게 떨립니다.
 
이번에는 어쩐지 감이 좋아요.
 
여름을 말려 심장에 꽂는 법.
 
수없이 반복한, 수없이 넘은 이 여름을.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다음 세계에서도, ……잊지 마.
 
파라 무어:······. (손을 깍지 낀다.)
그게 걱정되면 하나 더 남겨.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지금 무슨 수로?
 
파라 무어:수첩에. (얼굴 쳐다본다. 맞아, 이런 색이었지······.)
장난질 쳐놨던데.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
파라 노시그네트? (입에 담아 본다.)
 
파라 무어:(대답 없이 빤히 바라본다.)
왜 그렇게 썼어?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글쎄......
제일 확실한 방법이니까.
 
파라 무어:내가 널 기억하길 바라?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응.
 
파라 무어:그럼 너 네 목표 못 이뤄.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그것보다 더 간절해서.
 
파라 무어:왜?
“그냥 그러고 싶어서?”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잘 알면서.
 
파라 무어:넌 저 말을 그냥 만능 핑계로 쓰냐?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뻔뻔하게 웃는다.)
 
이젠 모두 훌훌 털어버릴 차례입니다.
 
파라의 말을 끝으로, 강한 빛이 주문진에서 쏟아집니다.
 
우린 차원을 넘기 전, 집으로 돌아가길 빌며 속삭이곤 했죠.
 
이렇게, 우주 한가운데에서, 서로를 보며, 지금처럼.
 
하나,
 
둘,
 
셋.
 
...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사랑해.
 
깜빡.
 
─────── END 1. 집으로, 함께. ───────
 
데티아스, 파라 생환
 
보상:
 
진행 중 감소한 이성 전체 회복
 
우리가 살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