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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 보이던 맑게 갠 하늘.그곳은 페이드가 사라진 여름이었습니다.아니, 당신만이 페이드를 기억하는 세계.
새벽을 적시던 비는 어느새 폭우가 되어 내리는 중입니다.
개학을 하루 앞둔 지금, 파라는 집에 홀로 남아있습니다.
기승을 부리는 여름은 꺾일 기미 하나 보이지 않으매 비는 더위를 감추지 못합니다.
파라가 괜히 강수량에 대해 떠드는 뉴스에 집중하다 보면,
파라 무어:
듣기
기준치: |
60/30/12 |
굴림: |
63 |
판정결과: |
실패 |
파라 무어:
듣기
기준치: |
60/30/12 |
굴림: |
3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끊이지 않는 빗소리, 그 사이 이질적인 소리도 함께 들립니다.
➤:“8월 하순을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의 강수량이….”
빗소리보다 조금 더 거칠고 무게 있는 소리가 들립니다.
앵커가 무어라 하든 그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지니까요.
➤:“새벽부터 시작된 비는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시간당 100mm로 인천 전역을 시작해 전국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졌으며,”
“기습폭우로 인한 피해 역시 속출하는 중입니다.”
확실하게,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몇 가지 소리와 함께 가전제품들의 불이 꺼집니다.
우중충한 하늘 덕에 잿빛이 슬금 들어온 집안은 낮임에도 어둑하네요.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습니다.
파라 무어:······누구세요? (주춤거리며 현관문 쪽으로 향한다.)
다행히도 이름 모를 방문객은 아닌 모양입니다.
비가 힘껏 쏟아지는 창밖을 보면 어떤 이유에서 연락도 없이 찾아왔을지 쉬이 예상되지 않습니다.
파라 무어:페이드? (예상 밖의 목소리에 눈을 끔뻑거리다가, 창밖을 한 번, 그리고 현관문을 한 번 본다. 이내 문을 연다.)
갑자기 무슨 왜······ 연락도 안 하고.
여전히 불 하나 켜지지 않은 실내는 어둑하기만 합니다.
문이 열리고, 문 앞에 선 상대를 확인하면……
그리고, 물벼락을 맞은 듯 푹 젖은 옷을 입은 페이드도 함께.
빗물이 방울방울 매달린 머리카락, 하염없이 물이 떨어지는 옷, 또…….
파라 무어:
심리학
기준치: |
50/25/10 |
굴림: |
93 |
판정결과: |
실패 |
여유를 잃은 그 표정은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파라 무어:너 꼴이 왜 이래? (대답 대신 당황하며 내뱉는다.)
우산 없어? 저 비를 그대로 다 맞은 거야?
......아니야.
하여튼, 페이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고칩니다.
아까처럼 목소리를 떨지 않고, 그저 태연한 낯으로.
우선은 젖은 페이드를 집안으로 들이는 게 좋겠죠.
파라 무어:우산이 없는데 왜 여기까지, (까지 말하고 여전히 떨어지는 빗물을 본다. 막무가내로 팔을 당겨서 집 안으로 들인다. 어머니가 안 계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일단 들어와서 얘기해.
페이드:(당겨진다...... 지나가는 곳마다 물자국 남긴다.)
어떻게 지냈어?
파라 무어:(욕실에서 수건 들고 온다.) 어떻게 지냈냐니?
늘 똑같지······. 야, 진짜 뭔데? (퉁명스럽게 수건 던진다.)
페이드:뭐가. (잘 받아서 제 머리 물기 턴다.) 오지 말 걸 그랬나?
파라 무어:우리가 이렇게 연락도 없이 불쑥 집에 찾아올 사이였던가······. (팔짱 끼고 본다.) 집에 나만 있어서 망정이지.
밥은 먹었고?
파라 무어:말 돌려? (한쪽 눈썹이 구겨진다.)
파라 무어:(탐탁찮은 표정으로 보다가.) 안 먹었어.
페이드:좀 먹고 살아라. 이럴 때라도...... (이미 다 젖은 수건 들고 서 있다.)
다시 전원이 들어온 네모난 상자 속 뉴스는 여전히 이번 기습폭우를 다루고 있으며, 화장실에서는 뽀송한 수건을…… 이미 가져왔지만, 하나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 부엌 찬장에 고이 모셔둔 티백으로 차가운 페이드의 몸을 녹일 수 있겠네요.
파라 무어:체력과 건강에 해가 되지 않을 선에서 알아서 잘 먹고 살거든. (까칠하게 대꾸하고는 화장실로 들어간다. 수건 하나 더 가져와야겠군.)
습기 가득한 눅눅한 하루라 해도 수건은 뽀송한 게 제구실을 할 수 있겠습니다.
✦ 관찰 판정 ✦
파라 무어:
관찰력
기준치: |
55/27/11 |
굴림: |
5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파라 무어:(고개 갸웃······ 새 걸로 바꿔 놓으셨나? 아무튼 수건 들고 나가서 페이드에게 건네준다.)
뭐······ 마실 거라도 줘?
파라 무어:
운
기준치: |
55/27/11 |
굴림: |
4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발이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습니다.
파라 무어:물기 제대로 닦아. 바닥에 물 떨어지면 가만 안 둔다. (으름장 놓고 부엌으로 간다.)
어디서 받았던 건지, 직접 산 건지 기억은 흐릿하지만요.
파라 무어:(컵에 따뜻한 물 받아놓고서 찬장 뒤적여서 적당한 티백 하나 찾는다.)
분명 많이 남아있었는데, 함께 사는 가족이 모두 먹었을까요?
파라 무어:
운
기준치: |
55/27/11 |
굴림: |
4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파라 무어:(쟤가 코코아를 마시던가······ 그래도 맹물보다는 나을 테니 코코아 타서 가져다 준다.)
페이드:(달콤한 것 잘 먹으니. 받아 마신다.) 마시멜로는 안 띄워 줘?
파라 무어:불청객이 바라는 게 많아. (뒤늦게 쫄딱 젖은 페이드 봤다가······ ······ ······왠지 민망해져서 뉴스 듣는 척 한다.)
주간 날씨를 알려주는 화면은 온통 먹구름으로 가득합니다.
여름철 장마는 흔한 일이라고 하지만, 전국을- 그리고 한 주가 비로 가득한 건 이번 여름 중 처음입니다.
“유명 스포츠 선수 A씨의 은퇴 사실에 관한 루머들이……”
파라 무어:
지능
기준치: |
75/37/15 |
굴림: |
36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처음 듣는 내용인 것 같은데, 다음으로 다루는 뉴스 내용은 낯설기만 하네요.
파라 무어:(은퇴? 고개 갸웃한다. 인터넷과 단절돼서 사는 수험생이니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약간! 용기를 얻어서 다시 페이드 쪽으로 시선 돌린다.)
세찬 비를 맞은 탓인지 페이드의 낯은 평소보다 더 창백합니다.
파라 무어:
관찰력
기준치: |
55/27/11 |
굴림: |
91 |
판정결과: |
실패 |
찰나, 페이드의 손등 위로 여린 푸른빛이 반짝거립니다.
다시 보아도 페이드의 손등은 멀쩡하기만 합니다.
파라 무어:······ ······. (잘못 봤나? 눈 비빔······.)
파라 무어:······아니. (잘못 봤나 보다.) 그래서 진짜 우리집에는 왜 왔는데?
......
어느 정도 물기가 마른 페이드는 간간이 멍한 표정을 짓습니다.
내일은 개학식이니 페이드도 일찍 집에 돌아가야겠죠.
폭우에 페이드의 가족이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라 무어:(황당하게 본다.) 우산 빌려 줄게.
우산은 좀 이따 줘.
아, 빨리 와.
그럼 집에나 가. 부모님 걱정하시겠다.
페이드:(어쩔 수 없지. 중얼이며 몸 일으켰다.)
파라.
나지막한 소리. 사뭇 진지한 표정의 그가 보입니다.
페이드의 손등에 새겨졌던 빛이, 헛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당신만을 오롯이 담은 그 눈에 푸른 빛이 스칩니다.
페이드:(손 끌어와 잡는다.) 이번엔 잘 될까.
……기억할 수 있지?
파라 무어:
듣기
기준치: |
60/30/12 |
굴림: |
7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지금 이 상황, 이 공간이 너무나도 고요합니다.
아니, 비는 허공에 방울방울 ‘멈추어’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둥근 물방울의 형태를 가지고서.
파라 무어:
SAN Roll
기준치: |
65/32/13 |
굴림: |
6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무어라 말하든 페이드는 파라의 손을 강하게 마주 잡고 눈을 감습니다.
파라 무어:뭘······ 기억해야 되는데?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낯.)
피부 위로 새겨진 무늬는 페이드를 집어삼킬 듯 반짝이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숨을 쉬기도 어렵습니다.
중력이 배로 느껴지는 기분에 속이 울렁거려요.
허공에 방울방울 매달린 비는 여전히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번 주 내내 맑은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열대야 역시 지속적으로……”
창밖은 맑으매 푸른 하늘은 눈이 부십니다.
무더운 여름은 건조한 탓에 비는 내리지 않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립니다.
파라, 당신의 손을 잡고 있던 상대는 어디로 갔나요?
집 안에 남은 건 맑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살, 그리고 당신뿐입니다.
파라 무어:
SAN Roll
기준치: |
65/32/13 |
굴림: |
5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파라 무어:······페이드? (주위를 돌아본다.)
마치 영화 속 장면이 빠르게 전환되듯 페이드아웃 없이 한순간에 뒤바뀐 세상.
주변을 더 살펴볼 수도, 페이드에게 연락을 할 수도, 혹은 다른 행동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파라 무어:이게 뭐야. 뭔데? (창쪽으로 뛰어가서 창을 내다본다. 정말 비가 그쳤나?)
작은 구름 몇 점이 동동 떠 있고, 햇살은 눈이 부시게 쏟아져 내립니다.
파라 무어:분명 비가······ 비가 내렸는데. (중얼거린다. 부엌으로 가서 찬장을 다시 열어본다.)
파라 무어:(이거 내가 페이드에게 타주지 않았나? 화장실로 가서 수건 갯수를 확인해 본다.)
페이드에게 꺼내 준 수건까지 차곡차곡 잘 쌓여 있습니다.
파라 무어:······ ······왜? (칫솔도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인가?)
파라 무어:(황당해져서······ 페이드에게 전화를 걸어보기로 한다.)
파라는 여기저기 쏘다니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페이드에게서 뚝뚝 떨어지던 물마저 사라졌습니다.
(왜, 마치 증발하기라도 한 것처럼.)
뉴스에서는 기상캐스터가 주간 날씨를 알려주는 중입니다.
장마철인데도 이렇게 맑은 날이 지속되는 건 드문 일이라고 합니다.
파라 무어:(일주일 내내 비가 온다고 했는데. 습한 여름이었는데······.)
(뭐라도 이상한 게 없을까? 집안 곳곳 돌아다녀본다.)
바깥은 그늘마저 푸르러 바다를 베어 옮겨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폭우도 페이드도, 그리고 반짝이던 무늬마저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게 틀림없잖아요?
페이드는 연락을 받지도 않으니 내일 학교에서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멍한 정신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개학. 멀게만 느껴지던 단어가 오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펄럭이는 교복들이 흰나비처럼 이곳저곳을 쏘아 다니네요.
어제 일어났던 일들이 생생한 꿈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일을 빼면 이 여름은 평범한 하루와 다를 것 하나 없어, 배로 혼란스러운 기분입니다.
보통은 횡단보도를 건너, 가로등 두어 개를 지나면 페이드가 보이곤 했습니다.
파라의 어깨에 자연스레 팔을 걸치는 건 다름 아닌 같은 반 친구, 시아입니다.
시아:오늘 날씨 진짜 좋네. 보통 이맘때 즈음이면 비도 오고 그랬던 것 같은데.
……아, 미안. 사람을 착각했네.
파라 무어:······아, 응. (어색하게 어깨 동무에서 몸을 뺀다.)
비······ ······오지 않았나······. (아직 얼떨떨하게 중얼거린다.)
시아:그게 무슨 소리야? 요즘 계속 맑은 날씨만 이어지고 있잖아.
파라 무어:······. (그럼 내가 본 건 뭐지? 꿈? 자각몽?)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너 혹시 페이드하고 연락 돼?
몰라,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인걸. 혹시 다른 학년이나 다른 반이야?
파라 무어:······ ······어? (자기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낸다.)
페이드 말이야. 우리 반. (재차 묻는다.)
진짜 처음 들어. 내가 널 상대로 장난 칠 이유가 없잖아.
파라 무어:무슨······. 자, 잠깐만. (다급하게 갤러리를 뒤진다. 페이드의 사진이라도 없을까?)
일부가 나온 사진이 있었다 해도, 합성이라도 한 듯 깔끔하고 자연스럽게 잘려나가 있습니다.
파라 무어:(반 단체 사진을 찾았다가 황망해진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을 부정하듯 마지막으로 묻는다.) 우리······ 우리 반 총원 몇 명이지?
시아:스물일곱 명. (그러니까, 페이드는 카운트하지 않은 수.)
파라 무어:(정말 없다. 페이드가 사라졌다.)
걸음을 멈춘 시아는 뒤를 돌더니 왔던 길 위를 냅다 달리기 시작합니다.
덩그러니 남겨진 파라의 뺨 위로 푸른 나뭇잎 하나가 떨어집니다.
중력을 따라 떨어진 잎은 한가득 여름을 담아 푸르기만 합니다. 그리고…….
파라 무어:
지능
기준치: |
75/37/15 |
굴림: |
6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아까 그 친구는 페이드와 친분이 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신호를 기다리며 건너기 전, 당신에게 전화 한 통이 도착하네요.
여보세요?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전화를 건 이는 페이드입니다.
불안하고, 여유가 사라진 그 목소리는 볼품없게 느껴져요.
파라 무어:(잠깐 정적.) 야, 너······
너 지금 어디야?
페이드:먼저 학교에 도착했어. 알아볼 게 있어서 도서관에 들르려고.
파라 무어:전화는 왜 안 받았어! (왈칵 화를 낸다.)
......파라, 내 이름 기억나?
파라 무어:
정신
기준치: |
65/32/13 |
굴림: |
77 |
판정결과: |
실패 |
문득, 아까 페이드를 모른 체하던 친구가 생각납니다.
파라 무어:(부자연스러운 침묵 끝에 말한다.) 페이드잖아.
그 이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페이드:......설마, 아직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거야?
횡단보도, 그 하얀 선을 따라 걸을 때 즈음 페이드가 중얼거립니다.
매미가 우는 소리에 묻혀버릴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페이드은 장난을 치는 기색이 아닙니다.
휴대폰 너머의 표정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습니다.
분명 말도 안 되는 소리일 텐데.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 정신이 멍해집니다.
당신의 눈앞, 가까운 거리를 두고 아슬하게 멈춘 차 옆으로 한 학생이 넘어져 있습니다.
부딪히진 않았지만 모두가 웅성거리며 횡단보도 쪽을 쳐다보네요.
파라 무어:
관찰력
기준치: |
55/27/11 |
굴림: |
3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눈을 두어 번 깜빡이자 그제야 바퀴가 보입니다.
파라 무어:······ ······. (공부만 하다가 내가 미쳤나? 찝찝하게 자동차를 보다가 마저 학교로 걸음을 옮긴다.)
소란도 잠시, 지각을 피하고자 모두 다시 학교로 걸음을 옮깁니다.
오늘 하루의 시작이 묘하고, 또 불안하게만 느껴지네요.
한층 한층 계단을 오르다 보면 파라의 반이 보입니다.
오늘따라 파아란 창밖이 무섭게도 아름답습니다.
정신을 고쳐잡고 페이드를 찾으면, 당신의 교실 속 익숙한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파라 무어:······ ······. (아직 도서관에 있나?)
페이드의 책상과 의자까지도 그림을 잘라 떼어놓은 듯 보이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친구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눈치이며, 교탁에 붙은 자리표에는 학생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교탁 위에 붙여진 자리표에는 학생들의 자리 위로 이름과 학번이 적혀있습니다.
애초에 없던 학생처럼 페이드의 자리도, 이름도, 학번도.
파라 무어:왜······. (다짜고짜 친구들을 붙잡는다.)
너희 페이드 어디 있는지 알아?
친구들은 방학 때 있던 일이나, 다른 학교보다 이른 개학에 대한 불만을 토하고 있습니다.
언제 도착했는지 등교 시간 때 만났던 친구도 보이네요.
시아:아까부터 계속 걔 얘기네. 걔가 누군데 그래?
➤:"처음 듣는 이름인데, 우리 반이야? 그런 애가 우리 학교에 있는 줄도 몰랐어."
······ ······.
(정말 자존심 제대로 상하는 얼굴로 꾸역꾸역 입 연다.) 1학기 중간고사······ 1등했던 애 있잖아.
정말, 진지하게 페이드의 반 친구들은 당황한 표정을 짓네요.
마치 벽을 두고 얘기하는 기분이라 파라는 답답하기만 합니다.
파라 무어:
SAN Roll
기준치: |
63/31/12 |
굴림: |
5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당신에게 그리 속삭이던 페이드는 어디로 간 건가요?
모두가 한 사람을 잊고 여름을 보내는 중입니다.
창밖의 푸른 하늘은 작위적으로 맑고, 나무 아래 그림자는 잠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구름 몇 점이 떠다니는 하늘은 지독하게도 푸릅니다.
파라 무어:
관찰력
기준치: |
55/27/11 |
굴림: |
2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아무리 바람 하나 불지 않는 날씨라고 해도, 구름은 제자리에 못이 박힌 듯 움직이지 않습니다.
애초에 움직이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그 자리에 굳어 있습니다.
파라 무어:(이렇게까지? 매미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매미의 돌림노래는 끝날 기미조차 느껴지지 않습니다.
파라 무어:
듣기
기준치: |
60/30/12 |
굴림: |
5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마치 녹음본을 틀어둔 듯 그 소리는 기이하게도 완벽히 반복됩니다.
잠시 멈추는 건 7초에 한 번, 소리가 커지는 것은 일정하게.
파라 무어:(
1, 2, 3······ ······7. 몇 번 세어본다. 반복해서 검증한다. 이내 확신한다. 완벽한 주기를 가지고 있다.)
(자연 현상이 이렇게 규칙적일 수 있나?)
재잘거리던 아이들도 자리를 찾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파라, 당신은 당신의 기억을 믿을 수 있나요?
선생님께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프랑스어 수업을 시작합니다.
출석 역시 페이드의 이름은 건너뛰고 이어지네요.
누군가의 부재는 애초에 없던 것처럼 하루가 흘러갑니다.
➤:"예문에도 나와 있듯이 관계부사를 써야 하므로……"
"……에서, 그러므로 빈칸에 들어갈 말은."
"Où."
동시에 선생님께선 당신을 탐탁지 않게 쳐다보네요.
➤:" 파라가 오늘 영 집중을 못 하는 것 같네. 아까 말한 빈칸의 답, 한번 불러보렴."
흔들림 없는 올곧은 시선을 보자 절로 속이 메스꺼워집니다.
파라 무어:
관찰력
기준치: |
55/27/11 |
굴림: |
98 |
판정결과: |
실패 |
그때, 복도 쪽 창가를 익숙한 인영이 스쳐 지나갑니다.
햇살에 눈이 절로 찌푸려졌지만, 분명 페이드를 닮은 이입니다.
선생님께선 벙긋하는 입으로 무어라 얘기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당신에게 중요한 것이었을까요?
페이드를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또 가득 채웁니다
Où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시선은 창밖 너머 복도에.)
······ ······선생님, 저, 머리가 너무 아파서 그런데 잠깐 양호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러니? 그래. 다녀오렴."
파라 무어:감사합니다. (곧장 문을 나서서 방금 본 인영을 쫓는다.)
흔들리는 머리칼은 이미 계단을 오르고 있습니다.
어느 교실에선 시를 읊는 소리가, 어느 교실에선 공식을 정의하는 소리가.
페이드는 뒤 한 번 돌지 않고 계속해서 계단을 오르네요.
한참을 걷던 다리가 저릿해질 때 즈음, 당신은 활짝 열린 옥상 문을 보게 됩니다.
옥상에 발을 딛자 철조망 밖 너른 하늘을 보는 이가 그곳에 서 있습니다.
흩날리는 머리칼은 왼쪽에서, 다시 오른쪽에서.
바람의 방향은 초 단위로 달라지고, 하늘 위 구름은 못이 박힌 듯 움직이지 않습니다.
파라 무어:(숨을 거칠게 몰아쉰다. 호흡 정돈할 틈도 없이 외친다.) ······ ······야!
검은 머리, 당신보다 훨씬 큰 키, 대충 입은 건지 제대로 입은 건지 모를 교복에, 곧 사라질 것만 같은 분위기까지.
하지만, 얼굴은 지우개로 문댄 듯 보이지 않습니다.
흐릿하고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그 얼굴만은 알아볼 수 없습니다.
파라 무어:
SAN Roll
기준치: |
63/31/12 |
굴림: |
65 |
판정결과: |
실패 |
당신에게, 그리고 페이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블러 처리가 된 듯한 그 얼굴에 몸이 반사적으로 얼어붙습니다.
너는…… 너는 날 알고 있어? 지금 내 얼굴, 보여?
눈은 어떤 색이었고, 어떤 모양이었고, 또 어디에 자리 잡고 있던지.
당신이 가진 페이드에 관한 기억들 역시 하나둘씩 지워지는 중입니다.
파라 무어:(멈칫한다. 그러니까, 쟤 눈동자 색이.)
(······ ······눈동자 색이······.)
파라 무어:아니, 아니야······. (반사적으로 부정하고 본다.)
손을 뻗으려던 페이드는 그대로 굳어 당신을 마주 봅니다.
그 무엇도 보이지 않지만, 당신은 분명 그리 느꼈습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요동칩니다.
가는 침묵이 흐른 후 페이드는 파라를 천천히 끌어안습니다.
......너는 날 잊으면 안 되지.
파라 무어:안, 안 잊었어. 알아. (그러나 목소리가 얕게 떨린다. 이 기억이 얼마나 갈지는 알 수 없어서.)
솔직하게 말해, 그냥.
파라 무어:네 이름, (그러나 그게 그의 진짜 이름이던가?)
네 목소리, 말투······ 다 알아. (그러나 그의 얼굴을 떠올릴 수는 있던가.)
기억할 자신 없잖아.
파라 무어:(거짓말 못 하는 성정이라.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마주 끌어안는다.)
기억할 거야. (가늘고 불안하게 확언한다.)
차원의 관문도 사용할 수 없어. 마치 이 세계에 갇힌 것만 같아......
차원의 관문? 그리 말하는 페이드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습니다.
파라 무어:······ ······차원의 뭐? (고개 들어서 본다.)
우린 원래 세계에서 신도들에게 쫓기는 중이었어.
도망치던 중 차원의 관문을 사용했지만, 그대로 우주 미아가 되었고.
망할 쉘터로 돌아가기 위해 계속 차원을 넘었잖아.
다른 세계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가끔 기억을 잃기도 했는데…….
페이드의 말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영화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제물과 차원의 관문, 우주 미아와 다른 세계.
우주를 건너, 먼 은하를 건너, 다른 세계로 함께.
파라 무어:
SAN Roll
기준치: |
62/31/12 |
굴림: |
77 |
판정결과: |
실패 |
비가 멈추는 것은 주문진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비가 쏟아지던 그 여름도, 맑고 화창한 이 여름도.
우린 원래 세계를 찾아 한없이 우주를 넘나들었죠.
그 과정 중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집을 찾아서, 다음 세계로.
그렇다면 왜, 이번 평행세계에서 데티아스는 사라지는 중인 걸까요?
데티아스의 존재 자체가 없었던 세계 또한 이번이 처음입니다.
데티아스:이 세계는 확실히 다른 곳들과 달라. 다들 날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 이유는 모르지만, 난 사라지는 중이고.
……파라, 너 역시 날 잊을지도 몰라.
페이드는 진정한 듯 천천히 당신에게서 떨어집니다.
(기억 났다. 모든 게.)
그리고 그게 네가 원하는 거였지? (붙잡은 손에는 힘이 들어간다.)
아니, 잊지 마.
흐르지 않는 몽글한 구름이 그림자를 만들어내면, 우리가 선 곳의 짙은 파랑이 가려집니다.
데티아스는 천천히 철조망에 기대앉아 당신에게 작은 수첩과 연필을 건넵니다.
당신을 위해 옆자리를 가볍게 쓸어내리는 그 손은, 미약하게 떨리는 그 손은.
데티아스의 얼굴처럼 흐려지고 형태를 잃고 있습니다.
파라 무어:······. (수첩과 연필을 받고 옆자리에 앉는다.)
나 악필이야. (수첩을 펄럭 넘긴다.)
다 적어. 알고 있는 것들. 빠진 건 내가 알려 줄게.
적어두면 더 기억하기 쉽겠지. 잊지도 않을 거고.
파라 무어:(끄적끄적······.) 경험담으로 말하는데 정말 그렇더라.
(철조망에 머리 기대고 한숨 내쉰다.)
파라 무어:(다리 세우고 앉아 연필 끄트머리 입에 문다.) 야.
······노시그네트.
데티아스.
여기 있어.
파라 무어:있을 거야? (연필 내리고 바라본다.)
적어도 쉘터로 돌아갈 때까진.
넌 이대로 잊히면 좋은 거 아닌가. 늘 그러길 바랐잖아.
나중엔, 글쎄. 어쩔까.
파라 무어:하지만 이런 기회 두 번은 없을 거 알지.
난 자의로는 널 안 잊을 거니까. 나한테서 잊히려면 지금 뿐이야. (쓰던 손짓이 어느 새 멈춰 있다.)
그냥 변덕이야. 늘상 하던.
파라 무어:그러고 또 어느 날 변덕으로 잊으라고 할 거고?
데티아스: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잖아.
데티아스:(잡히기야 한다. 촉감은 미묘하지만.)
왜 나한테 변덕 부려?
네가 제일 잊히고 싶어 하던 사람이었잖아, 나는.
그냥, 그러고 싶어서.
언젠가부터 너한테만은 기억되고 싶어서......
싫어?
파라 무어:시체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거라며.
기어코 남으려고, 나한테?
왜 계속 물어. 쓰기나 해...... 시간 없어.
파라 무어:(그제야 손을 떼고 다시 느리게 연필을 움직인다.)
궁금해서. 안 되냐?
(손 떼어내고 다시 정면 본다.)
파라 무어:(다 적고 수첩 내민다.) 검토해.
우리 함께했던 추억들은 안 적고?
도서관에서 내가 장난쳤었잖아.
네 글씨체도 남겨 놔.
데티아스:힘든데. (연필 받아서 이어 쓴다.)
파라 무어:어쩌라고. 써. (단정한 모범생 말씨는 사라진지 오래다.)
너 진짜 글씨 못 쓴다.
이 새끼 왜 지금도 시비를 털지······.
넌 글씨 얼마나 잘 쓰는데? (그리고 수첩 끝부분 가리킨다.)
······ ······내 이름 써 봐.
데티아스:여기에도 많이 썼는데. (제가 쓴 부분 가리키고.)
......네 이름?
파라 무어:(못 들은 척.) 모르는 거 아니지?
(나름 필기체.)
······ ······난 너 못 잊어. 알지.
파라 무어:잊으라고 발악해도 안 잊을 거야. (세운 무릎 사이로 얼굴을 묻는다.)
데티아스:(말없이 수첩 또 가져갔다 돌려준다.)
어느 정도 정보를 적었을 때 즈음, 그의 목소리마저 뭉툭해져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데티아스는 파라의 어깨 위로 툭, 힘없이 머리를 기대옵니다.
흐릿해지는 기억을 애써 붙잡아도,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기만 합니다.
데티아스:다시 만날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절대로 잊지 마.
파라.
마지막으로, 내 이름을 불러 줘…….
파라 무어:(수첩 열어본다. 허, 하고 헛웃음이 흐른다.
누구 마음대로······. 중얼거렸다가 이내 데티아스의 머리 위로 제 머리를 기울여 기댄다.)
페이드.
노시그네트.
······ ······.
데티아스.
파라 무어:데티아스 노시그네트. (언젠가 네 손으로 새겼던 이름.)
데티아스. (어딘가 고장난 것 같은 이 세계에 갇힌다면 이 이름도 함께 박제될까.)
데티아스. (그 이름이 해져서 닳아 없어질 때까지 부른다.)
데티아스······. (또 언젠가는 네가 내게서 빼앗으려고 했던 이름을.)
······ ······.
여기 있어······.
데티아스는 그 와중에도 자신의 이름을 한참 동안 불러달라고 속삭입니다.
그 이름 역시 떠올리기 힘들어질 때면, □□□□는 천천히 눈을 감습니다.
흰 물감을 군데군데 풀어둔 하늘 아래, 한 사람의 그림자가 서서히 지워집니다.
우리는 차원을 넘기 전, 집으로 돌아가길 빌며 속삭이곤 했죠.
무더운 여름은 습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립니다.
데자뷔처럼 옥상에는 당신만이 홀로 남아있습니다.
파라 무어:
SAN Roll
기준치: |
60/30/12 |
굴림: |
26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손에는 힘껏 구겨진 수첩, 급하게 휘갈겨 쓴 티가 역력한 글이 남아있네요.
가장 크게 □□□□ □□□□□라고 적혀있으며, 그 아래로는 누군가의 사소한 정보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절대 잊어선 안 될 이름인데도 왜 이렇게 기억이 흐릿한지.
□□□□를 되찾고, 이 세계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한참을 되뇐다고 하여 방법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철조망에 오래 기댄 탓에 몸이 찌뿌둥하기도 하네요.
근처에서 가벼운 종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파라 무어:(마른 눈가를 깜빡거린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또 누군가가 답지 않은 목소리로 답지 않은 말을 했던 것도 같은데.)
(종이를 주워본다.)
작은 쪽지를 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보입니다.
파라 무어:
지능
기준치: |
75/37/15 |
굴림: |
2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암호 같기도 하지만, 당신은 바로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 사이에 수업 하나를 완전히 빠진 것 같습니다.
파라 무어:······ ······. (섬뜩.)
아니, 생각해보면 이곳은 진짜 세계가 아니므로 상관없는 일이죠.
(자리 툭툭 털고 일어나 잠깐 옆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 모든 게 조각난 사람이 마지막으로 한 부탁만이 남은.
파라 무어:
정신
기준치: |
65/32/13 |
굴림: |
4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답답한 마음에 괜히 발걸음이 빨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은 어지럽고, 울렁거리는 속은 이 계절을 완전히 받아내지 못합니다.
이 평화로운 세계를 떠날 정도로, 그는 당신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인가요?
도서실에 도착하면 종교, 예술, 언어가 적힌 책장들이 빼곡합니다.
저곳에 당신에게 필요한 정보가 있을 거란 예감이 듭니다.
파라 무어:(종교 책장부터 확인해 본다. 창구 번호를 찾아서.)
2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종교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파라 무어:
자료조사
기준치: |
65/32/13 |
굴림: |
91 |
판정결과: |
실패 |
파라 무어:
자료조사
기준치: |
65/32/13 |
굴림: |
30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파라 무어:외부 세계와 이어진 매게체······. (고개 기울이고 예술 코너도 본다.)
6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예술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파라 무어:
자료조사
기준치: |
65/32/13 |
굴림: |
1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파라 무어:두 그림으로 나뉜 별자리. (언어 책장까지 뒤진다.)
7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언어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파라 무어:
자료조사
기준치: |
65/32/13 |
굴림: |
83 |
판정결과: |
실패 |
파라 무어:
자료조사
기준치: |
65/32/13 |
굴림: |
4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파라 무어:사람의 이름. (······ ······수첩을 흘끗 본다. 도무지 눈에 익지 않은, 그러나 자신이 밑줄까지 쳐놓고 기억하려던 이름을.)
쪽지에 적힌 창구 번호, 840.01이12꽃.
그것은 꽃갈피란 제목의 얇은 영문 시집이었습니다.
파라 무어:······ ······. (시를 읽었나? 꺼내서 펼쳐본다.)
꽃으로 책갈피를 만드는 방법과 짧은 시들이 실려있습니다.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는 꽃을 여러 번 말려야 한다고 하네요.
수없이 반복한 탓에, 심장에 꽂을 수 있을 정도로 얇게 마른 우리의 63번째 여름.
파라 무어:(어쩌면 겨울에서만 살았던 우리는, 겨울만 알고 지내던 우리는······ 첫 번째 여름 정도는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아직 이 수분이 다 마르기 전에는.)
(쪽지를 꺼내본다.)
그 아래에는 필기체로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외부세계와 가장 강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 거짓된 세계를 부술 수 있는 한 단어.
거짓된 세계라고 하여도, 한 사람만이 사라진 이곳은 평화롭고 고요합니다.
우린 다시 우주 미아가 되고 말 텐데, 기약 없이 차원의 관문을 다시 넘나들어야 할까요?
파라, 당신에게 데티아스는 그럴 가치가, 의미가 있는 사람인가요?
파라 무어:(손안에서 쪽지가 구겨진다. 치마 안에 단정히 넣어 입었던 셔츠와 그 아래 덧입은 민소매까지 들어 올려 자기 허리를 내려다본다.)
(그럼 그곳에는, 자신이 온몸으로 받아 새겼던 단 하나의 흔적이.)
(그리고 어쩌면 두 번째 흔적. 노시그네트. 너는 왜 내게 네 이름을 붙였을까. 그러나 하나는 확신한다. 나는 완벽히 사라지기를 바란다는 너를 끝까지 쫓을 것이다.)
(설령 그곳이 진창이더라도, 또다른 겨울이더라도, 영원히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그를 기억하고, 형상화할 수 있는 최고의 단어를.
파라 무어:(그래, 네가 내게서 빼앗으려고 했던,)
(그러나 절대로 빼앗기지 않을 이름이.)
······ ······.
페이드.
노시그네트.
······ ······데티아스.
당신이 데티아스의 이름을 부르자 모든 기억이 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맴맴 울던 매미의 소리, 복도에서 재잘재잘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바람에 커튼이 흔들리는 소리까지.
충분히 겁먹을 만한 상황인데도 되레 익숙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파라 무어:
관찰력
기준치: |
55/27/11 |
굴림: |
4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깜빡이던 형광등이 꺼지고 맙니다. 정전일까요?
하늘, 땅이랄 것도 없이 검은 우주가 펼쳐져 있습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새까만 밤과 반짝이는 은하수, 촘촘히 박힌 별들.
파라 무어:
SAN Roll
기준치: |
60/30/12 |
굴림: |
4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모두가 사라지고 오로지 파라만이 이곳에 남아있습니다.
운동장이었던 그 너른 공간 한가운데, 우주 위로 데티아스가 동동 떠 있습니다.
반짝이는 별들 사이 중력을 무시한 채 흩날리는 데티아스의 머리카락.
물론 감상이 이어지기도 전, 그는 당신을 향해 무어라 소리치네요.
파라 무어:
듣기
기준치: |
60/30/12 |
굴림: |
2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당장 밖으로 나와. 학교가 무너지고 있어!'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별가루들이 흩날립니다.
책장들이 모두 별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있어요.
당연하죠, 이 세계를 부수는 단어는 당신이 읊었잖아요?
주변을 둘러보면 마땅한 탈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내가 받아 줄게. 뛰어내려!
부서지는 학교, 창문 아래의 데티아스가 소리칩니다.
파라 무어:뭐? (창문 아래를 내려다본다. 까마득하다.) 미, 미쳤어?!
파라 무어:이 높이에서 뛰어내리라고? 네 뼈도 부서져!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요.
파라 무어:야이씨······. (이 악물고 무너지는 도서관을 돌아보았다가, 다시 창문 밑 데티아스를 본다. 머뭇.)
창틀을 딛고, 유일하게 부서지는 세계 속 당신을 바라보는 이에게 뛰어내립시다.
응원이라도 하듯 거센 바람이 당신의 등 뒤에서부터 불어옵니다.
파라 무어:(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다. 아, 아케르나르에서 이런 훈련도 받았던 것 같은데. 그때 페퍼 씨가 뭐라고 하셨더라.)
(다른 곳 보지 말고 밑에 있는 사람만 보라고······.)
(오직 데티아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창틀을 딛고 그대로 낙하한다.)
별가루가 흩어지매 까만 우주는 눈이 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이어질 추락에 잔뜩 긴장해도 당신은 아주 천천히, 중력을 무시하고 아주 천천히.
바람 따라 나는 민들레 씨처럼 느릿하게 떨어집니다.
와락, 그런 당신을 데티아스는 쉽게 그러안아 잡습니다.
여전히 흐릿하지만, 그 얼굴의 이목구비는 점점 선명해지고 있어요.
나풀거리는 머리카락 탓에 꼭 물에 빠진 것만 같습니다.
이윽고 외부 세계로 나가기 위해, 외부 세계와 가장 강하게 연결된 데티아스가 묻습니다.
어, 페이드.
파라 무어:······ ······. (이마를 툭 부딪힌다.)
데티아스.
파라가 답을 하자, 흐릿했던 것들이 완전히 되돌아옵니다.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그럼 우리가 어떤 관계였는지도?
파라 무어:······ ······원수 새끼? (아리송한 얼굴.)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무수한 여름을 함께 건너온 사람.
......이런 말 좀 해라.
겨울을 함께 지낸 사람. (순순히 바꿔 말한다.)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내가 네게 남긴 흔적들은?
파라 무어:등에 하나. 옆구리에 하나. (이마 뗀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졌을 다른 흉터들도.
······이런 거 들으면 안 찔리냐?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아니, 되게 찔리는데.
파라가 답을 하자, 모든 별가루가 허공에 둥둥 뜬 채로 멈춥니다.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마지막 질문이야. 우리의 세계로 돌아갈 거지?
돌아가자.
답을 들은 데티아스가 당신의 두 손을 잡습니다.
피부 위로 새겨진 별자리와 같은 무늬가 애초에 하나였던 것처럼, 둘의 팔을 타고 이어져 반짝입니다.
어디선가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고, 중력이 배로 느껴지는 기분에 속이 울렁거립니다.
하지만, 이건 모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일이었잖아요?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왜 포기했어? 이 세계.
완벽했잖아.
파라 무어:네가 없잖아. (이 역시 쉽게 대꾸한다.)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내가 옆에 있었으면 해?
파라 무어:넌 네 멋대로 못 사라져. (잡힌 두 손에 힘을 준다.)
네가 그걸 바란다고 해도, 이미 넌 나한테 박제됐거든.
그거 잘 됐네......
부서져 가는 세계, 거짓된 세계, 꾸며진 여름.
우린 그것들을 두고 차원의 관문을 넘을 거예요.
어쩌면 다시 우주 미아가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마주 잡은 손이 웅웅, 진동하며 가볍게 떨립니다.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다음 세계에서도, ……잊지 마.
파라 무어:······. (손을 깍지 낀다.)
그게 걱정되면 하나 더 남겨.
파라 무어:수첩에. (얼굴 쳐다본다. 맞아, 이런 색이었지······.)
장난질 쳐놨던데.
파라 노시그네트? (입에 담아 본다.)
왜 그렇게 썼어?
제일 확실한 방법이니까.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그것보다 더 간절해서.
“그냥 그러고 싶어서?”
파라 무어:넌 저 말을 그냥 만능 핑계로 쓰냐?
데티아스 F. 노시그네트:(뻔뻔하게 웃는다.)
파라의 말을 끝으로, 강한 빛이 주문진에서 쏟아집니다.
우린 차원을 넘기 전, 집으로 돌아가길 빌며 속삭이곤 했죠.
이렇게, 우주 한가운데에서, 서로를 보며, 지금처럼.
─────── END 1. 집으로, 함께. ───────